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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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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30 오전 1: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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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이런 말이 있다. '복수는 차가울 수록 더 맛있는 음식과도 같다'(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식이었다)는 말. 상대를 향한 증오심이 극도로 비정하고 차가울 수록 그 복수의 날이 날카롭고 통쾌하다는 뜻이겠지. <킬빌>의 카피를 통해서도 나왔던 이 말은, 그래서인지 복수라는 소재가 굉장히 자극적이고 오락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복수극의 대표격이 된 <킬빌>에서도 이 말의 의미와 연관성 있게 더 브라이드의 복수극은 엄숙하다기보다는 한바탕 오락 한마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기 말그대로 복수를 '장난이 아니게' 하는 여인이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촌스럽기까지 한 이름이건만, 어느새 들을 때마다 가슴 두근거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만든 그녀, '이금자'. 그녀는 단순히 과거의 아픈 기억을 씻기 위해, 죄를 지은만큼 갚아주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복수를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이기적일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자신을 위해 복수를 시도했다. 우리의 주인공 이금자(이영애)는 13년 전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박원모 어린이 유괴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더 충격적이었던 그 끔찍한 살인사건의 범인인 금자가 너무도 아름답고 꽃다운 20살의 여인이었다는 것. 그러한 그녀의 유별한 이력은 교도소내에서도 이어졌다.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양 궂은일 마다않고 도와주는 모습에 모두들 그녀를 '친절한 금자씨'라고 불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친절한 외면에 품고 있는 장난아닌 악바리 때문인지 '마녀 이금자'라는 섬뜩한 별명도 함께 붙었다. 그러던 그녀는 이미 교도소에서부터 복수를 계획하고 있었으니, 그 대상은 바로 백한상, 별칭 백선생(최민식). 이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 속에 밀어넣고는 시치미 뚝 떼버린 그야말로 천하의 몹쓸 놈이다. 13년이 지나고 금자는 교도소를 나와 안에서의 친절했던 모습은 싹 걷어버리고 본격적인 복수의 날을 갈기 시작한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금자가 도와준 동료들이 이를 모른 척할 리 만무하다. 모두가 그녀의 지원군이다. 왜 그녀는 이토록 백선생에게 섬뜩한 복수를 시도하려 하는 것일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가 된 박찬욱 감독과 빈틈 없는 이미지의 소유자 이영애가 만난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 전혀 '빈틈이 없었다'. <올드보이>의 섬뜩한 복수 위를 유유히 거닐던 눈부신 비주얼은 이 영화에서도 그 가치를 여전히 과시했다. 교도소 친구 중 한명인 김양희(서영주)가 계단 밑이라서 시끄럽긴 하지만 괜찮다면서 보여주는 허름한 집마저 그 안은 붉은 색 벽지가 대번에 눈에 들어오는 고전적 분위기의 멋진 집이니 말 다했다. 창백한 빛깔의 화면 위를 수놓는 붉은 핏방울들, 하염없이 금자의 몸을 덮는 함박눈, 당장에라도 스크린 속에 손을 집어넣어 꺼내먹고 싶은 케익들 등 이번에도 원색적인 아름다움이 눈을 마음껏 즐겁게 해주었다. 포스터나 내용 면에서 주인공 금자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답게, 이 영화는 투톱 체제같은 것도 없이 오로지 이영애 원톱 체제였다. 최민식의 이름이 홍보 전단에 나란히 이름이 배열되긴 하지만, 이영애에 비하면 그 비중은 턱없이 적다. 김부선, 이승신, 오달수, 김시후 등 많은 조연들이 등장하지만 이들 모두 이영애의 복수극을 조용히 받쳐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송강호, 신하균, 유지태, 강혜정 등 화려한 카메오 출연진들도 모두 그런 역할들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는 이영애의 이미지와 연기가 극대화되어 있었다. 물론 이영애가 이 영화에서 엄청난 변신을 시도한 건 사실이다. 