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2004년 한 해. 장예모 감독의 팬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인>이란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전작 무협영화 <영웅>과 같은 매력에 빠질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연인>은 개봉하자마자 호평과 혹평의 시비가 엇갈렸던 중반기 화제작이었다. <영웅>에 이은 돋보이는 영상미와 의상, 세트 등의 볼거리는 대단하였으나 영화의 스토리는 약하다는 점. 그가 과연 이 영화를 통해 예술가의 경지에 다다랐는지, 무너져가는 거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토의해보자.
<연인>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당왕조시대. 무능한 왕조와 부패한 권력자들의 횡포로 인해 곳곳에서 반란세력 ‘비도문’이 등장하고 비도문과의 싸움이 흐른지 수년 후, 팽 티안 성의 관리인 레오(유덕화), 진(금성무)은 열흘 안에 비도문의 새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한편 진은 홍등가의 메이(장쯔이)라는 무희를 의심하게 된다. 메이가 비도문 조직의 일원이란 걸 알아낸 진은 메이를 살짝 풀어주는 척 하면서 비도문 조직에 잠입하려 하지만 중간에 메이의 감정에 끌리게 된다. 진은 비도문 조직에 잠입하는데 성공하지만 믿었던 동료 레오가 비도문이란 걸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우두머리의 명령으로 진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은 메이는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사랑을 나눈다. 메이와 3년이나 연인으로 지냈던 레오는 결국 분을 못 이겨 메이를 죽이고, 레오와 진은 수수밭을 무대로 싸우게 된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풀어가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불만을 야기시킨다. 중간중간 반전이 계속 등장하기는 하지만 과장된 연출미학과 절제된 연출의 호흡이 조화롭지 못한 탓에 전혀 장예모 영화 같지 않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도 감독 본인인 탓에 팬들의 실망은 더 극도로 잔인(?)해졌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를 본 이들이라면 장예모의 영화에 감탄치 않은 이들을 이해 못했을 것이지만 이젠 그들조차 이 영화 <연인>을 이해 못한다. 과연 감독은 이 영화를 뭐라 생각할까?!
장예모는 <영웅>을 통해 홍콩무협영화의 극치와 미학을 풀어주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주었다. <영웅> 때에도 관객들의 평론이 아슬아슬했었다. 아까도 말했던 그의 무협영화 스타일은 <연인>에서도 계속됐다. 과장되었지만 미학으로 풀어간 무술(예술), 복잡하게 여러 시각으로 푸는 것이 아닌, 주인공들의 사건(연인들의 사랑)을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간다는 점, 아름다운 의상과 미술 등이 있기에 <연인>은 아름답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이 영화의 스토리는 정말 엉성한 걸 넘어 너무 간단하여 문제다. 처음 시작되는 진과 레오의 등장장면도 그리 특별하다거나 웅장하지 않다. 또한 메이가 등장하는 홍등가에서의 사건도 메이의 춤솜씨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을 정도다.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부자연스럽고, 영화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비도문의 뒷이야기도 이 영화의 주제인 ‘연인’들의 이야기 때문에 묻혀버렸다. 가을 수수밭에서 겨울 설원으로 변하는 평지에서의 싸움도 사람들의 눈과 기를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장예모는 이 같은 과장과 아름다운 무협을 통해 그간 있었던 중국/홍콩 무협영화의 전통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애써 스토리를 비껴나가면서 무협을 과장시켰고, 색체미를 강조함으로써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장쯔이의 홍등가 춤 장면을 비롯하여 꽃밭에서의 로맨스가 대표적인 예랄까?! 장예모 본인도 아쉬워하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설원에서의 사시사철 대결했다고 추리해 볼법한 결투 장면인데. 이 장면 또한 2003년에 불어닥친 ‘사스’ 열풍으로 인해 출국금지명령과 날씨변덕으로 촬영 때 쓰이던 갈 때 밭 꽃들을 더 이상 가져오지 못하는 사정에 이른 탓에 결국 설원으로 처리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에 의해 만들어진 비극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장예모는 과장된 무협영화의 징수를 버젓이 드러내면서 풍자하고 조롱했는지도 모른다. 메이가 죽었다 살아나는 장면이 큰 예라고 해야하나.
이 작품에서도 역시 ‘장예모’의 전속 배우 ‘장쯔이’가 나와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장쯔이’의 연기 또한 나름대로 열심이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비해 이번 작품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장예모는 아직 차기작을 준비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다음 작품도 무협영화라면 이번엔 봐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되지만 일단 보고 평론을 내리는 일이 내 일이니 볼 것이다. <연인>. 아쉬운 것도 많고 재밌는 볼거리도 많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한 가지 잊었던 걸 깨달았다. 장예모 감독은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이 영화에 캐스팅을 마련해주었지만 아시아의 스타 ‘매염방’은 이 영화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2003년 12월에 암으로 사망하였다. 영화의 스탭들은 그녀가 이 영화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매염방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사랑했기에 그들이 슬픔 속에서도 좋은 걸작을 만든 걸 하늘에서 지켜볼 매염방의 미소가 궁금해진다. 매염방의 명복을 빌며, 앞으로도 장예모 감독이 좋은 영화를 들고 다시 호평 받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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