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10일 영국 사우샘프던 항
그날은 이날따라 항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으며 그 사람들 틈에 엄청나게 큰 여객선 한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배 위에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거리며 있었고 부둣가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그 여객선의 위용에 모두 할말을 잊고 있었다.
20세기 초 당시 세계 제일의 나라는 영국이였으여 다시 한번 훏어봐도 영국보다 더 훌륭한 나라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세계 곳곳에 영국기인(유니언 잭)이 펄럭이고 있었고 특히 그 영국의 수도 런던은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그러한 영국이 1912년 아주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으니 그것은 타이타닉이라고 하는 거대한 여객선이였으며 그 여객선은 말이 여객선이지 물 위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떠다니는 한채의 궁전이였다.
화이트 샌드 스타 사에 의해 제작된 타이타닉호는 총 길이가 이물에서 고물까지 269.1m 너비 28m 높이 14m 무게는 4만6328t에 이르는 당시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대영제국의 선박이였다.
당시 해군에서는 전함이라는 선박이 제일 크고 강력한 선박으로 존재했으나 이 타이타닉 호는 전함중에 제일 컷었던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일본의 야마토보다 더 큰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한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타이타닉이란 선박보다 더 큰 선박은 산업용이나 군사용으로 쓰이고 있는 선박 뿐이였으며 그 수도 얼마 되지 않다.
드디어 타이타닉 호가 첫 출발을 시작했으니 경적을 울리면서 4개의 굴뚝에서 일제히 검은 연기를 뿜고 드디어 집채보다 더 큰 쇠로된 스크루가 회전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윙윙 회전하면서 물살을 가르렀으며 그 거대한 크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넊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으며 타이타닉호는 드디어 바다 저 한가운데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속력이 붇은 타이타닉 호는 엄청난 속도로 물살을 갈랐고 영국인들은 저 큰배가 저렇게 빨리 달리자 더욱 넊을 잃고 마네킹처럼 배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였다.
배는 대서양을 가르고 가르러 4월14일 새벽 밤11시 30분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섬 근해에 이르렀다.
그러나 11시40분 거대한 빙산과 측면 충돌을 하였으며 충돌한지 2시간40분 후에 영원히 물속으로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이렇게 대영제국의 자랑이였던 거대하고 아름답고 호화로운 선박 타이타닉 호는 세계 제일의 해상 사고를 기록하며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
당시 타이타닉 호는 배 밑에 16개의 방수구획을 설치하였으며 이중 갑판 구조를 이루고 있어 안전한 배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배가 빙산과 충돌해 허무하게 가라앉아버렸다.
원인은 타이타닉호의 설계 중 4개의 방수구획이 침수해도 운항을 할수 있었으나 5개의 방수구획이 가라앉았고
이로 말미암아 침몰한 것이였다.
그러나 최근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하지 않고 다른 원인에 의하여 침몰했다는 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타이타닉을 조사했던 조사단들은 타이타닉이 충돌한 이물을 전부 정밀 조사했으나 거대한 구멍은 커녕 6개의 매우 작은 구멍을 발견하였고 빙산과 충돌해서 생긴 흔적으로 추정되는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매우 다양한 설이 등장하였고 그 중에 가장 신뢰받고 있는 설이 독일 잠수함 U보트 개입설이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당시 타이타닉 호는 5번이나 되는 빙산 경고 신호를 그대로 무시해 버렸으며 최고 속력으로 항진하던 도중에 이러한 참사를 맞게 되었다고 전해저 있으나 당시 타이타닉 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화물선인 캘리포니안 호의 선장
로드 선장은 자신이 죽을때까지 확실히 타이타닉과 자신의 배 사이에 정체불명의 배가 존재했었다고 주장했었다.
당시 로드 선장은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했다던 시각에 잠을 자고 있었으며 다른 승무원들도 전부 잠에 빠져든 뒤였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타이타닉 호는 사라졌고 카파시아 호가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도통 모르고 있던 로드 선장은 무전실로 급히 달려갔을때 무전기에 타이타닉 호가 보낸 구조신호가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구나 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었다.
무전병은 곯아떨어져 있었었다.
그로 인해 로드 선장은 선장자리를 박탈당하고 혼자 조용히 생활하다 죽게된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타이타닉호가 일을 당한 시각에 잠을 자서 사람은 못 구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타이타닉과 자신의 배 사이에 이상한 배가 있었으며 다른 깨어있던 승무원들이 봤을때 그 배는 새벽 2시쯤 사라졌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타이타닉 호와 캘리포니안 호 사이에 제3의 배가 존재했던 것일까?
