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처럼 아니메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야자키 아니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또 영화애호가로서 영화평을 남겨 보렵니다, ㅡ ㅎ. 먼저는 많은 대중들의 반응 ㅡ 역시 최고다! 라는 바응과는 반대쪽 의견에 더 가까운 의견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시작 하겠습니다.
영화를 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마는 시나리오가 문학의 확장된 개념 안에 속한다고 볼 때에 시나리오 자체는 문학적으로 가치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아니메에서의 자연이나 이기적 문명, 전쟁등에 대한 관점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모노노케히메>, <천공의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의 토토로>, <반딧불의 묘> 등의 작품에서 거의 일관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번 <하울..> 이 개봉 예고를 하면서 부터 저를 포함한 미야자키 아니메 팬들은 이번 작품에서 또 그런 미야자키의 생각을 발견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하울..>은 기존 작품들의 기조에서 약간 벗어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울..>에서 볼 수 있는 전쟁씬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입니다. <반딧불의 묘>에서 한번 충격적인 폭격씬과 잔인한 장면들을 보여 주었지만 서사구조와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마는 <하울..>에서는 그정도 수위의 전쟁씬 까지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이기적인 문명과 전쟁에 대한 미야자키의 생각은 <원령공주>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산과 짐승들을 이기적 인간과 문명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원령공주의 이야기에서 처음에는 인간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점점 짐승들과 원령공주, 자연의 편으로 관객들의 관점을 옮겨 놓는 미야자키의 계획된 의도에서 볼 수 있는 미야자키의 생각은 극히 자연 친화적이고 문명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바람.. 나우시카>에서는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생겨난 오무떼들과 맞써 싸워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바람계곡을 지켜 내기 위해 싸우는 나우시카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관점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왜 전쟁이 일어나서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싶은 정도의 폭격 씬이 이어지고 하울이 어디에서 누구와 싸워서 핏덩이가 되어 돌아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국가간 전쟁에서 왜 갑자기 소피를 지켜야 겠다고 나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관객들은 그저 로맨스로만 이해하려 합니다. 무대가리가 갑자기 이웃나라의 왕자님으로 변해서 전쟁을 그만한다는 구조는 주제의식을 흐리는데다 좀 쌩뚱맞습니다.
이번 <하울..>에서는 '소피의 변신'이 가장 처음등장하는 사건이기도 하고 중간중간 변화하는 모습의 소피를 통해서 이 작품의 중심이 '소피의 변신'과 상당히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변신 모티브는 주인공의 정체성과 관련시켜 이미 여러번 미야자키 아니메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도 이름에 관한 정체성 상실과 변신모티브가 상당부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고 이에 이어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인 <고양이의 보은>에서도 주인공의 정체성 상실과 연관시켜 변신모티브를 적용 시킨 적이 있습니다.
변신이라는 소재가 수많은 동화에도 등장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는 그만이겠지만 그동안에 성과로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이번 <하울..>에서 타이틀인 '움직이는 성'을 압도하는 소재로서 쓰인 것은 상업적 색채가 짙게 투영되어 있다고 보이는 데에다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게 소피의 모습이 무엇에 따라 변화하는지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스비다.
