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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남자'가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하울의 움직이는 성
ottoemezzo 2004-12-21 오전 12:51:00 1805   [5]

나 이 영화보고 너무 실망했어. 한마디로 이제 미야자끼의 전성기는 끝난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고 요란하긴 한데 차분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게 뒤죽박죽이고 말이야...나는 영화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3가지 있어. 그건 바로 명료한 주제의식, 입체적이고 잘 구축된 캐릭터들이 이끄는 내러티브, 그리고 작품자체의 독창성이야. 이 세가지가 잘 조화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안된다면 그중 두가지나 아니면 하나라도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하울...'은 이 세가지 모두 실패한 작품이야. 먼저 주제를 살펴볼까. 그동안 미야자끼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주제가 뚜렷했어. 과학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한 '천공성 라퓨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한 '폭풍계곡의 나우시카', 자연과 문명의 대결을 신화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려낸 '원령공주', 사춘기 소녀의 자의식 찾기를 익사이팅한 모험담을 통해 그려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미야자끼의 아니메들은 작품의 주제의식이 너무나 분명해. 그런데 '하울...'은 이상하단 말이야. 이 작품은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는 걸까. 반전? 사랑? 내가 보기엔 미야자끼가 최초로 '십대소녀의 러브 스토리'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것만 다루기엔 좀 싱거우니까 여기에 반전의식과 예의 신나는 모험을 적당히 끼워넣어 관객들의 혼을 빼놓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어설픈 두 마리 토끼잡기는 명백히 실패했어.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은 누구나 느끼겠지만 '하울...'은 완전한 로맨스라고 하기엔 심각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있고 그렇다고 반전이라고 보기엔 또 로맨스 스토리가 너무 강하단 말이지. 한마디로 명료하고도 균형잡힌 주제의식을 담아내는데 실패한 거야.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적어도 미야자끼가 이번에 패착을 둔 것만은 틀림없어 보여.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부분에서도 이 작품은 실패작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 이 작품에는 소피라는 십대소녀와 꽃미남 마법사 하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기타 황야의 마녀, 말하는 불꽃 캘시퍼, 하울에게 마법을 가르친 황실 마법사 설리만 등이 등장해. 근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중 정말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며 잘 구축된 캐릭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해. 이 영화를 보고나면 스토리와 상관없이 숱한 질문이 떠오르거든. 소피는 누구인가, 하울은 누구인가, 소피는 왜 하울을 좋아하는가, 설리만은 누구인가, 설리만은 왜 하울을 추적하는가, 설리만이 보낸 강아지 첩자 힌은 왜 소피를 따르는가, 마르클은 누구인가, 캘시퍼는 어떻게 하울의 동력원이 되었는가, 질문이 끝이 없다니깐. 이같은 질문이 떠오르는 이유는 영화가 캐릭터를 제대로 구축하는데 실패한 채 속도감있는 스토리텔링과 CG를 동원한 화려한 볼거리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슈렉'같은 작품을 생각해봐. 이 작품 역시 영화를 보고나면 여러 가지 생각거리가 떠오르긴 하는데 적어도 슈렉이 누구인가, 피오나공주는 누구인가, 덩키는 누구인가 같은 캐릭터에 관한 기본적인 질문은 뇌리에 떠오르지 않잖아. 캐릭터 구축이 기본적으로 잘 돼 있을 뿐만 아니라 '슈렉'이라는 작품 자체가 우리가 잘아는 동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설명이 없어도 캐릭터들에 대해 관객들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이들이 이끌어가는 스토리에 별 저항감없이 빠져들게 되지. '하울....'은 달라. '하울...'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처음 접하는 이야기라서 감독은 빠르고 역동적인 스토리 전개에 앞서 캐릭터 구축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그냥 정신없이 캐릭터들이 등장할 뿐이고 얼핏보면 개성이 넘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어떤 캐릭터도 생동감넘치게 그려지고 있지않아.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은 런닝타임에 비해 그 수가 너무 많아서 그 어떤 캐릭터도 충분한 설명과 상황을 통해 그려내기가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봐야해. 내 평가가 가혹할 수도 있지만 영화내내 소피를 따라 다닌 무대가리 허수아비가 마지막에 마법이 풀리는 장면의 황당함이라든지, 소피를 마법에 걸리게 한 황야의 마녀가 갑자기 힘을 뺏기고 무기력한 노인이 되는 장면 등을 보면 미야자끼가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 운용을 얼마나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이 작품을 보고 느낀 점도 이야기해볼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미야자끼가 그동안 쌓아온 아니메 경력에 대한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이 영화는 곳곳에서 기존 미야자끼의 작품들의 복제품같은 장면이나 캐릭터가 등장해. 이건 뭐 거장 미야자끼가 그동안 쌓아온 아니메 경력의 내공이 불가피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새로운 작품에 꼭 필요한 창의성이나 참신성에 큰 짐이 될 수도 있어. 미야자끼는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면서도 그동안 자신이 만들어온 작품들의 주요한 개성과 특징 혹은 미야자끼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클리셰들을 의식적으로 담아내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이런 노력은 '하울...'이라는 작품의 독창성에 독이 됐으면 됐지 득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애. 또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슨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요 몇 년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마법이라는 소재를 너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점도 맘에 걸려. 미야자끼가 TV쪽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70년대는 오컬트라는 소재가 어린이용 아니메에도 상당히 많이 사용됐던 만큼 미야자끼도 당시 이같은 트렌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봐. 그래도 이 작품의 경우 19세기의 서구열강들의 대립과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법과 19세기 서구의 공존은 아무래도 어색할 수밖에 없어. 이 작품은 전쟁에 휩쓸린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19세기 서구라는 건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이성의 시대가 낳은 산물이잖아. 마법과는 공존이라기보다는 대립적인 관계인데 무리하게 한 작품안에서 이걸 동시에 다루다보니 여러군데서 어색한 장면이 발생할 수 밖에 없어. 또 소피와 하울의 러브스토리는 명백히 '미녀와 야수' 컨셉의 차용이며 할머니와 꽃미남 청년의 세대를 초월한 사랑도 컬트의 고전 '헤럴드와 모드'를 떠올리게 해.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다른 세계가 열리는 아이디어도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이미 본 것들이지. 그러니까 이 작품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소재 하나만 독창적일 뿐 그외 모든 부분에서는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독창성보다는 복제본 '레플리카'로 가득한 창고같애. 미야자끼가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하지 않는 이상 이같은 지나친 잡탕 혼합주의와 자기복제, 베끼기 등은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어.

그래서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해 본다면 이 작품은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라고 해야할 것 같아. 다만 이 작품에서 우리가 만나는 미야자끼 작품세계의 기술적인 부분들 즉 영상미라든지 성우들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 연기,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 등은 여전히 매혹적이어서 이번 작품이 미야자끼 필모그라피에서 기획과 연출의 실패로 빚어진 일회성 실패작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는 중이야. 누가 뭐래도 나는 진정한 미야자끼의 왕 팬이거든.....

 


(총 0명 참여)
^^;;;   
2004-12-24 01:24
소피가 왜 점점 젊어지는지도 궁금...   
2004-12-2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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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Howl's Moving Castle / ハウルの動く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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