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part 1 에서 말한대로 형사의 재미는 흐트러진 이야기들을 담아 재완성하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습니다. 되도록 먼저 이 재미를 느끼고 이 내용을 보시는게 좋을 겁니다. 아래 내용은 남순과 슬픈눈의 사랑과 병판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만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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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을 도모하는 병판대감의 집에 좌포청이 들이닥치고, 죽음을 앞둔 그의 옆엔 슬픈눈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병판은 슬픈눈에게 묻는다. "니 이름을 불러본지도 오래 됐구나. 네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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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이 슬픈눈에게 사랑을 느끼기 전부터 슬픈눈은 이미 남순에게 마음을 주고 있습니다. 장터에서 검무를 추는 귀면탈을 쓴 슬픈눈의 시선은 계속 남순을 향하고, 좌포청에서 미행하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되려 장터를 구경하며 남순을 생각하며 옷고름을 고르죠.
이어지는 돌담 격투씬에서 가슴이 드러나고 남자처럼 지내온채 숨겨져 있던 여성성을 남순은 자각하게 됩니다.
연회의 검무가 끝나고... "이 아이가 마음에 드나 봅니다" 검무를 추기전 남순을 향하던 슬픈눈의 시선은 우연이 아닌 분명 의식적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검무를 추며 남순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베어버린것 역시 슬픈눈의 남순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죠.
술상을 앞에 두고 남순은 슬픈눈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글쎄" 목적없이 남을 죽이며 숨어살아가는 그에게 이름 따윈 필요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죠.
슬픈눈은 인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뛰어나가고, 병판을 만납니다. 검무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시선에서 슬픈눈의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주시하고 있던 것이죠. 그리고 고사를 빗대어 자신을 따르도록 합니다. 슬픈눈의 다친 손에 감는 천의 색은 시기, 질투, 경고를 의미하는 노랑색입니다.
"우리 전에 만났던 적 있죠. 세상에는 어떻게 변할지 알수 없는 세가지가 있죠....(중략)... 여자의 얼굴 " 남순도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병판과 슬픈눈의 대화를 들으며 병판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둘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남순을 보고도 모른척 하는 것을 보며 슬픈눈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것을 느끼게 됩니다.
남순의 사랑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던 안포교는 "사과를 하나 훔쳤든, 달구새끼를 훔쳐먹었던 나쁜놈은 다 같은 나쁜 놈이여" 남순이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입니다. 병판의 역모를 행하는 현실속에서 고뇌하는 슬픈눈을 보며 남순은 더이상 슬픈눈에 대한 감정을 애써 거부할수 없게 된 겁니다.
좌포청의 동료들이 병판대감 일당에게 죽고, 남순은 슬픈눈을 찾아 홍등가로 들어갑니다. "잠시라도 사람 새끼로 본 내가 미친년이여." 사실 그동안 그들의 교감을 나눈 대화가 거의없다시피 하기에 이 대사는 조금은 쌩뚱맞기도 하죠. 하지만 남순의 사랑이 가슴 가득히 존재하기에 그에게 칼을 들이댈수 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 그녀의 입에서는 이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거죠. 강렬한 음악과 함께 흐르고 있는 부드러운 선율의 멜로디처럼 남순의 마음속 충돌을 표현한 것이죠. 그리고 그들이 칼을 맞댔을때 슬픈눈의 얼굴에는 미묘한 웃음이 흐릅니다. 검을 맞대며 남순의 감정을 확인한 것이죠.
병판의 장부를 전달하기 위해 다시 만난 주점에서 그들은 정답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지만 이건 남순의 상상이었을뿐, 그들이 정작 나눈 말은 무뚝뚝하게 내뱉은 남순의 이름과 슬픈눈이 자신의 이름대신 남겨둔 장신구와 장부가 다 였습니다. 뒤늦게 나마 슬픈눈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지만, 그녀는 아무말도 전하지 못하죠.
드디어 좌포청은 들이닥치고, 죽음을 앞둔 병판의 옆에는 슬픈눈이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니 이름을 불러본지도 오래 됐구나. 네 이름이......." 역모를 꾀하는 동안 그의 눈이 흐려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그가 화살을 쏜 사람만 찾는 간신배와 다를바 없었다는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병판이 슬픈눈을 향해 보여줬던 모습들은 자식의 목적을 위한 가식적 눈물이었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마지막까지 함께한 슬픈눈을 이제는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겁니다.
"너냐..... 니가 그랬니?' 허나 가식이 깃들기는 했으나 모든 말이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병판은 전부터 그가 배신할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나, 베지 않고 끝까지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슬픈눈은 이러하기에 배신할수 밖에 없었고, 이러하였기에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것입니다.
"내 이름은....." 슬픈눈은 자신의 존재를 찾았지만, 끝내 자신의 이름은 말하지 못합니다. 남순의 사랑은 갖지 못한 반쪽자리 존재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슬픈눈은 죽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남순은 슬픈눈을 회상하며 그 앞에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둬야 했던 이야기를 검으로, 눈으로 말하며 사랑을 완성시킵니다.
마지막 장면, 대장장이가 허풍인지 진실인지 모호한 두사람의 사랑이야기를 하며, 그 옆으로 남순과 일행들이 지나쳐 가고 슬픈눈을 화면 가득 비춥니다. 남순의 옷차림을 봐선 병판집에 잠입하려는 걸까요?. 아니 어쩌면 그들 모두 대장장이의 이야기와 관계없는 인물들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대장장이의 이야기가 퍼지고 회자되면서 그 속에서 두사람은 불멸한 사랑을 완성할 거라는 겁니다. 남순과 슬픈눈은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야기하진 못합니다. 첫사랑 처럼 조심스러운 그들의 사랑. 아직도 왜 그들이 사랑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십니까? =============================================================
숨은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숨어있는 요소들을 찾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죠. 이것이 형사의 가장 큰 재미이자, 치명적 약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재미를 깨닫게 되신다면, 처음으로 관객이 피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는 영화에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형사를 4 번이나 보았지만, 아직도 다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병판과 슬픈눈의 마지막 대사, 남순의 슬픈눈의 허상과 대면하여 보인 첫 웃음을 이해하신다면 여러분은 이미 형사의 전부를 보신겁니다.
사실 마지막 장면은 사실 병판집에 잠입하기 전도 후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숙제입니다. 저와 같이 형사의 가장 큰 재미를 느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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