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눈물에 약하다. 물론 남자들도 마찬가지지만 남성의 눈물샘과 여성의 눈물샘은 그 높낮이가 다르다. 남성에게는 진부한 유치함이 여성에게는 가슴시린 슬픈 사연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남성들은 섭렵하기 힘든 순정만화가 여성들에게 어필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를 보면 대부분의 드라마들의 모양새가 대략 비슷함을 느낀다. 어느 드라마든 대부분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중심에 흐르고 그 사랑의 험난한 여정이 드라마가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형태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틀의 차이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돈많은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 이것이 몇년전부터 우리네 안방극장을 점령한 신데렐라 스토리 아니던가. 또 재미있는 건 적당한 비극을 끼워넣으며 진부한 감동을 극대화시키려는 알량한 수도 자주 접하던 이야기중의 하나. 또한 주인공들은 어쨌든 멋있고 예쁘다. 그리고 그 사랑에 끼어드는 제3자가 있어야만 흥미진진한 트라이앵글 러브스토리의 묘미가 살아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남녀의 잊고있었던 사연. 이것이 대한민국 안방극장의 진부한 현실이다.
영화의 시작은 의외로 액션이다. 철없는 갑부아버지를 둔 망나니 아들 재경(현빈 역)의 쌈박질로 영화의 포문이 열린다. 뭐 일찍이 "늑대의 유혹"에서도 보여주었던 철없는 10대의 쌈박질이 이 영화에서도 얼핏 나타난다.
재경(현빈 역)은 돌아가신 재벌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로 한 망나니 아들이다.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아버지가 남긴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받기로 되어있었고 주민등록증이 나오자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유산을 물려받기로 한 예정이 당연히 현실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직속 변호사는 유언장을 발표하며 그에게 강원도 산골마을의 고등학교 졸업장을 요구한다. 그리고 재경은 울며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은환(이연희 역)을 만난다. 이미 예전에 자신의 호텔에서 악연을 맺었던 은환과의 재회로부터 이 영화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나간다.
솔직히 영화자체의 느낌은 나쁘지 않다. 톡톡튀는 대사로부터 느껴지는 재미도 있고 영화의 수채화같은 영상도 아름답다. 특히나 강원도 평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골마을의 여유로운 아늑함은 영화의 아련한 빛깔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그리고 시골마을 특유의 구수함과 순박함이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름대로 영화와 관객의 첫대면은 나쁘지 않은 호감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찬사까지는 아니더라고 인정받을만한 연기력으로 느껴진다. 현빈의 연기는 버르장머리없는 철부지로써 손색없고 뉴페이스인 이연희는 그 외모만큼이나 상큼한 귀여움을 잘 살린 캐릭터의 모양새를 잘 살렸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현빈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팬으로써는 반갑고 팬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재미난 볼거리가 되줄 법 하다.
그러나 영화의 형세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점차 진부한 눈물로 흘러감은 지겨운 아쉬움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감성은 새로울 것도 없으면서 기존의 막연한 감정적 아련함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영화가 보여주는 작위적인 플롯의 지나친 배열에서 드러나는 고리타분한 감성에 있다. 사실 진부한 설정도 적당한 선에서 멈추면 적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나친 과도함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이 영화는 수위조절에 실패했다. 애초에 영화 자체가 주는 이미지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 영화를 택하는 관객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그 이미지 이상은 아니었을 듯 싶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그만큼의 기대감만 충족시켜준다면 적당히 성공한 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친 과욕적 진부함의 나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련의 여주인공과 철부지 남주인공의 사랑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조악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의 한계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안방에서 쉽게 접하는 드라마의 진부한 설정이 이 영화에 줄줄히 나열되는 듯한 인상이 영화의 후반부가 주는 안타까움이다.
또한 재경의 감정적 변화에 대한 동감대가 관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사랑자체가 큰 축이 되지만 재경이라는 인물의 내면적 성장도 하나의 큰 축으로 자리잡아야 했음이 마땅하다. 겉모습은 번지르르하지만 이기적이고 철없는 망나니가 세상의 어려움을 느끼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성장과정에 대한 설득력을 영화는 무시하고 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그의 감정도 너무나 갑작스럽고 석연치 않다. 그래서 이 영화의 눈물은 식상하고 진부하다. 또한 그들의 과거에 숨겨진 사연까지도 그들의 운명적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한 조악한 설정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 "늑대의 유혹"에 이은 두번째 작품을 공개한 김태균 감독의 작품은 "늑대의 유혹"이 간과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한다. 영상의 따뜻한 아련함은 나쁘지 않지만 이야기의 허술함은 여전하다. 나름대로 신선한 설정을 즐기나 그 설정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솔직히 드라마나 영화나 영상적인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둘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영화는 직접적인 지불의 댓가가 따른다. 그래서 드라마보다 영화가 작품자체의 퀄리티에 대한 극심한 평가가 따른다. 물론 드라마를 보는것이 거저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내는 상품구입에 따르는 간접세에 민감하지 않은 것과 비슷하게 드라마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관용적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드라마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드라마 이상의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가 보여주는 조악한 설정의 진부함이 이 영화에 어지럽게 짜여있다. 그러한 진부함에서 오는 아쉬움은 영화자체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환되어도 할말이 없는 것 아닐까.
그래도 남성관객보다는 여성관객에게 어필될 여지가 있는 영화다. 현빈의 매력자체는 영화에서 나쁘지 않은 즐거움을 줄 법도 하고 드라마의 감성에 길들여진 이라면 이 영화에서도 적당한 만족을 느낄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 영화의 정서가 순정만화의 그것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여성적인 만족도가 높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지긋지긋한 삼각관계구조의 미발견은 이 영화의 다행적인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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