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삶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며 사회의 흐름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사회의 흐름은 거세고 세찬 물살을 이루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렇지 못한채 가늘고 언제 끊길지도 모르는 미약한 물살을 이루는 이들도 있다.
소외된다는 것은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여되는 현실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이 사회는 문명의 혜택과 이기 안에서 다수의 발전을 꾀하지만 그 이면의 그늘에서는 동정이라는 미명하에서 은근히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우리는 다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하다. 어떤 일 하나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소수의 이야기를 근거로 내세우는 실례는 없다. 무엇이든 다수의 입장에서 고려하고 살펴본 후에 다수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러니 나머지 소수에게는 다수를 위한 세상이 행복하고 편할리는 없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 소수를 위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눈길 한번 주려하지 않던 소수의 이야기를 말이다.
어쩌면 심오하면서도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가 될법한 소재임에도 영화는 생각보다 밝고 명랑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할말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 특히나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는 영화인만큼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도 생길법하지만..
2003년도에 개봉했던 여섯개의 시선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 그 영화를 봤다면 상당히 이 영화도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이 영화의 기획단계를 설명해보자면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지만 기획이후의 모든 것은 감독에게 맡기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영화의 상영시간과 제작비만 지켜진다면 그 이외의 것은 일절 터치하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자체가 지니고 있는 소재면에서의 동질감만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독립적인 영화자체로의 성격을 보장받아도 손색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이번 다섯개의 시선에 참여했던 정지우 감독님께 직접 들은 바이기에 확증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정부적인 변명거리 제공에 영화가 이용된다는 식의 발상을 즐기는 분이라면 자제하고 영화를 순수하게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다섯개의 시선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만큼 이 영화는 다섯개의 크레딧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다섯개의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선장은 각각 다르다. 그리고 일반 관객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감독도 있고 영화에 애착을 지닌 사람이라면 반길만한 이름도 있다.
일단 짧지만 굵직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닌 이야기를 한번 하나하나씩 소개해 보겠다.
<언니가 이해하셔야 되요> - 박경희 감독
이 영화는 실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은혜에 관한 영화로써 실존인물이 출연했고 그녀의 실생활을 영화로 각색한만큼 리얼리즘에 가까운 영화라고 보면 된다.
솔직히 우리가 장애우를 대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일단은 멀리서 바라보는 동정심이 자신과의 맞물림이 생기면 이기적인 외면으로 변화하기 쉽상이니까. 불편을 감수하며 그들의 고충을 함께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천사와 같은 성격이 아니라면 분명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약간이나마 불만이 생기고 그로 인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살짝 비뚤어질 가능성이 있다.
동정이라는 것은 일단 나쁘지 않은 듯하지만 상당히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동정이라는 감정 자체가 가슴이 아닌 머리에서 우러나오는, 즉 감정의 허물을 쓴 생각이기 때문이다. 동정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아픔을 느끼기 전에 이해함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심이 만들어 낸 감정이 진심일리도 없지 않은가. 마치 빛을 밝히기 위해 라이터를 켜고 잠시 둘러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잠깐의 착한척은 본심에 밀려 금방 사그러지기 마련이니까.
불쌍하다란 말은 본인 스스로가 불쌍함을 느끼는 이들을 대할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에 비해 불행할지 모르나 그들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뿐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배려를 빙자한 차별을 행할 때가 부지기수다.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우리는 그들을 대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해주는 영화다. 우리가 내려다 본 그들의 불쌍한 삶은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삶이니까.
박경희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써 장애우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현실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은은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자연스러운 접근을 시도했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 류승완 감독
남자는 여자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감성적으로 그렇다. 남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남자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되는 일도 있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남자이야기는 사회적인 체계가 만들어낸 남자만의 서러운 현실이 아닌 남자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 본인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강박관념같은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자라면..이 짧은 말 안에 담겨진 수많은 압박감은 실로 크다. 남자는 모름지기 당당해야 하고 강해보여야 한다는 본능적인 압박감은 남자 본인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슬과 같다. 그리고 그러한 강박관념은 인간 자체안에서 남자라는 하나의 성(性)에 스스로 가둔다.
허세와 위선을 앞세운 강함이 전면에 배치되는 것이 남자지만 그 뒤에 다가오는 후회와 자기모멸감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것도 남자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으로써 남자가 이야기하는 남자이야기다. 남자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심리적 속박감에 갖힌 채 사는 한 남자를 통해 남성적 우월감에 젖은 성(性)적 폐쇄성을 풍자적이면서 유머스럽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또 한가지 재미는 온주완의 출연인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중 가장 관객들에게 친근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베낭을 멘 소년> - 정지우 감독
탈북소녀에 관한 이야기. 중국에서의 대사관 월담에서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한번의 시도로 결국 한국땅을 밟은 이북소녀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이방인이 겪어야 하는 고충담을 흑백영화의 감성에 담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
민족성은 남과 북을 연결해주는 막연한 끈이지만 그 끈을 부여잡고 남으로 넘어 온 탈북소녀에게는 허망한 환상일 뿐.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것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만 따뜻한 환영이 아닌 차가운 경계의 대상이 된다. 생사의 기로를 넘어서 밟은 남한 땅에서 얻은 것은 동포애가 아닌 또다른 사회적 차별감.