실제로 독일은 1910년경 U보트의 설계를 완료하고 U보트를 실제로 생산해내기에 이른다.
이런 U보트가 북대서양에서 타이타닉 호에 접근 어뢰를 발사하여 타이타닉 호를 침몰시켰다는 설이 등장하였는데
실제로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뒤 구명정에 타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저쪽 어딘가에서 배의 불빛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어쩌면 이 배의 불빛이 캘리포니안 호 아니면 구조신호를 받고 급히 달려온 카파시아호일찌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 증언에 따르면 그 배는 절대로 캘리포니안 호나 카파시아 호가 아니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 배가 독일 U보트였을까?
또다른 증언자인 한 승무원은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했다던 그 시각에 배의 이물쪽에서 네 방의 포성을 들었다고 말하였다. 멀리서 은은하게 퍼져오는 대포소리처럼 말이다.
배가 빙산과 충돌할때 그런 소리가 나는가? 그것도 그런 소리가 났다면 연속적일 텐데 그 승무원은 규칙적으로
꽝! 꽝! 하는 4방의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탐사 팀이 찾아낸 6개의 구멍도 어뢰가 타이타닉 호의 측면갑판을 뚫고 들어간 흔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나머지 2개의 구멍은 무었이였을까?
그것은 불발어뢰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어뢰 주조 기술은 그렇게 발달되지 못하였고 충분히 불발어뢰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그 어뢰는 타이타닉 호 잔해 안에서 타이타닉이 막아주는 낮은 수압으로 지금까지도 터지지 않고 타이타닉 호 어디선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도데체 어떤 설이 가장 맞는 것일까?
타이타닉 호의 항해 일지를 보면 1912년 4월14일 새벽 11시40분경 커다란 빙산과 충돌했다 라고 씌여 있는 것으로 봐서 빙산 충돌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이러한 항해 일지는 타이타닉 호 이물에 큰 구멍이 뚫려있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독일 잠수함 U보트의 개입설도 그렇게 신빙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타이타닉 호가 어뢰에 맞았다면 앞부분 장갑이 날아가 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타이타닉의 이물 측면갑판이 그대로 있는것을 충분히 반론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이 항해 일지에 빙산을 써넣은 만큼 U보트 개입설은 그렇게 신빙성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어쩌면 타이타닉 호의 주요 간부들이 독일 잠수함을 은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독일 잠수함인 U보트가 어뢰를 발사해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 호를 침몰시켰다 라고 신문에 나가면 영국과 미국은 자극을 받게 되고 이것은 엄청난 전란을 가져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타이타닉 호의 소유국가인 영국은 더욱 독일의 공격에 자극을 받게 되고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할 것임이 틀림없다.
이로 말미암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문에 독일 잠수함과 타이타닉이 나가면 세계 역사는 지금과 판이하게 다르게 바뀌어 지금 역사책에 씌여있는 말인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청년에 암살당함으로서 시작되었다"가 아닌 "1912년 4월14일 캐나다의 동쪽 뉴펀들랜드 섬 남쪽 150km지점에서 운항중이였던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를 독일 잠수함 U보트가 어뢰공격을 함으로서 타이타닉 호를 침몰시키고 이로 말미암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라고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아뭏튼 두가지 설중 그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100%정확하다라는 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제일 확실한 것은 빙산설은 항해 일지이고 독일 잠수함 U보트 개입설은 타이타닉 호의 잔해에서 발견된
어뢰의 흔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그 어느것도 확신 있는 신빙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침몰에 관한 진실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북대서양은 차가운 바다였으며 충분히 빙산이 떠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고 당시의 국제 정세나 독일 해군의 U보트 제작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진실은 따로 존재한다.
그것은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다 사망한 1,513명의 희생자들이다.
그들은 교만했던 화이트 샌드 스타 사의 잘못된 구명보트 배치와 선장의 교만함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였고 지금도
그들은 그 희생을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타이타닉 호는 그렇게 북대서양 수심 3,813m밑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러부터 86년 후에 다시 바닷물 밖으로 나와 영화가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을 감동으로 적셔 놓고 있다.
타이타닉 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었일까?
그것은 아마도 더이상 자신만을 믿고 교만하게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을 좀더 안전한 삶으로 인도하려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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