신장이식해주는 동료를 향해 표정하나 안 변하고 '열여덟(18)여인, 어디서 질질 짜고 @랄이야'라는 욕설을 대번에 뱉어내는 것하며, 아직 수줍은 스무살 청년을 먼저 침대로 이끄는 역시나 금자씨의 강인한 면, 담배를 피면서 팜므 파탈처럼 가는 웃음까지 터뜨리는 모습 등 기존의 청초하고 올바른 이미지의 이영애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임이 확실했다. 그러나 감독은 이렇게 이영애로 하여금 변신을 시도하게 함과 동시에, 기존의 이미지를 최대한 확장하는 방향으로도 나간 것같았다. 이렇게 이영애의 평소 이미지치고는 꽤 '망가진' 모습으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그녀의 모습에선 도저히 보통 사람은 범접할 수 없을 고급스런 아우라가 온몸에서 뿜어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금자씨를 통해 보여준 거칠면서도 우아하고 고고한 면, 비정하고 잔혹하면서도 여리고 비극적인 이미지는 기존의 이영애의 이미지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더 추켜세워주기도 하는 묘한 효과를 불어넣어 주지 않았나 싶다. 감독이 만들어낸 영화 속 이영애의 이미지 뿐 아니라 연기도 뛰어나다. 이미지도 좋고, 연기도 잘하지만 '연기파 배우'라는 호칭은 좀 어색해보였던 이영애는 이 영화에서 온전히 자신만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배역을 맡음으로써 연기파라는 호칭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선 것 같다. 물론 그녀가 10대 여고생 연기를 하며 "모르셨구나~"하는 애교어린 멘트를 날릴 때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1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겪어온 금자씨의 희노애락이 이영애의 연기에 꽤 농도짙게 스며들었다. 표정 하나 안변하고 맑은 목소리로 "나 사람 하나 더 죽일라 그런다"하다가도, 정작 복수의 대상을 눈앞에 두고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흘리는 등 금자씨의 극단적인 이면들이 이영애의 영화 속 독특한 이미지와 잘 어우러져 마치 금자씨라는 역할에 딱 맞춤인 배우라는 인상까지 주었다. 확실히 그녀는 표정만으로 사람을 홀리게 하는 '미녀배우'만은 아님을 이 영화를 통해 증명한 듯 싶다. 감독님도 이미 말씀하셨지만, 이 영화가 <올드보이>를 잇는 또 한 편의 충격적 반전의 복수극이겠거니 하시는 분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스릴러이겠거니 하시는 분들은 그 오해를 싹 거둬주시길 바란다. 그런 생각으로 이 영화를 관람하신다면 대번에 실망하실 확률이 '백푸로' 있으시니 말이다. 박찬욱 감독은 본격적으로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로 꽤 여러번 관객들의 허를 찔러왔다. <JSA>에서 따뜻한 유머와 휴머니즘을 펼치시더니 <복수는 나의 것>에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잔혹하고 메마른 복수의 미학을 보여줬고, 그 뒤에는 <올드보이>를 통해 그런 차가운 복수를 대단한 오락적 수단으로 만드시더니 이번 <친절한 금자씨>는 다시 그런 스릴러적 면은 거둬내고 오히려 복수를 '신성한 의식'으로 승격했으니말이다. 지금까지 이래왔던 만큼, 이 금자씨의 이야기는 <올드보이>와는 또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복수 이야기이다. 오히려 잔혹하고 비정하기만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웃긴 구석이 꽤 많았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금자씨가 날리는 엉뚱한 대사들("너나 잘하세요"가 대표적이다), 진지한 목소리의 대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좀 생뚱맞은 전도사의 헤어스타일은물론 후반부 복수의 절정에 달해 분명 비극적이고 끔찍해야 할 순간에도 웃음이 튀어나온다는 게 참 신기하고 묘했다. 교도소내의 행실이 엄청 섬뜩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했지만 특유의 외양과 신념으로 '출산드라'를 연상시켰던 푸짐하신 죄수분도 꽤 재미있었고. 그러나 가장 특이했던 점은 이른바 복수 3부작 중, 앞의 두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가 잔혹한 폭력과 충격적 결말 등으로 인해 분명 잘 만든 작품들이었음에도 보고나서 기분이 찜찜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이상하게 보고 난 뒤 왠지 내 마음이 정화되고 깨끗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보고나서도 불편한 느낌이 찌꺼기처럼 뒤에 남았던 두 작품과 달리 이 영화는 보고나서 참 깔끔하고 뒤끝이 구차하게 남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마도 복수에 임하는 금자씨 그녀의 자세때문이 아닐까 싶다. 금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구원받는 방법으로 남을 죽여 복수하는 것을 택했다. 