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 인연은 우연찮게 찾아옵니다. 항상 그때를 준비하고, 내게 다가온 이가 인연인지 잘 생각해 보세요.
선남선녀가 만나 단 하루동안에 느끼는 감정. 이들이 나누었던 감정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비엔나를 거쳐 파리로 향하는 유럽횡단 기차 안에서 만난 제시(에단호크)와 셀린느(줄리델피). 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지만 서로에 대한 알 수 없는 강한 이끌림으로 목적지를 잊은 체, 단 하루도 못되는 시간을 같이 한다. 본인들조차 사랑이라 믿기 힘들었던 순간의 감정. 단순히 무언가 통한다는 그 느낌으로 함께 했던 시간. 이들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6개월 후를 기약하며 서로의 목적지로 방향을 달리한다. 이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얘기하는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은 시간의 길고 짧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이들의 만남. 그 만남은 6개월이 아닌 9년 후에 이루어진다. 9년이란 시간은 많은 것에 변화를 가져온다. 9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영화 속 시간이 아닌 현실의 시간과 동일하다. 결국 제시와 셀린느의 모습에서도 9년이라는 세월을 느낄 만큼 모양새가 많이 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의식해서인지, 영화는 아주 친절하게 시작하고 있다. 9년 전 이들의 모습을 초반에 스쳐지나가듯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9년 모습을 회상하며 잠시나마 옛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어주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의 9년 후 이야기인 <비포 선셋>의 흐름은 전편과 같다.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동안 교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다만 전편은 해뜨기 전까지의 짧은 사랑이라면, 후편은 해가 질 때까지의 사랑이라는 시간적인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 제시는 출판 홍보 차원에서 파리의 한 서점에 사인회를 개최한다. 그 사인회장에 자리를 하고 있던 셀린느. 이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7시 30분 비행기로 다른 곳을 향해야 하는 제시의 일정에 맞춰, 그 시간까지의 짧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흘러간다.
이들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다. 과거 6개월 후의 약속을 따지기도 하고, 현재 자신이 하는 일,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와 같이 <비포 선 셋>에서 전편과 다른 색다른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비포 선 셋> 역시 특별함 없이 둘만의 속삭임을 엿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잔잔한 유머와 위트 섞인 대화로 영화를 이끌어 갈 뿐이다. 다만 9년이라는 시간은 이들 대화의 양상을 조금 변화시킨다. 수줍고 순수했던 속삭임과는 달리, 이제는 세상을 알아버린 이들의 대화는 거침없어 보인다.
또한 <비포 선셋>은 크나큰 재미거리 역시 선사하지 못한다. 계속되는 이들의 대화는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 자리에 있는 당사자라면 물론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자신이 사랑을 할 때, 남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듯이 <비포 선셋>도 그러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이들 사이에 개입되는 부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는 어떠한지 지켜보는 것이 전부이다.
9년 전의 기차 안에서 만남 짧은 인연. 그리고 오늘의 짧은 만남. 다음은 없을것만 같은 이들의 사랑은 또 다른 훗날을 기약하게 만들고 있다. <비포 선셋>은 훗날을 기약하며 끝을 맺어주고 있다.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자기 갈곳을 가야할 제시와 셀린느지만, 영화의 결말은 그렇지 않다. 제시는 셀린느의 노래를 들으면서, 알 수 없는 엷은 미소를 보이며 관객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몇 년 후에 있을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결혼에 관련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생각을 머릿속에 가져본다.
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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