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이른바 '이상향'이라는 것을 믿으세요? 사람이 일구어온 역사가 노력과 신념의 결실이 아닌 자연 발생적인 흐름에 따른 것이라면 사람에게 있어서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죠. 느닷없이 이상향 얘기를 하는 것은 이 영화가 바로 그것에 관한 얘기를 일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감추고 주변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건설한 그들만의 마을.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규칙을 통해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영위합니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주변 마을과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정체 모를 괴물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에요. 그 외에는 이 곳도 다를 바 없는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사랑, 기쁨이 있고 슬픔, 두려움이 있으며... 그리고 욕망도 있습니다. 때론 감추고 때론 발산해야 하는, 미묘함으로 가득 찬 욕망. 그래서 그 미묘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이상향은 흔들리고 깨지기 마련입니다. <빌리지>는 한편으론 이와 같은 욕망과 이상향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럼 이상향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선 사람들의 의식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규칙과 자율의 조화, 전체와 개인의 조화, 평등과 자유의 조화는 말할 필요도 없죠. 모든 것이 여의치 않다면 외부와의 완벽한 차단을 통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즉,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알게 모르게 많은 수단들이 동원되는 거죠.
그러나 사람이기에 언제나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게 해 모든 것을 좌우하게 한다는 점이에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수단이지만 그것은 굴레가 되어 사람을 옭아매고,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은 원래의 목적마저 망각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괴물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처럼요. 이렇듯 <빌리지>는 괴물의 존재를 빌려 목적과 수단의 주객전도 양상을 경계합니다.
샤말란 감독은 이 모든 얘기를 스릴러와 호러란 형식 속에 포함시키죠.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장르를 고수하면서 꾸준히 자신의 표현을 과감하게 확대시키는 중인 셈입니다. 물론 관객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에요. 아직까지도 '스릴러=반전'이란 공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빌리지>에서 보여준 샤말란 감독의 솜씨가 얼토당토않은 작태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테고, 깜짝쇼보다는 진지함을 원하는 사람들은 보다 긍정적인 태도로 <빌리지>를 대할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식스센스>의 망령으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아니 진작 벗어났어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빌리지>에서 샤말란의 모습은 미래를 위해 좋은 바탕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인기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자리를 서서히 넓혀가는 샤말란 감독이지만 그의 생각들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싸인>에서 보였던 운명에 관한 생각들과 그의 영화 내내 등장했던 동떨어진 자들의 존재, 그리고 이번 <빌리지>에서 보인 이상적 공동체(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이런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엮어질지 은근히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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