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의 철이가 [로봇]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황당한 상상으로 풀어내는 [로봇] 이야기.
서기 2천년대의 지구.
메가로폴리스는 항성간을 운행할 수 있는 은하철도의 출발점이자 부의 상징이며 인류의 염원이기도 한 영원한 생명인 기계의 몸을 가진 부유층만이 향유하는 도시로, 인류의 초근대 과학력이 만들어 낸 최첨단의 기계화 도시이다.
때문에 기계몸을 가지지 못한 인간들은 이 풍요한 기계화 도시에서 돈을 벌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메가로폴리스 주변으로 몰려들고, 결국 메가로폴리스 주변은 슬럼화된다.
(중략)
긴 여행에서 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넘긴 철이와 메텔.
결국 최후의 목적지인 안드로메다에 도착하는데...
철이의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이름은 바로 로봇들의 최첨단 거대도시인 [로봇 시티]
길쭉길쭉 하늘을 향해 솟은 미래 도시 [로봇 시티]는 로봇들의 꿈이 있는 곳이며,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것이 현실로 펼쳐진 공간이다.
그런데 로봇 위에 로봇 있고 로봇 밑에 로봇 있다?
기계의 몸만 얻으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 생각했던 철이는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현실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재미있고 신나는 것들로 가득찬 로봇시티지만 이곳도 역시 빈부의 격차와 계층이 존재하는 냉엄한 현실이 철이를 기다리고 있다.
동행했던 메텔까지 잃어버리고 혼자서 로봇 시티를 방황하던 철이.
그러다 우연히 [로드니]라는 친구를 만난다.
로드니는 작은 시골마을 식기세척기 로봇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지만 따뜻한 가족의 품안에서 자랐는데, 뛰어난 발명 재능을 가진 로드니의 꿈은 위대한 발명왕 빅웰드처럼 세상을 더욱 살기 좋게 만드는 발명가가 되는 것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로봇 시티에 왔다가 철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로드니는 빅웰드가 운영하는 빅웰드 기업을 찾아가지만, 이미 기업은 악덕 경영자 라챗이 장악한 상태로 라챗은 최첨단 로봇시티를 건설하기 위해 낡은 구식 로봇들을 모두 없애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이 음모에 맞서 로드니가 빅웰드를 찾는 여정중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로봇시티를 구하기 위한 모험의 화려한 영상은 아이들에게 볼거리를, 그 줄거리는 어른들에게 흥미를 제공한다.
로드니는 [인간]인 철이에게 로봇의 세상을 보여준다.
도시의 길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이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도시락을 꺼내 먹은 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가 하면, 소화전은 매일 나한테만 쉬하지 말고 다른 소화전도 좀 찾아보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로봇 시티는 [인간]의 시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로봇]의 시각에서 일상의 생활로 받아들여 진다.
그러나 로봇의 일상은 인간의 일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작은 빈민가 식당주인에서부터 거대 기업의 임원들까지 사람들과 똑같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로봇들의 세계.
이곳의 로봇들은 개인의 희망에 따라서, 혹은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각자 그에 맞도록 부품을 보태며 어른이 된다.
아이의 꿈마저 부모의 경제력에 맞춰 짜맞춰지는 로봇들의 삶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온 부모들은 영화 내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로드니의 꿈이 왜 발명왕이었을까?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내는 발명품이 로드니에 어떤 의미였을까?
이런 로드니의 꿈을 우리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왜 고시합격이 생각날까?
아이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온 부모들도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까?
[로봇]은 로드니를 통해 이런 의문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영화에서 로드니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은 바로 라챗으로부터 로봇시티를 구해내는 과정이다.
그것은 바로 [존재 자체로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현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평은 굳이 필요가 없다. 언젠가 우리와 함께 현실에서 살게 될 로봇의 마음으로 영화 [로봇]을 즐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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