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그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으로 마음을 지레짐작할 뿐 간파하기란 힘들다.
사랑을 꿈꾸는 이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길 원한다. 마치 '왓 위민 원트'의 닉 마샬(멜 깁슨 역)처럼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특히나 사랑의 예감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능력은 절실할테지만 현실은 영화와는 다르다. 어쩌겠는가. 선택하는 수밖에. 맨땅에 헤딩이라도 일단 들이댈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애틋하게 바라보기라도 고수할 것인지 양갈래 길 위에서 번민하는 수밖에.
황대우(박용우 역)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미혼남. 30대가 되도록 연애한번 해보지 못한 그에게 연애란 먼 이상속 판타지처럼 아득하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아랫집에 이사온 이미나(최강희 역)와의 우연한 인연이 그에게 특별한 사랑예감으로 다가온다. 생애 첫 연애는 첫 키스처럼 달콤하고 황홀하지만 그 달콤한 연인의 과거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천천히 그를 에워싸기 시작하며 두 연인의 인연에 알 수 없는 위기가 다가온다.
이 영화는 영화를 접하기 전부터 무언가 묘한 기대감을 지니게 한다. 외양에서 보여지는 로맨틱 코메디 이상의 기묘함이 이 영화에서 은연중에 느껴진다. 영화의 시놉시스 자체에서 보여지는 독특한 구성과 캐릭터 설정은 평범하지 않은 독특함으로 느껴지는 은근한 기운이다. 또한 최강희 첫 스크린 데뷔라는 것도, 박용우의 주연 캐스팅이라는 것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사실 영화계에서 그다지 비중이 큰 배우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화제성있는 캐스팅이라고 여겨진다.
어쨌든 이 영화는 신선하다. 영화는 깜찍한 표정을 지니고 있고 그 웃음도 기발하면서 깔끔하다. 특히 이 영화로부터 건질 수 있는 웃음의 원천은 이 영화가 치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어휘구사가 담긴 영화의 대사는 순발력있는 타이밍과의 절묘한 조화로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근원이 된다.
박용우라는 배우의 연기도 주목할만하다. 서글서글한 이웃총각같기도 하고 잘 다듬어놓으면 깔끔한 인텔리적인 세련미도 풍길법한 이 사내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소심하지만 순수함이다. 또한 살짝 엉뚱하기도 한 그는 이 영화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중심에 서 있다. 그가 던지는 대사와 행동, 표정은 이 영화의 코믹스러움 그 자체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성관객에게는 상당히 귀여운 매력이 느껴질 법도 하다.
최강희의 연기는 사실 그전 브라운관에서 보여지던 이미지와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깜찍함을 덜어내고 조금 진지해진 국면은 있다. 하지만 장점으로써의 이미지 메이킹이 아닌 판에 박은 이미지적 귀속은 그녀의 행보에 고민을 안겨줄 것만 같다. 그래도 그녀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유효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통통 튄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가벼움이 아닌 신선함이다. 이 영화의 기본 모티브는 결코 새롭지 않으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진부하지 않다. 물론 이야기의 흐름은 예측을 벗어나지 않지만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랑이 결코 어느 영화에서 보여지던 사랑방식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에 점수를 주고 싶다. 전형적인 발상에서 한단계 나아간 이야기의 기발함은 이 영화가 지니는 독특한 매력이다.
물론 내러티브의 허술함도 간혹 눈에 띄지만 적당히 외면할 수 있는 구멍에 연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또한 이 영화의 재미는 그정도의 구멍쯤은 메꿔줄 수 있는 유쾌함을 지니고 있다.
콩깍지가 씌였다는 말이 있다. 사랑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때 종종 쓰는 말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때론 가혹하다. 사랑의 아름다움도 때론 시험을 거치게 된다. 그녀나 혹은 그의 과거는 연인의 오늘을 흔든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과거는 간혹 현실의 사랑을 비웃는다. 이영화는 다분히 현실적인 사랑론을 선택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진부하지 않은 이유다. 사랑의 판타지와 타협하지 않았음은 이 영화의 신선한 웃음과 조화를 이루며 영화의 쿨함을 더한다.
이 영화의 사랑은 달콤하면서도 흐믓하다. 영화의 결말의 지나친 우연성이 거슬렸으나 그 결말이 보여주는 시원함은 깔끔했다. 적어도 징징거리는 사랑이야기가 아닌 웃음을 자아내는 사랑이야기라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흡족했다. 또한 그 웃음이 지극히 과장스럽고 오버스럽지 않은 담백함이었다는 것. 살벌한 그녀의 과거는 달콤한 그들의 사랑을 잠식했으나 감정까지 가리진 않았다. 물론 인연은 멀어졌으나 사랑은 유효하다. 만남도 헤어짐도 가볍지 않은 유쾌함으로 그려낸 이 영화의 신선함은 맛볼만하다. 달콤함위에 얹힌 살벌함은 이 영화의 귀여운 위트일 듯 싶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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