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의 재상영이 직면하고 있는 찬반의 논란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논란’의 핵심은
이 영화가 가진 ‘새로움’에 대한, 그리고 그 새로움을
가장 진부한 형식으로 ‘단순화’시켜 보여준 것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또 그것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편에서의
무한한 애증의 대립인 것만 같다.
‘형사’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격론을 벌이는 장소에는
‘애정’을 가진 분들 못지 않게
‘애증’을 가진 분들이
대중을 향해 보여주는 그 눈물겨운 자기증명은
때로는 이분들이 ‘형사’가 자신 안으로 체화되는
과정을 좀더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잠재적 지지자’이거나
‘변증법적인 열광자’들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기까지 한다.
그분들은 때로 무슨 무슨 까페에 가입하여
어떠 어떠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실상을 올려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리플도 달아 준다.
쉽게 말해 제 싫으면 그만일 텐데
지지자들의 작은 글 하나 하나에도
본인의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유발시킬 격노의 댓글을 달아준다.
일부 지지자들의 아이디까지 꼼꼼히 기억했다가
세심한 일격을 날리기도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형사’라는 무협 액션 멜로 장르의
100억짜리 블록버스터 대중영화가 갖추지 못한 미덕을
그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스토리를 팔아먹어 버린 것
강동원이 연기를 발로 하고 있다는 것
하지원은 심히 우형사스럽다는 것
화면빨로 승부한다는 것
칼싸움이 아니라 칼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
초라한 막내림 이후 재상영운동에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끝이 없을 것 같은 격노는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이 시점에서 나는 사뭇 궁금해 졌다.
최근에 ‘형사’에 대한 지지자들의 대관을 통해서야
이전에는 본 일 없던 이 영화의 예고편 보게 되었는데
격렬한 전투신과 대결신이 이어지는
예고의 마지막에는 여지없이 붉은 글씨로
‘형사-duelist
‘인정사정볼것없다의 이명세감독 작품
이라고 찍히면서 끝난다.
그 문구가 딱딱 찍히는 시점에서 비로서
이 영화의 불행의 시작이 어디서였는 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기대했던 영화에 대한
처절한 배신에서 였던 거다.
그 기대란
이명세의 필로그라피에서
전무후무한 흥행작이도 하고
돌출된 액션영화인
‘인정사정볼것없다’의 연장선상에서
놓인 영화를 강조하는 예고편의 카피에서 시작한다.
이 예고편 카피가 신뢰할 수 있는 감독의 기대할만한
작품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려고 한 순수한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겠지만
격렬한 대결씬 뒤에 방점을 찍는 그 카피는
내게
기대할 만한 새로운 액션 대작!!!!!!
인정사정 볼것없다의 우중대결을 이은
또 하나의 운명적 대결!!!!
기대하시라!!!!!!!
만빵으로!!!!
이렇게 읽혔다.
그래,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운명적 대결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다.
첫사랑이란
누구에게나 가장 운명적이고
지독하고,
죽을 때까지 각인을 지니고 살게 하는
한번의 치열한 전투이며
영화의 영원한 화두 중 하나이니까,
그러나,
홍보문구에서 대중이 읽듯,
액션의 대결은 아니었던 거다.
예고편이 주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사실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한참을 비껴났기에
차라리, 액션 그 하나만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라고 초지일관한 무영검보다
더 대중의 격노를 부르게 된 거다.
그럼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강동원은 연기를 발로 하는가?
-하지원은 왜 우형사스럽기만 한가?
강동원을 훌륭한 연기자라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강동원은 이 영화에서 제 몫을 100% 다하고 있다.
하지원도 마찬가지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 둘의 연기를 폄하하더라도,
이 역할에 다른 배우를 거론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감독조차도 이 둘이 없는 ‘형사’를 생각할 수 없다라고 했다.
완벽주의자인 감독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강동원이 연기를 발로 하는 것도
하지원이 우형사 스럽기만 한 것도
결국 다 설정이라는 결론이다.
내가 알바네 뭐내 욕을 먹어가면서도
네이버에 글을 신나게 올리던 무렵
(완전 필 받아서, 누군가에게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은,
동네 방네 자랑질 하고 싶은 마음에 몸이 애달아 있던 때)
누군가 이 영화는 남순의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처음에는 갸웃했지만
영화를 13번 보면서
나는 이게 남순의 짝사랑에 대한 영화라는 데에
어느 순간 동의하게 되었다.
처음 장터에서 남순의 걸음걸이와 그 우악스러움은
딱 철모르는 소년이다.
안포교에 의해 ‘각인’된 남성의 질서에
편입되고 싶어 몸달아있는
그래서 다른 동료들보다
더 품새가 거칠고 우악스러운.
그런 그녀가 ‘슬픈눈’을 처음 바라보는 순간
잠시 소녀의 눈으로 돌아간다.
소녀의 눈에서 바라보는
슬픈눈은 끝간 데를 모를 만큼 눈부시다.
첫사랑이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이유도 없이 그 상대란
눈부심 그 자체인 거다.
처음으로 자신이 여성임을 발견하는 순간
새로운 각인의 순간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첫번째 담장에서 대결신
그녀는 가슴이 약간 드러난 옷매무새를 고치기 위해
생사가 달릴 수도 있는 대결을 포기하는 그 순간이다.
다음 장면에서 동료들에게 달려서
자신의 옷매무새를 걱정하는 안포교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않고
일 얘기를 꺼내는 그녀에게는
방금 전의 그 부끄러움이 없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여성이 되어간다.
마지막 슬픈눈의 죽음을 듣고,
그와 만났던 계단이며, 홍등가며, 담장을 걸어가는
그녀의 조심스럽고 사뿐한 걸음걸이에는 더 이상
유사 소년으로 살아가던 모습이 없다.
단지 사랑을 잃은 처연한 여인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결국 하지원의 우형사 스러움은
그녀의 소년스런 소녀가
첫사랑을 통한 자기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성장기를
대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한
이명세의 트릭이었던 것이고,
강동원의 현실세계같지 않은 아름다움과
비현실적인 연기는
그 소녀의 입장에서 바라본
눈부신 첫사랑의 환상이었기 때문이 거다.
-화면빨로 승부한다는 것
-칼싸움이 아니라 칼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
이명세감독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스타일리스트다.
그게 그의 모든 영화의 특징이다. 화면이 놀랄만큼 아름답다는
칭찬의 다른 언어라고 생각하며, 화면빨로 승부한다는 것은
이명세에 대한 찬사로 듣겠다.
두번째 죽일마음도 없으면서 칼만 맞대고
뱅글뱅글 돌면 대결인줄 아느냐에 대한 비난은
스토리 실종과 같이 이야기 되야 한다.
화면빨로 승부한다는 이야기도 결국 스토리 부재에 대한
비난일 거다.
이영화가 새로운 지점,
내가 놀라워하며 동네방네 자랑질을 하고 싶었던 부분도
이 스트로리 부재에 있다.
이영화에서 화두는 두 가지다.
-첫사랑
-성장
이걸 보여주는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다.
여자와 남자의 만남과 헤어짐
그들의 부모와 그들의 관계
그런 영화를 보면서 내 체험치를 끌고 가 그들과 조우했다.
내 안에는 여러 버전의 형사의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보고 보고 또 볼수록 여전히 새롭다.
재상영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또한번 정당한 논거를 제공해주기 위해서도
그 끊임없이 열정적인 분노에 적당한 연료를 다시 환기시켜줄 수 있도록
형사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모든 이유에서 재상영을 열렬히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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