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해면처럼 늘어져 추스릴 수 없고, 육신의 피로가 심연처럼 깊어질 때, 당신은 무엇을 꿈꾸는가. 여행... 인간만이 유일하게 현실의 족쇄를 내던지고 여행이라는 이름의 탈출을 감행한다. 아내와 이혼하고 건조한 슬픔의 나날을 보내는 마일즈와 늦은 첫 결혼을 앞두고 성적충동을 마음껏 발산하고픈 친구 잭은 와인 농장을 순례하기로 하고 여행을 떠난다. 로드무비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 영화에도 예외없이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일어난다. 하지만, 영화 [Sideways]의 병 속에는 유난히 깊고 깊은 와인의 향과 맛이 살아있다. 다양한 기후에 영글어 가는 포도라는 과일은 그 생김새만큼이나 풍성한 맛과 풍취를 담고 있으면서 재배 시기와 방법에 따라 변화무쌍한 얼굴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 어떤 술 보다도 많은 이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게 아닐까. [Sideways]는 인생과 시련,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결실을 맺어가는 사랑과 성숙한 삶의 완성을 포도와 와인에 비유해 풀어나간다. 인생이 그러하듯 [Sideways]속에도 작은 여행의 여정 속에서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웃음과 슬픔, 일탈의 짜릿함과 그에 따르는 책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갈 때의 허무함이 포도알 처럼 촘촘히 영글어 있다. 마일즈와 잭이 여행길에 마신 첫 번째 와인은 샴페인. 샴페인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즐거움으로 시작한 여행은, 끝내 마일즈의 나이만큼 먹은 61년산 슈발블랑을 혼자 외롭게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웃음과 슬픔의 잔상들이 너무나도 절묘해서, 마구 웃는가 싶으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고 있고, 슬픔에 침잠해지는듯 하다가도 말 한마디에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똥꾸녕에 털나는 심한 감정의 기복을 참다보면 어느새 들 뜬 여행은 끝나고 파자마 처럼 푹 퍼진 생활로 돌아온 두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떠나는 이의 가슴속에 부풀어 오르는 여행의 목적은 각자마다 차이야 있겠지만 결국 여행이라는 이름의 탈출로 얻어지는 것은 결코 완전한 망각도, 복권처럼 다가오는 행운도, 지친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완전한 안식도, 지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변화도 아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나를 반기는 것은 팍팍한 현실의 시커먼 막막함 이지만, 그래도 그 현실로 돌아가는 우리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바로 한줄기 '희망'이다. 그 한줄기 희망의 숨통을 안고 우리는 다시 학교로, 생활로, 일터로 돌아가 치열한 삶과 마주한다. 영화 sideways 가 오늘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수여하는 '올해 최고의 영화' 상을 싹쓸이 한 이유는, 아마도 삶의 희망과 영글어 가는 포도같은 우리 삶의 자화상을 눈부시도록 빛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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