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2>와 <말아톤>이 양분한 극장가에 설자리가 좁은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함이다. 그것이 다만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떠나 어떤 외부적인 상황에 휘둘렸기에 말이다.
<그때 그 사람들>을 관람한 후에 갖는 첫 느낌은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영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국 현대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하다는 것이다.
영화적 상황 설명의 불친절함(그것 때문에 10.26 사건을 모르는 관객들을 배려하지 못한 행위)이 갖는 난해함을 걷어낸다면, 이 영화는 대단히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한 정치 드라마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전작에서 성(性)을 소재로 한 영화에 주력해왔던 임상수 감독의 행보에서 어긋나보이는 행보인 듯 하지만, 이내 영화에 몰입하다보면 감독 특유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쿨한 설정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이 영화를 감독의 의도대로 감상한 관객들이라면 당시 권력자들이 아닌 시대의 공기가 주된 소재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즉, 영화가 외부적으로 공격받는 지점에서 분명 멀찍이 떨어져있는 영화임에도 권력자들의 무능하고 어이없기까지 한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흥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또한 연출의도와 맞물려 감독이 이 영화에 갖는 자신감은 촬영기법에서도 느낄 수 있다. 유려하게 전경을 훝는 카메라 트레킹과 인물들을 잡는 부감 숏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한 장면이다. 따라서 거사가 진행된 이후에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영화가 진행될 수 있던 공로는 카메라의 힘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것도 아니다. 아무리 할말 다 한다고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임을 의식한 듯, 움츠려드는 장면도 적지 않다. 감독의 성향에 맞게 좀 더 내지르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해 버린 부분에서 안전한 결말을 택했던 것일까. 끝 장면에서 10.26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을 차곡차곡 보여주면서 윤여정의 나레이션으로 전개되는 것은 생뚱스럽다. 또한 조은지, 봉태규 등 임상수 사단의 배우들은 그렇다치더라도 개그맨 홍록기의 까메오 등장은 영화의 품격을 심하게 훼손한 바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임상수 감독은 한국영화사에 있어서 쉽지 않은 도전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정도 성과를 이룬 지점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론 이런 소재들의 영화가 표현의 자유에 제약을 받지 않고 좋은 영화로 끊임없이 제작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