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술영화를 싫어한다. 끔찍히.
어릴 적에는 괜히 잰 채 하느라 예술영화를 빌리기도 했다. 내 20대 초반,
현학적이다라는 단어에 매료됐던 시기. 발음하기도 어려운 유럽감독들의 비디오.
어렵게 빌려놓고는 늘 비디오데크에 넣어보지도 않고 반납했다. 때론 비디오커버에 적힌
몇 구절의 소개의 글을 읽고는 마치 뭔가 아는 것처럼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며칠 전 OCN에서 한 대가의 작품이라는 ‘피아니스트’를 봤다. 어떻게 우연히 중간쯤 보게
되었는데, 끝까지 마음을 졸이며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듯이 집중을 하게 됐다.
그 작품이 그 작가의 유난히 대중적이었던 작품이어서 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취향이
다른 영화를 그렇게나 재밌게 본 건 신기한 일이었다. 중간 중간 광고시간이 너무 길게 느
껴질 정도로. 이런 일은 내게는 좀체 없는 일이다. 난 SF광이니까.
어떤 영화나 내 안에 들어오게 하는 법을 가르쳐 준 영화는 ‘형사’이다.
‘형사’를 13번에 걸쳐보면서, ‘형사’가 내게 준 마술열쇠다.
그것은 ‘형사’라는 영화가 평론가와 대중의 혹독한 비난에 시달리는 와중에, 내가 왜 이 영
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지를 스스로 납득시키고 정당화시키는 뜨거운 고통의 시간에서
얻어진 자기진화이며, 결코 지워지지 않을 불도장이다. ‘강동원’과 ‘하지원’이라는
이 시대의 가장 트랜디한 아이콘을 내세워 자기 전작 ‘첫사랑’을 21세기적으로 변주해낸
감독은 이제 지천명을 바로 앞에 둔 영화계의 노장이다. 충무로 조감독으로 충무로의 냉정한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가 내놓는 그 젊은 영화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삶을 반성하
고, 또 반성한다.
삼십의 나이에 이미 뜨겁지 않고, 안온하고, 식어버린 찬밥 같은 느낌없는 나의 삶을.
‘형사’가 영원히 상영관에서 개봉할 수 있다면, 나는 DVD를 보는 것보다 매주 극장을
가는 것을 선택할 거다. 매번 CGV 규모가 작은 상영관에서 보다 메가박스 1관에서 보았을
때, 또 수도권변두리 음향시설이 안 좋은 상영관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가 얼마나 다른 영
화일 수 있는 지, 보는 내자신도 놀라 정도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동생이 ‘아라비아로렌스’
를 대한극장에서 보고 와선, 대형스크린에서만 봐야 하는 영화라고 했을 때도 그래? 하구
말았는 데, 3D 아이맥스영화 말구도 영화관에서만 상영되어 그 미덕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영화가 정말 있었던 거다. 그게 내가 형사 재상영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여러가지 하마평들 때문에 개봉 후 이주나 늦게 만나게 된 형사이지만 내 인생의 최고의 영
화로,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까지 정립할 수 있엇듯이, 이 영화의 재상영이 나와 같은 행
복한 지각생들을 많이 만들어 결국은 한국영화가 다같이 발전하기 바라는 마음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