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영화 <청연>에 대해 실존인물인 주인공 박경원에 대한 친일 논란이 터지기 전까지는 참 보고 싶은 영화 중 하나였다. 예고편만 봐도 뭔가 감동이 물밀듯 밀려올 만한 휴먼 블럭버스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더구나 실존인물을 소재로 했다기에 그 감동이 더 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박경원에 대한 친일 논란이 터지고 난 뒤에 많이 망설여진 게 사실이다. 더구나 결코 우리와 별개의 문제로 봐 넘어가선 안되는, 지금도 매우 중요한 사안인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기에, 설사 친일 논란에 휩싸인 주인공을 미화시켰다 해도 무작정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였으니까. 그러나 그래도 이전부터 보고 싶었다는 마음이 남아있는 건 사실이었기에 결국 보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하려니까 이렇게 참 착잡한 느낌이 들기는 또 거의 처음이다. 이 영화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실화 바탕의 휴먼드라마처럼 주인공을 꿈을 이룬 이상적인 주인공으로 그리고, 그 속에서 결말에 큰 감동을 터뜨렸다면 "이거 논란의 중심에 선 주인공을 너무 미화한 거 아냐?"하는 의구심이 확 들었을 텐데, 문제는 이 영화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감동적인 장면이 있긴 있었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 수록 이 영화는 예고편이나 광고에서 봤던 "2005년을 정복할 감동"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일제 강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10년, 소녀 박경원(장진영)은 어른들은 천하의 몹쓸놈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일본군들에 대해 "하늘을 나는 닌자들"이라는 환상을 가지면서 동시에 하늘을 난다는 것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계집애는 집안일말고는 할 일이 없다"는 가부장적인 부모님들의 시각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결정적으로 경원은 들판 위를 날던 거대한 복엽기를 보고서 정말 하늘을 날고 싶다는 절박한 꿈을 가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박경원은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일본으로 넘어와 낮에는 비행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택시기사 일을 하며 힘겨운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택시 손님으로 같은 조선인인 한지혁(김주혁)을 만나게 되고 그와 애틋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박경원은 하나둘 비행사로서의 자격요건을 갖춰나가면서 비행의 꿈을 이뤄나가고, 강력한 라이벌인 기베(유민)과의 대결 등을 거치며 명실공히 최고의 여류 비행사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여류 비행사가 되어가는 박경원 앞에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매국노"와 "여류비행사" 사이에서의 혼란, 이로 인한 더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영화 배경이 되는 친일 논란 여부를 떠나 영화 자체를 평가해본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규모를 불리면서도 볼거리로만 승부하지 않았고, 인물들의 내외적 갈등이 잘 살아나 긴장감과 같은 여러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 영화가 그토록 공을 들였다던 비행 장면은 생각보다 어색한 면이 별로 없으면서 시원한 볼거리를 선사해주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중반부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박경원이 목숨을 걸고 수직상승해 구름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더불어 마지막엔 속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후반부 빗속에서 마지막 비행을 감행하는 장면도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과 함께 빗속에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주인공의 긴장감이 무리없이 잘 전해졌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티가 확실히 보였다고나 할까.
이렇게 시각적인 면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나 캐릭터들간의 갈등에 있어서도 꽤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경원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한없이 당당하다가도 꿈 앞에서의 그런 당당함 때문에 눈물도 흘리는 장진영의 연기는 기존의 도시적이면서 자기 주장이 곧은 여성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그에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혁 역의 김주혁이 보여준 연기 역시 만족스러웠다. 이 영화가 박경원이라는 여자 주인공을 거의 원톱으로 내세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끊임없이 협조해주고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해줄 줄 아는, 그러나 친일파인 아버지와 그 뒤를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때문에 내면적 갈등도 거듭하는 한지혁의 모습은 주인공 박경원과 거의 대등한 비중의 인상을 남겨주었다. 영화로는 이번이 데뷔작인 이정희 역의 한지민도 데뷔작임을 고려할 때 꽤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우상과 같은 박경원을 친언니처럼 따르면서도 사랑의 감정 앞에서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는 어린 여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앞에서 얘기했듯, 이 영화가 오히려 내가 예상했던 감동 가득찬 휴먼드라마의 모습이 아니라서 어떻게 평가하기가 더 복잡해진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시대가 옳게 여기는 이념과 자기가 옳게 여기는 신념 사이에서 부단한 갈등과 고통을 겪는 한 여인의 성공과 몰락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박경원은 분명, 우리가 어떤 객관적 기준으로 분명하게 바람직한 사람, 바람직한 사람이라고 판단학기가 힘든 사람이다. 