자신으로 하여금 그 나쁜 함정으로 빠지게 한 사람과 대면해 최대한 잔혹하게 죽여주는 방법으로 과거의 더러운 때를 씻고 새로 생일을 맞으며 케익을 먹듯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막 출소한 그녀에게 '두부처럼 하얗게 죄짓지 말고 살라고' 두부를 주는 전도사의 손을 뿌리치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날리지 않았겠는가. 그녀에게 죄는 단순히 두부 한 모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복수의 날도 최대한 날카롭고 빈틈없게 갈았던 것이고. 금자의 복수를 돕는 주변 동료들의 행위도 금자씨가 벌이는 복수가 구원을 위한 일종의 '신성한 의식'이라는 점에서 신성한 태도로 행해진 절차가 아닌가 싶다. 이미 바닥을 경험한 적이 있는 금자가 자신을 보다 한단계 높은 위치로 올라서려 행하는 '복수'라는 의식을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보필해주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복수를 금자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다는 점에서 한층 그 복수의 비장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잘 느껴졌다. 그러나 이 영화도 결국 해피 엔딩은 아니다. 복수를 통해 금자는 남들한테 좋은 일은 했어도 정작 제 머리는 깎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자는 최대한 깔끔하면서도 잔혹한 복수를 원했고, 그래서 자기 손에는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백선생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의 증오심이 담긴 마음으로 대면하게 함으로써 복수를 행했다. 그 사람들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다는 점에서 남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결국 금자 자신을 위해 한 일인 셈이다. 그게 복수의 대상인 백선생에게는 가장 소름끼치고 냉혹하고 끔찍한 복수 방법이겠지 하면서. 그러나 정작 복수 뒤에 남겨진 금자의 모습은 처량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털어버린 듯 케익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부활을 다짐했건만, 이러한 복수를 주도한 금자 자신은 정작 훌훌 털어버리지 못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복수를 도와주었다 한들, 영화 속에 등장한 노래 가사처럼 결국 복수를 끝내는 순간 그녀는 홀로였고, 거기에 이미 과거의 죄가 저질러버린 감당할 수 없는 죄, 자신이 직접 몸을 던져 이태리타올처럼 벗겨내야 할 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자신만이 품고 있는 죄를 복수를 통해 씻어낸다고 해서 그녀의 모든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새하얀 두부 케이크에 얼굴을 파묻는다. 용서받기 위해 복수를 행했건만, 정작 그 복수때문에 금자는 더 여려져 그 케이크의 순수한 모습 앞에 자기 몸을 내맡겼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꽤 진지한 주제를 갖고 곰곰히 만지작거리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 영화다. 남을 죽이는 복수를 자신의 용서를 위해 행한다는 점에서,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국 어딘가 허전함을 느낀다는 점에서 복수의 꽤 색다른 면을 부각시키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수라는 것이 드러내는 가장 본질적인 면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다. 복수란 차가울 수록 보다 통쾌해질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질이 높아지기 쉽지 않고 또한 씁쓸한 좌절도 겪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정말 영화 제목처럼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가장 친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였지만, 한편으론 복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가장 깊게 파고들어간 영화가 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아닐까 싶다. 분명 평가가 엇갈릴 만하다. 그래서 나는 보다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같아 참 좋았다. 두번째 보고 나면 또 달라질 수 있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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