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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보다 아름다움을 택한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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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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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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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0 오전 12:4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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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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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폐인'이라고 할 정도로 <다모>를 애청한 건 아니었지만, 그만의 작품성과 화려한 액션과 동시에 가슴도 울리는 감동을 어느 정도 경험해봤었기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꽤 반가웠다. 그러나 여러 소식통을 통해서 <다모>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감독이 이명세 감독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확실히 달라지겠군'하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아니나다를까, 이 영화 <형사>는 <다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정도로 다른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 얘기를 하면서 <다모> 얘기를 한다는 게 뻘쭘해질 정도로 확실히 다른 영화다. 거기에 덧붙여, 이 영화는 우리가 보통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으로 봤다간 꽤 낭패를 볼 확률도 큰 영화다. 얘기의 시발점이 되었던 <다모>와도 많이 다른 걸 넘어서, '영화'라는 기본틀 자체내에서도 상당히 의외인 구석이 많은 영화였던 것이다. 스토리는 그닥 복잡하지 않다. 우리의 주인공 남순(하지원)과 안 포교(안성기)는 나이차는 꽤 되는 듯 싶어도 서로 쿵짝을 잘 맞추며 민생치안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좌포청에서 일하는, 요즘으로 치면 제목 그대로 '형사' 쯤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날 안그래도 어지러운 세상에 또 한번 혼란이 오니, 바로 위조 화폐가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물가에 대혼란이 오고 뒤죽박죽인 상황이 되면서 이들은 수사에 나서는데, 이런 유례없는 전횡의 뒤에 이른바 '슬픈눈'이라고 불리는 자객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곧바로 그에 대한 추적에 들어가는 이들. 그런데 남순은 슬픈눈과 몇차례 마주치게 되면서 그와 불꽃되는 대결심리를 가지게 되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분명 악한인데 그래도 인간적인 면을 발견한다고나 할까.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며 애정전선을 형성하려는 듯 아슬아슬한 자세를 취하는 이들, 그러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야 한다. 감독의 바로 전작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하 <인정사정>)와 비교했을 때, 이 영화는 닮은 구석도 좀 있고, 다른 구석도 있다. 우선 닮은 점이라면, 겉모습과는 달리 좀 '깨는' 면이 많다는 점이다. <인정사정>이 겉으로는 매우 진지한 수사극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속에 은근히 과장되게 웃기고 부담없이 코믹한 구석이 많았던 것처럼, 마냥 무게만 잡을 줄 알았던 <형사>도 제법 코믹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이 꽤 있었다. 주인공인 남순이 <다모>의 채옥처럼 다소곳한 게 아니라 오히려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건들건들거리는 왈가닥 여전사의 이미지라는 점에서만 봐도 그렇다. 더구나 곁에서 더욱 쫀득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귀를 즐겁게 해주는 안 포교까지. 이렇게 이 영화는 의외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재미를 주는 면이 어느 정도 있다. 결정적으로 <인정사정>과 다른 점이라면, 이 영화는 수사극에서의 극적 재미를 상당부분 포기하고, 대신에 영상에 훨씬 무게를 뒀다. <인정사정>의 경우, 의문의 살인사건과 베일에 싸인 범인에 대한 추적,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인물, 거기에 함께 동고동락하는 형사 콤비 사이의 갈등과 인간적 유대감, 고된 일을 도맡아 하는 형사들의 애환 등 영상 못지 않게 극적 전개에서 오는 재미 또한 상당했었다. 그러나 <형사>에선 극적인 전개에 대해서 최소한의 스토리라인 이외에 왠만한 건 다 가지를 쳐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불친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홍보카피처럼 남순과 슬픈눈의 추적과 사랑이 주된 줄거리이긴 하나, 둘이 어떤 연유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 과정과 결과 등이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상당히 뜬금없다. 대신에 영상에 있어서는 좀 심했다 싶은 생각이 가끔 들 정도로 대단히 공을 들인 흔적이 확실히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를 여느 영화처럼 스토리면에서 따라가다보면 관람 후 대략 원망스런 욕설을 퍼부을 가능성이 꽤 크다. 