미야자키는 일전에 일본내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CG에 대한 관점을 묻는 질문에 '손으로 할 수 있는데 왜 컴퓨터의 힘을 빌리는가'라고 딱잘라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울..>에서는 이례적으로 CG를 많이 사용한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센과..>에서 볼 수 있었던 몇몇 장면의 원근감에서나 볼 수 있었던 CG 사용 경향은 이번 <하울..>에서는 조금 어긋나 보입니다. 작품 곳곳에서 특히 타이틀 소재인 '움직이는 성'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하울의 싸움과 전쟁 씬에서 CG를 상대적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 <하울..>에는 독특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데 '황야의 마녀'라는 캐릭터에는 조금 주목해 보고 싶습니다. <하울..>을 보고 난 뒤에 <센과 ..>도 다시 한번 보고 <천공의성 라퓨타>도 보았습니다마는 이제까지 미야자키아니메에서 '황야의 마녀'와 같은 캐릭터를 본적이 없습니다. 미야자키 아니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성격이 분명하고 성격에 따른 일관적인 행동을 통해서 작품 전체에 평면적인 인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천공의성 라퓨타>에서도 주인공 소녀의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마치 미야자키의 대변인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같은 라퓨타 사람이라는 악당은 처음부터 행동에서는 악당의 기질과 성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느작품에서도 문학에서 말하는 '입체적 인물 ; 성격이나 역할이 변화하는 인물 ' 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황야의 마녀'는 처음에는 꽃미남 하울을 좋아하는 심술궂은 마녀로서 소피에게 저주를 걸지만 후반에 이러서는 치매걸린 할머니로 변해서 소피의 보살핌을 받기에 이릅니다. 이런 황야의 마녀의 변신에 어떤 특별한 이유를 찾아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주제의식과의 연관성 또한 찾아 보기 힘듭니다. 왜 어떤 의도로 그렇게 했을까요?
작품 전반에 사용된 소피의 변신은 안타깝게도 저는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소피의 나이가 아흔으로 바뀐다고 하고서도 어떤 때는 십대 소녀 같이 그려놓기도 하고 어떤때는 <센과..>의 유바바처럼 늙은 사람으로 그려 놓기도 했습니다. 머리색은 그대로더군요. <고양이의 보은>에서 보이는 변신 양태는 사춘기 소녀인 주인공이 자기 정체성과 자기존재에 대한 믿음을 굳혀 가면서 고양이로 변해가는 자기 모습을 구해낸다는 구조로서 명료하게 정리 할 수 있습니다마는 <하울..>에서의 소피는 하울과의 로맨스가 필요한 장면과 잠잘 때는 십대 소녀처럼, 청소할 때와 인생을 다 산 듯한 통찰력을 보여줄 때에는 다시 아흔의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모습이 수시로 오가게 한 이유를 알기가 힘듭니다. 왜 그랬을까요?
최고의 인기 캐릭터 '하울'에서도 이상한 점은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톱스타를 성우로 캐스팅 한 점도 그렇지만 왜 외모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심장교환 계약을 했는데도 왜 살아 있는지, 맨 마지막에 가서는 캘시퍼와의 계약은 도대체 어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캐릭터의 성격에 대한 의문들은 스토리보드 전체에 대한 의문으로 남기도 합니다. 소피가 저주에 걸린 뒤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출을 결심한 것 까지는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뒤에 왜 황야의 마녀를 찾아 갈까요? 갑자기 움직이는 성에 정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요? 이 부분의 내용전개에서 상당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은 저 뿐이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http://blog.paran.com/gazzet 블로그에 들어가 보시면 에니메이션 직에 종사하시는 분의 글을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번 <하울..>은 처음부터 미야자키 아니메로 기획되었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원작의 발굴은 미야자키가 했지만 후진 양성을 위해 <디지몬 어드벤처>의 감독이 이 작품을 맡아 기획을 진행 하고 있던 중 지브리스튜디오를 지원하던 회사의 사장이 바뀌면서 감독을 미야자키로 바꿔 넣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국내 만화영화 관련 전문직종에 종사하시는 분이니 아마 그 분의 말씀이 맞을 걸로 믿습니다.
미야자키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자기 의도를 충분히 반영시키기 어려울만큼의 압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큰 흥행을 위한 요소들만 확대 하고 '황야의 마녀'같은 미야자기 아니메 답지 않은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고 또 과장된 전쟁씬을 사용하게 되고 또 CG의 힘을 많이 빌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기존에 다루었던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기도 힘들어 졌겠지요. 추측이지만 ㅡ.,ㅡㅋ;
20자 평에 역시 최고! 라고 적는 사람들, 진짜 감상을 하지 못하고 미야자키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눌려 웬지 좋다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명성이니 역시 최고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거북해서 좀 적어 보려던 것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혹자는 저의 이런 시선을 무조건 일본이면 나쁜 줄 아는 사람의 편협된 시선으로 보기도 하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저는 소니나 스카이 같은 '탁'에 위압되어 진짜 '족'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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