어떤 난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비행사를 향한 자신의 꿈을 굽히지 않은 점은 분명 바람직한 부분이지만, 그 꿈을 위해서 연인이 감옥에서 고문을 받아도 묵묵히 참아야 했고 한창 고국이 일제 강점으로 고통받고 있을 무렵에 일본에서 나쁘지 않은 환경과 일본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최고의 비행사 자리에 올라섰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다. 이렇게 박경원은 감독 말마따나 "양날의 칼을 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이렇게 이중적인 면을 지닌 박경원의 모습을 아주 미화하지도, 완전히 비판적인 어조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물론 속이 시원해지는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그녀의 비행 장면 등에 있어서는 비판적인 어조보다 인간적으로 감동을 받기를 원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러나 푸른 창공을 날며 꿈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박경원의 희열을 보여주는 것도 잠시 뿐, 영화는 그녀의 꿈과 함께 절대 외면할 수 없는 현실도 병치시키며, 그 사이에서 주저하는 박경원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단 박경원만이 아니라, 박경원의 연인인 한지혁(이 사람은 가상인물이다) 역시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아버지의 말에 따라 일본으로 와서 미래에 대한 확실한 기약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결국 일본 기상장교로 들어가지만, 이에 힘입어 자신의 아들마저 기꺼이 일본 군부에 "바친" 그의 아버지는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중요한 의원이 된다. 아버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따르면서도 그것이 결국 아버지를 비롯한 자기 가문이 일본에 충성하게끔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밖에 없는 한지혁의 모습은, 신념과 관계없이 시대의 흐름에 사로잡혀 힘없이 나풀거리는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약 이 영화 속 내용들이 완전히 날조되지 않았다면(끝나면서 자막을 통해 나오듯, 이 영화는 상당수 각색을 거친 터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박경원은 자신의 꿈을 이룬 여류비행사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그 꿈을 위해 많은 것을 버리고 무시해야 했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일본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한 홍보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일본 정부 앞에서, 개인에 불과한 그녀는 마땅히 저항할 힘도 없이 그저 일본 정부의 요구에 승복하고 만다. 죽기 전 마지막 비행을 앞두고서도, 일본의 대외 홍보 수단으로 쓰인 그녀는 일장기를 흔들며 포즈를 취해야 한다. 실제로 그녀가 자진해서 일장기를 흔들었는지, 아니면 강압에 의해 일장기를 흔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상관없이 그녀는 자신의 꿈, 신념을 위해 시대에 바람직한 이념의 일정 부분을 버려야 했음은 틀림없다. 가상인물로 설정한 박경원의 연인 한지혁도 집안이 친일파로 설정되어 그로 인한 갈등을 겪는 것처럼, 영화는 큰 업적을 세운 실존인물의 감동적인 인생역정을 그리기보단, 자신의 신념과 시대의 이념 사이에서 주저하다가 서서히 일그러지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론 박경원은 자신의 신념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그로 인해 시대의 이상적인 이념을 포기한 데에서 오는 질책을 수없이 받았고.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시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중 어느 것을 추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가라고. 물론 두 부분이 일치한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박경원의 경우처럼 이 둘이 충돌하게 된다면 이것 참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경원의 경우는 자신이 비행사라는 꿈을 이루기에는 조국내의 환경이 턱없이 부족했고, 간신히 건너간 일본에선 성공을 위해서는 조국 사람들이 바람직하게 여길 애국적인 언행을 보여서는 곤란했다. 이처럼 영화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 신념과 열정이 중요하다지만,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흐름에 몸을 내맡길 수 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쓸쓸한 모습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 박경원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큰 업적을 이룬 여류비행사라기보다, 이념과 신념의 충돌로 인해 스러져 간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자신의 신념과 시대의 이념이 일치되어 그 어떤 시대의 제약에도 아랑곳않고 꿋꿋이 버텨낸 독립운동가 분들이 진심으로 위대하고 비범한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 <청연>은 박경원을 철저하게 미화하고 아름답게 그리기보다는, 그녀를 마치 일제 강점기 자신의 꿈을 시대의 제약으로 인해 일정 부분 버려야 했던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대표격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도 도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당시의 역사, 한 인물의 행적이 이 영화에서 도덕적 평가는 유보되었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실존인물에 대한 무조건적 존경이나 미화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꿈에 가까이 다가갔으나 점차 무너져가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은 꽤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영화는 친일 여부라는 도덕적 논란에 휩싸인 박경원이라는 인물에 있어서 도덕적 판단은 다소 유보한 채 관객들에게 맡기는 편이기 때문에, 앞으로 보실 분이라면 이를 염두에 두신다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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