앞에서 이 영화를 기존의 '영화'에 대한 인식대로 봤다간 큰코다친다고 말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는 보통 영화들이 아무리 이미지가 중요해도 그래도 이야기를 주인으로 삼았던 '이야기의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의 영화'였던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극적으로 '얼마나 재미있을까'보다는 시각적으로 '얼마나 이 영화 속 여러 장면은 한 순간, 한 순간이 명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멋진 장면들의 연속이다. 초반부 시장에서의 추격신에서부터 돌담길 결투신, 슬픈눈의 검무, 마지막 병조 판서(송영창) 댁에서의 포위 신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 영화에는 시각적으로 빠져들게 하는 장면이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CG로 떡칠을 했다기보다는, 주변 배경이 자연 그대로 주는 색채의 아름다움이 꽤 강렬하다. 단풍잎 하나라도 그게 갖고 있는 색감을 최대한 살려서 붉은색을 부각시키고, 별것 아닌 듯한 금칠한 주전자도 빛에 반사되어 그 황금빛을 최대한 발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에서는 수시로 쉼표를 주면서, 각종 결투신을 때로는 쉴새없이 왔다갔다하는 스피디한 전개로, 때로는 극도의 슬로우 모션으로 세심함을 더해 연출한 것이 영화라기 보다 한편의 '행위예술'을 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병조 판서 댁에서의 포위 신이 마치 올림픽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매스게임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식으로 말이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 중 한 명도 마치 이미지처럼 묘사가 되어 있다. 바로 강동원이 맡은 '슬픈눈'이다. 그의 대사는 극히 적은 채 오로지 눈빛과 표정, 화려한 몸짓으로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겉모습을 봤을 때 이건 최적의 묘사가 아닌가 싶다. 그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에코가 유난히 들어가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신비롭고 유연하며 때론 날카롭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배경의 일부가 된 듯, 시각적으로 주는 쾌감이 꽤 강하다.(그만큼 강동원이 멋지게 나오니 팬들에게는 상당히 득이 될 수 있을 듯) 가녀린 듯하면서도 일순간 강렬한 그의 평소 이미지를 떠올려 볼 때, 이 영화 속 '슬픈눈'은 어쩌면 강동원에게 최적역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의 기능과 범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이미지는 인물들의 심리를 스크린 표면 위로 드러내는 데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마음 속 감정이라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랑'이란 감정이, 이 영화에서는 수 차례 결투신을 통해 그 감정의 폭이 확실하게 전달된다. 남순과 슬픈눈이 칼을 부딪치고 단 몇cm 남겨두고 눈빛을 마주칠 때, 거기에 거친 숨소리까지 겹쳐지면서 둘의 모습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여느 연인들 못지 않게 둘 사이에 뚜렷한 감정이 오가는 걸 몸소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그들의 칼싸움은 때로 탱고 음악 아래 탱고처럼 전개되면서 정열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때로는 화면의 절반을 검게 가리는 돌담길의 모습처럼 아슬아슬하고 까마득한 면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이 영화는 이야기가 사랑을 이야기하기엔 좀 버거운 대신에, 그냥 의미없이 보여줘도 충분히 멋진 결투신들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렇게 영상적으로 보여주는 것 만으로 홍보카피처럼 둘의 사랑이 '신화가 될 만큼' 애절하고 거대한지 느끼기에는 좀 부족한 점이 있는 듯하다. 잔뜩 긴장한 채 눈빛이 오가고 숨소리를 내뱉으며 에로틱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지만, 때론 너무 기교를 부린 탓인지 영상이 오히려 둘의 감정 속으로 몰입하는 걸 방해하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극도의 슬로우 모션으로 둘의 동작을 세심하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상당 시간 별다른 카메라의 움직임 없이 이어지는 슬로우 모션에 일반적인 영화 공식에 익숙한 우리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고, 이로 인해 오히려 그 때 둘의 감정에 몰입해야 하는 걸 방해받을 때가 있다. 또 아무리 영상으로 이야기를 한다지만, 스토리 구조상으로 둘 사이의 사랑의 과정이 다소 띄엄띄엄 서술되어 있다보니 감동을 주더라도 그게 심장 바닥까지 치고 올라오진 못한다. 아무리 결투장면 그 순간에 둘의 감정이 격화되어 있다고 해도, 드라마가 그런 감정이 어떤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그만큼 커졌는지 잘 가르쳐주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기에 공감하는 깊이가 다른 것이다. 결투를 보면서 '아, 아름답고 애잔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저런 저들의 사랑이 너무 안타깝다'는 느낌은 쉽게 들지 않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이 영화를 두고 정말로 평이 극과 극인 걸 알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 영화만큼 영상에 많은 걸 기대고 있는 한국영화가 근래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춤을 추는 듯 시종일관 예술적인 액션을 펼치고, 배경은 주변의 사물 하나하나까지 그 자신의 빛깔을 최대한 발산하며 스크린을 압도한다. 이만큼 영상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그만큼 이야기가 소극적으로 제 역할을 하는 영화가 어디 흔하랴. 비주얼이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드러내고 격화시킬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완전히 성공적이진 않은 듯해도 왠만큼 보여준 듯 싶다. 확실히 이 영화는 '재미'와 '아름다움' 중에서 '아름다움'을 택한 듯한 영화다. 아직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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