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글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에피소드, 캐릭터, 장면(scene), 심지어 조그만 소품 하나하나까지 의미가 부여되어 있거나 또는 여러 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화가 그렇다. 반면에 영화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메시지일 경우, 분명 영 화는 감명 깊게 보았으나 할 말을 없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뮌헨>이 내겐 후자의 경우였다.
#2
"Home is everything."
집과 뫼비우스의 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집’ 을 위해 싸울 뿐이다. 집은 모든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돌멩이만 있는 척박한 땅일지라도. 영화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분 이 불가능한 무한대의 세계, 각 사건들의 경계조차 허물어져버린 끊임없이 반복되는 폭력의 세계로 관 객을 이끈다.
무의미의 의미 결국 감독이 하고자 했던 것은 폭력의 ‘무의미함’ 이다. 애브너의 저녁식사 초대를 거절한 그의 상관처럼, 평화의 물음에 대답 할 수 없는 두 나라의 모습에서 관객은 폭력의 허무함을 실감 할 수 있다. 스필버그 가 말하는 ‘무의미함’ 의 의미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꼭 설명해야만 했을까? 탄생과 죽음을 함께 축하해야 하는 모순, 동료들의 죽음, 누군가 자신을 공격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애브너... 영화는 인물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행동, 심리 묘사를 통해 폭력의 무의미함을 깨달 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후반부로 흐를수록 감독은 주제를 ‘설명’하려고 든다. 노골적으로 드러나 버린 주제는 막판에 가서 영화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스필버그는 꼭 관객에게 설명해야만 했을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 는다.
#3
<뮌헨>을 유대인인 스필버그가 연출했다고 해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영화가 되지는 않을까 걱 정했었다. 그러나 그는 내 걱정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스필버그는 신 중하게 균형을 잃지 않고, 두 나라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대해 냉정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비록 유 대인들에게 ‘스필버그는 더 이상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라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스필버그. 그는 <뮌헨>을 연출하면서 민족을 떠나 오직 휴머니스트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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