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농담하기를 참 좋아한다. 필자의 유머가 지인들에게 각광받는 이유는 바로 "유머를 생활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팍팍한 생의 순간조차도, 석고처럼 굳어가는 표정을 풀어줄 수 있는 건, 뒤통수에서 불어오는 알싸한 바람 같은 '여유'이고 '유머'라는 걸 잊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정말 기가 막힌 순간이 다가왔다. 우주 고속화 건설 위원회에서 지구를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열하는 지구인들를 향해 "벌써 50년전부터 xx행성 게시판에 지구 철거계획을 고지했잖아 !! 불쌍하지도 않아요. 이 무지한 인간들..(-.-)" 하며 철거우주선 함장은 혀를 내두른다.
순간 지구는 철거되지만, 우주의 베스트 셀러[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 를 집필하기 위해 지구에 와있던 외계인 포드는 자신의 지구인 친구 아서를 데리고 철거 직전에 우주로 탈출한다. - 탈출 또한 히치하이킹으로.. -
"지구 철거"라는 엄청난 공포의 순간을 말도 안되는 유머과 개그로 일관한 이 골때리는 SF 영화는 이후로도 장면장면마다 지나칠 정도의 개그로 일관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설정과 막무가내로 연결되는 스토리, 관객을 우롱하다 못해 협박에 가까운 짜맞춤, 그리고 실소를 넘어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게 만드는 캐릭터들.
'웃찾사'의 '화상고' 초창기 시절을 보면서 마룻바닥을 몇번 뒹군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의자가 들썩일 만큼 손뼉을 치고 눈물을 닦아가며 봐야하는 영화다.
닭장 청소부 출신 작가 '더글라스 애덤스'는 수많은 SF작가들이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던 우주를 불경스러울 정도의 농담과 개그로 가득 채우고 있다. '우주가 뭐 별거야? 그냥 웃으면 그만이지. 자~ 가는거야' 라는 노홍철식 막가파 소신으로 넘쳐나는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왜 웃는지 이유도 모르고 웃게 만드는 독특한 코드가 장면장면마다 숨어있다.
배터지게 웃고나면 스스로 쑥스러워져서 옆사람의 눈치를 봐야할 정도로 당혹스러운 영화이지만, 영화가 끝나면 한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눠도 그 잔웃음이 입꼬리를 1mm정도 올려주는 성형효과가 있을 정도로 놀랍고 재기발랄한 영화이다.
경외스럽고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우주의 미아가 된 순간에도 1/[2의 276709승] 확률로 살아남는 억세게 운좋은 주인공들, 죽음의 순간에도 친구를 위해 '안아줄까?'라고 농담을 건네는 가슴 따듯한 웃음, 상대를 나의 관점에서 보게 만드는 레이저 총, 열고 닫힐때마다 아웅~ 아잉! 감탄사를 연발하는 문짝들, 지구가 인생의 답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컴퓨터 라는 설정, 그리고 감탄사와 폭소를 자아내는 지구 건설 현장 등, 상상력의 끝을 의심케하는 놀라운 장면들로 가득하다.
"농담" 이라는 것의 가치는 그것이 웃음을 담고 있기때문이지만 농담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는 때는 웃음 속에 여유와 삶의 지혜가 함께 베어있을 때다. 이러한 가치있는 농담들로 넘쳐나다 못해 폭발하는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 -제목이 정말 길다 - 는 올해 필자가 본 상반기 영화 전체를 통털어 가장 환상적이고 의미있는 영화이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 특히 필자같은 IT회사 직원들은 더욱 - 정말 사소한 일에 목숨 걸기도 하고 별거 아닌 성과에 만족하거나 우쭐하기도 한다. 필자는 말해주고 싶다.
"고개를 들어 우주를 보라. 그리고 느껴라. 우주의 스케일과 광활한 공간을. 당신의 상상력이 얼마나 작은 공간에 감금되어가고 있는지. 우주 같았던 당신의 마음이 지금은 얼마나 좁은 울타리 속에 바둥대고 있는지를."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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