학예회에서 노래하기로 한 아이가 전학가게 되어서 대신 내가 무대에 서기로 했다.
노래를 고르고 목청을 가다듬고, 짐을 가득실은 트럭마냥 어렵게 올라선 고음들. 하지만 그 친구의 전학 일자가 연기되고 선생님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는 잘됐다며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아이의 자리를 돌려줬지만 왜 그렇게 서운하고 와앙~ 눈물이 터져버렸던지..
영화 [스윙걸즈]는 시골 어느학교 여학생들이 식중독에 걸린 자기 학교 밴드부 대신 연주를 준비하다가 중도에 물러나면서, 소녀들의 마음속에 이미 싹터버린 재즈에 대한 열정을 코믹하고 아름답게 그린다.
물론 잭 블랙의 그 유명한 [The School of Rock] 이나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 오면]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스윙걸즈]는 느낌이 많이 다른 영화다. 음악이 주는 흥겨움에 마냥 즐거운 영화도 아니요, 암담한 현실을 잊기위해 절규하듯 연주하는 부담스런 영화도 아니다. 주인공 토모코는 아지랑이 처럼 희미하게 다가온 섹소폰의 매력에 스며들기 시작해서는 뜨거운 여름날 열병처럼 스윙재즈의 매력에 흠뻑 빠져간다.
토모코는 어린 동생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던 코묻은 게임기를 팔아서 언니가 왠수가 되어버리는 혈육파탄의 상황에서도 꿋꿋이 마련한 중고 섹소폰을 들고 강가로 나간다.
이 영화의 백미이자 오래 남을 명장면인 토모코와 나까무라의 이중주 장면. 중고 섹소폰의 누렇게 바랜 빛 처럼 저물어 가는 오후 강 두렁에서 토모코는 서툴게 섹소폰을 연주하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재즈 피아노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듀엣을 연주한다. 강섶을 헤치고 다가가니 저 건너편 혼자 연습하는 나까무라의 재즈연주.
한 소녀와 소년이 해저무는 강을 사이에 두고 웃으며 연주에 물들어 가는 모습은 재즈를 사랑하게 된 소녀들의 설레임을 봄 햇살 보다 더욱 화사하게 가슴을 물들인다.
[스윙걸즈]는 욕망이라는 것이 가슴 한복판에 또아리 틀기엔 아직 순수한 영혼들이 음악이라는 이름의 영혼의 음식을 향해 스스로 일으켜낸 투명하고 내적인 욕망을 아름답고 유쾌하게 그려간다.
"스윙걸즈" 라는 이름의 서툰 재즈 빅밴드를 결성한 그녀들이 좌충우돌하며 달려가는 모습에는 풍요로운 감정의 들썩거림도 있고 깜짝 놀랄만큼 섬세하고 감수성 어린 장면들도 쏙쏙 베어있다.
소녀들이 건널목을 쪼르르 건너다가 신호등 음을 스윙재즈 박자로 바꾸는 장면은 건널목을 건너는 비틀즈 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명반[Abbey road]의 자켓을 떠올리게 하며 무릅을 탁 칠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스윙재즈의 4박자는 [원투쓰리포] 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원 앤! 투 앤! 쓰리 앤! 포] 로 이루어진다. 주요박자 체계속에서 오히려 빈틈이 큰 소리로 일어나는 이러한 유쾌한 재즈의 엇박자는 그저 그런 무료한 시골소녀들이 어느새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즐겁게 일어서는 성장영화이자 아름다운 일본의 풍광과 재즈가 절묘하게 손뼉을 쳐대는 수작이다.
구질구질한 삶의 욕망과 논리는 제쳐두고 흥겨운 스윙재즈와 사랑스런 소녀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에 흠뻑 취하자. 엔딩크래딧의 L-O-V-E(냇킹콜)에 맞춰 출연자들의 깜찍한 율동을 보고 일어서면 가슴 속에 일어나는 감정. 그것이 "행복" 이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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