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가 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윤종빈이라는 새파란 청년이 졸업작품으로 찍었다는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비롯한 4개부분을 수상하며 한국영화계가 올해 거둔 최고의 수확이라는 등의 극찬을 얻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어쨌든..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여자들이라면 질색을 한다는 군대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술자리에서 남자들의 무용담을 지겹게 들어가며 어디까지가 뻥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기도 귀찮아진 그녀들에게도 이 영화는 재미있다.
이 영화는 군대라는 하나의 특별한 사회이자 조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무슨 군생활의 실태를 까발리고자 하는 다큐멘터리성 고발 프로그램도 아니고 아름다운 병영생활을 홍보하는 국방홍보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말그대로 군생활에 대한 모습을 진솔하고 재치있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어렵고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시킨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군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흥미를 끌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주인공인 유태정(하정우 역)은 병장으로써 내무실의 상위 고참으로 열심히 군생활을 해 온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날 새로 들어온 신병이 자신의 중학교 동창인 이승영(서장원 역)임을 알고는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도와준다.
이 영화에는 두개의 시점이 있다. 태정이 승영을 처음 군대에서 고참과 후임으로써 만나게 되는 과거의 시점과 태정이 제대후 휴가나온 승영의 연락을 받고 만나세 되는 현실의 시점이 나란히 배열되어서 진행된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두사람의 겉도는 대화와 승영의 집착에서 우리는 진행되는 과거 군생활의 이야기에서 보여질 그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짊어지며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군생활을 잘 하고 못 하고를 판가름하는 것은 자존심을 버리느냐 버리지 못하느냐에 있다. 군대란 사회는 남자들만의 조직세계이자 이사회와는 또다른 울타리 너머의 작은 사회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정당한 논리와 도덕성보다는 힘과 권위있는 계급체계에 따른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법칙만이 그 세계를 유지하는 룰이다.
그러한 룰을 무시하는 정당함따위는 그곳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로 낙인찍히며 혹독하게 따돌리고 무시한다.
이 영화는 사실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알고보면 이사회에서 통용되는 폭력의 묵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승영이 처음 이해할 수 없는 계급의 이기적인 횡포에 대항하다가 결국 그러한 횡포에 맞서지 못하고 차차 순응해가다 결국은 동참해가는 승영의 변화는 가히 충격적이다. 인간이 하나의 사회에서 옳은 길을 택할 것인지 쉬운 길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고민에서 방황하지만 결국은 쉬운 길을 택해가는 현실의 과정을 이 영화는 여과없이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난 내가 고참되면 내가 다 바꿀꺼야.'라는 승영의 말을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다 너만 결국 힘들어져.'라고 받아치는 태정의 말은 결국 폐쇄적인 사회의 변동의 어려움을 몸소 알고 있는 태정의 경험에서 기인한 예견된 비웃음이다. 그리고 변화를 주도하리라던 승영이 다수의 횡포앞에 무릎을 꿇고 타협의 악수에 손을 내미는 순간 사회의 통용적인 비겁함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승영의 확연히 달라진 태도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저울질하던 그의 죽어버린 정당성의 주검앞에서 확인사살을 하는 것이리라.
단지 군대에서만의 이야기일까. 우리 사회 역시나 마찬가지다. 사회의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을 사회의 부적응자로 밀어붙이며 다수의 논리라는 횡포아래서 소수의견을 묵살하고 무시하는 사회의 횡포는 군대의 그것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것 또한 군대에 길들여져가는 승영처럼 우리 역시 이 사회에 잘 길들여져 있음일지라.
계급이 깡패라는 말처럼 계급질서의 유지라는 명목아래에서 폭력이 정당화되고 도덕적인 논리와 인권이 무시되고 유린당하는 군대라는 곳에서의 적응은 옳다고 믿는 것을 버리고 그러한 논리에 맞장구만 치면 된다고 영화는 속삭이고 있다. 그러한 속삭임은 결국 언젠가는 다가올 스스로의 비겁함과 비굴함에 대한 서글픈 추억과 현실로 다가옴이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제대한 후 그렇게도 군대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그 어려운 곳에서 버텨냈다는 자부심도 있겠지만 그러한 현실안에서 순응하며 살아야했던 자신의 괴로움을 마저 털어내고 싶음이 아닐까.
어쨌든 이 영화는 죽음으로써 충격적인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비겁했던 선택에 속죄하듯 죽음을 선택하는 승영에게 나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그러한 선택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승영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나자신에 대한 막연한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 영화는 여러모로 훌륭하다. 하정우와 서장원이라는 뛰어난 배우들의 발굴과 저예산의 영화로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를 만들어낸 윤종빈 감독의 발견은 올한해 우리영화계가 거둔 최고의 수확이라는 찬사가 감히 아깝지 않다.
군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용서받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원죄를 머금으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 복종의 아름다움이라고 포장된 길들여짐의 미학을 교육받으며 일련의 길들여짐 끝에서 누군가를 길들여야만 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서글픈 우리네 현실이나 군대나 마찬가지라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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