이 작품은 흑백의 영상이 보여주는 쟃빛감성만큼이나 내용 자체에도 기묘한 전개력이 있다. 특히나 약간의 충격을 얻게되는 결말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지니는 결속력에 끼어들지 못하는 이방인의 슬픈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19세의 나이로 오토바이를 타다 숨진 탈북소년의 실화를 통해서 북한의 억압된 현실을 등지고 자유가 보장된 우리 사회에서의 비정한 현실을 찾은 소년의 비극적 이야기가 보여주는 잔잔한 충격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정지우 감독의 작품으로써 탈북소녀를 통해서 이 사회가 지닌 이방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투영했다. 담담하면서도 조금은 우울함을 머금은 흑백컬러가 쨍하고 금갈 것 같은 침묵적 소음과 함께 어우러져 독특하면서도 심도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고마운 사람> - 장진 감독
자유가 철저하게 억압되던 유신시절. 고문하는 자와 고문당하는 자가 있다. 자유를 목놓아 외치던 청년은 안기부의 밀폐된 지하실에서 주모자를 자백해내라는 고문관의 요구에 응하지 않기에 고문은 계속되고 심문도 계속된다.
본인의 목적이 아닌 타인의 의지로 인해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위트있고 재치있게 풀어나가는 이 작품은 재미있으면서도 잔잔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밀폐된 지하실안에 갇혀서 24시간동안 잠도 자지 못한 채 고문당하는 자도 괴롭지만 밀폐된 지하실안에 머물며 24시간동안 잠도 자지 못한 채 고문해야하는 자도 괴롭다. 그럼으로써 고문당하는 자와 고문하는 자로써 극단적인 위치에 서 있는 두 사내는 모종의 동질감과 함께 서로간의 연민을 느낀다. 두 인물간의 팽배하던 적대감은 서로의 고충이 상대방에게 깊은 이해심으로 스며들면서 알 수 없는 동질감에 대한 우정으로 변모한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 계약직의 고충을 영화에 은근히 심어놓음으로써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가벼운 논거도 심어놓았다.
인물간의 심리변화와 더불어 재치있는 상황묘사와 위트있는 대사를 통해서 가볍지만 가슴 밑바닥에 깔리는 여운이 살며시 남는 영화다.
장진 감독 특유의 위트가 이 영화에 심어져 있다. 다섯개의 시선 중 가장 대중적으로 어필할 가능성이 보이는 이 작품은 소재가 보여주는 측면의 이면적 이야기를 하고 있고 무거운 소재를 가벼우면서도 능란하게 다루는 재담꾼으로써의 그의 재능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종로, 겨울> - 김동원 감독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기본으로 하는 리얼 영상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섯개의 작품 중 가장 심도있었고 충격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어느 겨울 종로거리에서 얼어죽은 조선인 중국동포 고(故) 김인섭에 대한 이야기로써 주변 사람의 실제 인터뷰 영상과 더불어 실제적인 영상자료와 함께 우리 사회의 오만한 동포애를 고발한다.
2003년 12월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길을 나섰으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쓰러져 결국 세상을 떠난 김인식씨는 112와 119에 구조요청을 하였으나 그에게 돌아온 건 불친절한 비아냥 뿐이었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의 비극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조선인들에 대한 천시적 태도와 오만한 상대적 우월감을 보여준다. 남이 아닌 동포라지만 남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 조선인들을 통해서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한 차별적 동포애를 살며시 드러내고 있다. LA에서 온 부유한 재미교포는 환영하면서 만주에서 건너 온 가난한 조선인은 외면하는 이 사회의 비정한 현실을 겨울거리만큼이 나 쓸쓸하게 묘사하고 있다.
김동원 감독의 작품으로써 현실적인 문제제기적 모티브에 젖어 있는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리얼한 영상의 적절한 편집을 통해 보여지는 다큐적 충격은 감이 지나치지도 않으면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렇게 다섯개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영화는 이 사회가 지니고 있는 친절한 가면 뒤에 숨겨진 비정하고도 이질적인 차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 이야기도 있고 뜬 구름 같은 이념적 이야기도 존재하지만 다섯개의 시선은 각자의 눈빛으로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다섯 감독들의 영화를 두루 볼 수 있는 재미와 더불어 가슴 깊에 남는 여운과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다섯개의 시선은 한번쯤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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