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액션무비이건, 삼류코메디이건, 상관은 없었다. 난 재희를 보기 위해 갔다. 재희를 좋아했을 뿐이다. 영화는 괜찮았다. 꽤 좋았다. 7점보단 8점을 주고 싶은 영화였다. 그러나 나를 건드렸다. 아주 심하게 건드렸다. 웃었어야 했는데, 광고주들의 현란한 카피와 선전문구에 속아 그대로 웃고 즐겼어야 했는데, 너무나도 비쩍 마른 재희의 - 아니, 병태의 가녀린 모습에 안쓰러워 얼굴이 이그러졌고, '초절정부실고딩' 병태와 내가 겹쳐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게 될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영화는 싸움이라는 형식을 빌어 역시나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쌓인게 많아보여' 캐스팅 되었다는 재희의 모습에서, 역시나 '한이 많은' 나 자신을 읽었던걸까.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백윤식의 카리스마 넘치는 능글맞은 연기일게다. 그러나 나는 오롯이 병태에게 감정이입되어 영화를 봤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병태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구타당하지 않았을 뿐이지, 폭력은 언제나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바로 이 순간에도, 내가 모르는 새에도. 따가운 시선과 날이 선 말들로 나는 끊임없이 얻어맞았다. 얼굴이 터지고, 이곳저곳 붓고 부러지고 까져서 병원을 찾지 않았을 뿐, 정신과 마음의 구석까지 흠씬 두들겨맞아 한약방을 찾아 맥을 짚고 약을 먹고 안달을 했던 나는, 얻어터지고 왕따당하고 세상에서 소외된 병태와 꼭 같았다. 울었다. 불쌍하고 서럽고 안쓰럽고,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울었다. 때릴 수 있어도, 지기 싫어하고 욱하는 성질머리에 충분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마음이 약하고 천성이 착해 쉽게 주먹이 올라가지 않는 병태는 결국 맞고 살아야 할 운명인게다. 세상과의 싸움을 시작하자면, 홀로 그 외롭고 길고 고된 싸움을 시작하자면, 걸리는게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나도 맞았다.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겨도 질 것 같았다. 그냥 맞고 지기로 했다. 그게 최선이었는데. 보고 나니 이제야 쓰라리고 아프다. 피골이 상접하게, 너무도 안쓰럽게 말라버린 재희의 얼굴에 커다랗게 박힌 순한 두 눈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쾌걸춘향'에서 보았던 이몽룡의 귀엽고 패기있는 그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병태는 주인공임에도 대사보다 맞는 씬이 더 많다. 그러나 그 모습이 우리에게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판수는 진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싸우지 않는 법, 이라고 말했다. - 비록 자신의 최후를 통해 강렬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긴 하지만. - 인생을 경쟁과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하나의 싸움으로 보기보다, 타인을 배려하며 서로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다소 판에 박힌 교훈을 주고 싶었던걸까. 인생이 하나의 싸움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기술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면 판수는 사기꾼인가.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한 판 웃겨달라는 심정으로 영화관을 찾았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차라리 좀더 기다렸다 '투사부일체'를 보시라. '말죽거리 잔혹사2'라는 다소의 비아냥거림과 달리, 액션이 강한 성장드라마도 아니다. 액션무비를 기대했다면 역시나 좀더 기다렸다가 '야수'를 보시라. 이 영화는 인생에 대해 말하는, 꽤나 진지한 '드라마'이다. '왕의 남자'라는 태풍에 가린 꽤 괜찮은 영화이다. 우스운 말이지만, '왕의 남자'를 볼때보다 덜 웃었고 더 울었다. 억지웃음과 억지감동은 없었지만, 오히려 매일같이 얻어터지는 인생의 참모습을 여과없이 표현한 그 리얼리즘이 나를 강하게 건드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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