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들'의 내용이 어떤건지 전혀 사전지식없이 보는사람은 없겠죠.. 뻔히 다 아는 사건을 어떻게 어떤식으로 왜 그렸을까(이게 가장 궁금!!) 궁금했죠.. 그 사건의 어디에 방점을 찍을까 싶더군요.. 가장 객관적으로 보일법한 다큐멘터리가 가장 사적인 매체이듯.. 다 아는 얘기도 어떤부분을 누구의 시각으로 파고 들어가느냐에 따라 영화전체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만족스럽게 본 영홥니다.. 뭐랄까.. 이건 정치영화가 아니예요.. 블랙코미디라고 영화홍보를 하던데.. 음.. 뭐라그래야 하나.. 어깨 힘 팍 들어간 소위 남자다움을 조롱하는 영화더군요.. 감독은 끊임없이 남자다움의 허망함.. 우스움 같은걸 보여주거든요.. 심지어 감독은 극중 의사로 출연해 노골적으로 남자다움을 비웃는 대사까지 읊어댑니다.. 제 입장으로는 이런 감독의 시각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 높게 쳐주고 싶습니다..
영화는 대통령이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감없이(물론 픽션이지만) 보여주면서도 빈틈없는 영화적 세렴됨을 보여주더군요.. 맨처음 윤여정이 딸과 함께 '각하가 품어주셨다'..는 부분부터 벌써 이 영화가 마음에 쏙 들었는데, 아귀가 똑똑 맞아떨어지는 앞부분에 비해 뒷부분이(박정희가 죽은이후) 약간 긴장감이 떨어졌긴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요사이 본 영화의 최고점으로 보여집니다..
2005년 최고의 한국영화라고 장담은 못해도(아직 2월이라 ^^) 분명 '저의 05년 한국영화 베스트 5'안에는 들 멋진영화예요.. (사실 지난번 본 말아톤같은 영화의 경우 괜찮은 영화는 될지언정 멋지고 세련된 영화라는데에는 좀..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면에서는 이 영화가 훨 낫거든요)
독재자의 아들인 우리의 '늙은 새신랑'이 이 영화에 대해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해서 몇장면 잘려나갔다는데(하여간 하는 짓꺼리들하며.. 으이) 그걸 '일부터 티내기 위해' 제목도 없이 시작하고 엔딩크레딧도 뚝 잘려나갔지요.. 불과 몇장면이겠지만 보는 사람입장에서는 열불나는 일이지요.. 이 새신랑은 이런거 막을기운있으면 젊은 새색시와의 성생활에나 힘을 좀 더 쏟으실 것이지..
백윤식은 역시 잘합니다.. 대사하나하나가 이 배우의 입을통해 나오면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말이 되더군요.. 분명 백윤식은(티브이에서가 아닌 영화에서) 가만히 서있는것만으로도 존재감을 주는 배우지요.. 한석규도 녹슬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구요.. 한석규는 정상에 올랐다가 내동댕이쳐지면서 제대로된 연기가 나오는거 같아요.. 지난번 '주홍글씨'에서 강박적인 과장된 연기를 보여주었다면 이번엔 비슷하면서도 한결 자연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연기를 하지요..
하지만 홍록기의 등장부분은 아주조금이긴 하지만 이런배우가 등장하니 별안간 장난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마땅치 않더군요.. 또 극중 대통령의 술자리에 동반한 여대생을 조은지인가.. 하여튼 그 배우가 맡았는데 자신을 '쿨한년'이라는 표현을 쓰길래 갸우뚱했습니다.. '쿨'이 없는말은 아니지만 사실 신조어처럼 요즘에 각광을 받는 말아닌가요.. 79년 그당시에도 쿨하다란 말을 그렇게 일상적으로 썼나 싶어서요..
감독의 연출하며.. 배우들의 연기하며.. 촬영하며.. 미술, 음악까지 어느부분이 빠지는것 없이 잘만든 세련된 영화지요.. 야외로켓 별로없이 대부분이 세트에서 진행되는데도 그시대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져요.. 이 영화감독의 전작인 '바람난 가족'이나 '처녀들의 저녁식사'도 괜찮게 봤는데 특히 이 영화로 임상수감독을 좋아하는 감독반열에 넣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건 정치영화가 아니라고 썼듯이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코스타가브라스의 'Z'를 떠올렸지요.. 이거야말로 대표적인 정치영화지요(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중에 하나이기도 하구요) 대학다닐때 '철야농성'중에 이 영화를 봤는데 밤을새던 그때가 연결되어서 떠오르면서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같은사람이긴한건가..하는 상념에 잠기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