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마지막 달을 뜨겁게 달구었던 태풍(곽경택 감독)의 흥행에 이어 곧 후속편인 '태풍2'도 제작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반도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씬(장동건 분)을 추격하며 그의 아픔에 점점 공감하게 되는 투철한 군인정신의 소유자 해군대위 강세종(이정재 분)이 이번에는 그 주인공이다. 씬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부산시민들의 안위는 아랑곳 않고 도로를 마구 질주하던 강세종의 추격전 때 차량 충돌 전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년을 중심으로 헬기를 타고 태풍을 뚫는 강세종의 무지막지한 작전수행 도중 해적들에 의해 총을 맞고 사망한 군인의 동생, 방콕에서 강세종에게 제대로 당한 밀매조직이 연합하여 벌이는 복수극을 다룬 초대형 블록버스터이다. 캐스팅은 아직 미정상태이나, 태풍의 많은 영화적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계 정점으로 꼽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는데 별 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캐스팅 만큼은 화려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물론 다 허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풍은 상상의 태풍2 만큼이나 엉성한 영화이다. 어뢰를 맞아 가라앉고 있던 화염에 싸인 태풍 속의 배에서 칼 맞고 쓰러져 있던 강세종이 살아나와 '수개월 후'로 회고되는 진부한 엔딩을 장식한 것은 영화를 봤다면 누구나 가져 보았을 만한 의문이므로 제쳐두고라도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꽤 존재한다. 총각이라는 이유로 불려나온 강세종의 동기들이 '죽으러가는 작전'에 전원 불만없이 동의하는 것은 사명감이 불타는 군인들이 강세종 뿐이란 법은 없으므로 그렇다고 치자. 미국에서 출발한 잠수함과 한국에서 출발한 헬기가 매우 짧은 간격만을 두고 함께 도착하는 것도 미제 잠수함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가정하고 넘어가자. 여기에 태풍 두 개가 합쳐지는 후지와라 효과를 헬기로 뚫고 정부에서 만류하는 군사작전을 해군 대위가 감행하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슬슬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살짝 말이 안되지만 '말 되는 건 말로 하지 왜 영화로 만들어'라는, 살짝 꼬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일단 넘어간다. 저런 형식적인 문제 가지고만 왈가왈부하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최명신과 강세종. 영화의 카피대로라면 적도 친구도 될 수 없었던 두 남자. 좀 더 정확히는 적이었지만 친구가 되고 싶었던 두 남자. 너무나 달랐던 그들이 '뭔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둘의 공통점 때문이다. 딱 잘라 말해 한 가지에 눈이 멀어 둘 다 '눈에 뵈는게 없다.' 최명신은 남한이라는 나라를 향한 복수심에, 강세종은 국가를 향한 절대적인 충성에.
최명신은 남한으로의 귀순이 거절 당하고 전 가족이 몰살당한 뒤 해적 씬으로서 '남조선 간나들이 피 토하고 살덩이 터져 죽는 꼴'을 보기 위해 살아간다. 그 복수극의 줄거리는 유치하다. 남한 때문에 우리 가족이 죽었으니 너네도 한번 당해보라는 심리다. 복수의 대상은 남한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남북 분단의 현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는 헛다리를 짚은 셈이다. 아니면 분단이라는 상황은 대상이 될 수 없기에 선택적으로 남한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20년 전 남한 놈들을 다 죽여버리겠다던 어렸던 최명신에서 그는, 성장하지 못했다. 이 복수심에 불타는 복수 자체가 복수심에 눈이 멀어 부른 비극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수'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강세종은 한 술 더 뜬다. 그는 작전 수행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이 희생 당하는 것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방콕 공항에서 조직 보스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바글대는 공항에서 총기를 난발하더니 때 마침 차를 타고 나가려했던 게 죄라면 죄일 뿐인 운전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동행자를 인질로 추격을 계속 한다. 부산에서는 옆에 달리던 사람들이야 죽던지 말던지 상관없다는 태도로 쫓는데만 몰두한다. 최고는 이거다. 억울한 한미관계의 증거가 되겠다는 거창한 구호 아래 동기 군인들을 이끌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작전을 수행하러 간다. 자기가 뜻한 바를 위해 자기 혼자 죽는 것으로 모자라 '장가도 못 간' 동기들에게 같이 죽자고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열댓명의 군인 모두가 호탕하게 웃으며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동의했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강세종은 아버지의 명예로운 죽음에, 군인이라는 직업에, 국가라는 거대 조직에 매료되고 세뇌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날 잡아가면 남한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냐는 최명신의 질문에 '그런거 바라고 하는거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며, 복수에 목숨 거는 최명신과 '통함'을 느낀다. (이러한 국가를 위해서라면 시민 몇 죽는 것에는 끄떡도 안 하는 군인 강세종의 캐릭터를 감안할 때, 그가 왠지 최명주에게만은 갖은 연민을 보이며 그녀의 절절한 사연을 듣는 모습과 국가적 큰 변화 전에는 희생에 있기 마련이라는 국정원(김갑수)의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짓는 대목은 나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그런 두 남자의 배에서의 결투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를 다 잡아먹으면서 한국 영화의 응집된 기술을 맘껏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외형적인 총격씬의 화려함보다 강렬했던 것은 군인들의 최신식 전투 장비와 대비되는 해적들의 초라한 무기였다. 해적질로 쌓인 내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세종과 동기들'에 의해 전원 사망한다. 아로 깔리고 우로 들리는 것은 거대한 권력 앞에 선 나약한 개인, 힘 없는 소수 집단의 모습이다. 총알이 떨어진 토토를 향해 총알을 쏟아내는 강세종, 미국 DIA의 등쌀에 밀려 강세종에게 철수를 명령하는 안기부, 북한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총살 당해야 했던 최남규 일가, 그리고 남한이라는 국가를 향해 복수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최명신. 총 한자루로 용감하게 군인들과 맞섰던 해적들의 모습이 슬픈 이유가 여기있다. 거대한 시스템. 국가라는, 이념이라는, 권력이라는, 개인이 맞서기엔 너무나 거대한 시스템.
영화 제목 '태풍'은 중의적이다. 아니, 다의적이다. 해적선의 이름이자 계절적 배경을 상징하는 소재이자 최명신의 복수를 완성시켜 줄 자연적 장치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단순한 의미 외에도 전반적인 분위기를 제압하는 존재, 한 개인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한반도에 몰고 올 재앙 등 주관적 감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여기에 '태풍의 눈은 맑다'는 기상 특징에 착안하여 의미를 하나 더 부여해보자면, 복수의 태풍에 휩싸인 최명신도 사실 악하지 않다는 것. 누나에게 남한을 쓸어버리겠다고 외쳤던 최명신의 발상은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어린 소년이 지닌 사고의 한계를 보여주듯 유치하다. 하지만 그렇게 순진했던 소년이 이 엄청한 계획을 실행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
영화는, 분단이라고 답한다.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기에는 엉성함과 더불어 어쩔 수 없는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보여주긴 했지만(매우 공들여 찍은 듯한 총격씬, 추격씬, 전투씬) 탈북자의 시선에서 분단의 아픔을 잡아내는데는 성공했다. 이를 넘어서는 더 강력해진 태풍2를 기대해 본다. 내 상상 속 '강세종 복수극 태풍2'가 아닌, 분단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 영화로서 말이다.
유치해서, 유치하기에 슬펐던 한 소년의 복수극,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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