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이 안달려 어쩔 수 없이 올려 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좋아서, 특히 본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보고 나서 더욱 되새김질 되는 이 영화가 좋아서
제가 이 영화에 대해 갖는 애정을 20자평에 담아보려고 가입했습니다.
무비스트는 영화 정보 얻으러 자주 왔던 곳인데 회원가입은 안하고 있었어요. 귀찮았거든요.
그런데 할 말이 생겼고, 그래서 가입한 것이고.. 다들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할 말이 생기는 영화가 있으면 또 글을 올리겠죠.
fighterzone님도 <꽃피는 봄이 오면>에 대한 혹평이 올리신 글의 전부던걸요.
피차, 웃기는 오해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님께서 주관적으로 두 영화 사이의 유사성을 느꼈다면야 그거야 어쩌겠습니까.
저도 간혹 어떤 영화를 볼 때 또다른 영화를 볼 때와 같은 '느낌'이 불쑥 솟아날 때가 있습니다.
소재나 배경이 유사할 때에야 더 그렇죠.
이 영화도 <스쿨 오브 락>이나 <홀랜드 오퍼스> <뮤직 오브 하트> <짱>처럼 음악선생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부터 시작해서 <빌리 엘리어트> <브래스트 오프>처럼 탄광촌이 배경인 영화들을 거쳐
조금 더 확장시켜서 아예 <죽은 시인의 사회>나 <위험한 아이들>처럼 아예 선생님이 주인공인
영화들까지... 영화에 대한 대강의 정보만 들으면 참으로 '예상'되는 영화들의 스펙트럼도 다양하여
어떤 이들은 그런 감동을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예상이 전혀 틀렸다며 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각양각색인 것 같습니다.
님께서 올리신 <브래스트 오프>는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그 감독이 만든 <끝내주는 자리>라는 영화도 그렇고...
가지지 못한데다 점점 내몰리는 사람들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절대 그들을 비참하게 그려내지 않는 그 감독의 시선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치열하고 냉담한 현실이 인물들을 압박하고 있고
그의 영화들은 한시도 그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브래스트 오프>의 막바지 경연대회 장면에서 다른 지휘자가 대신 지휘를 하고
그림리밴드가 대상을 받고
꼭 죽을 것 같던 지휘자가 씩씩하게 올라와 상을 거부하고
대처시대 광산노동자들의 현실을 일장연설로 설파하고나서
그래놓고도, 슬쩍 트로피를 뺏어오는 것조차도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만큼요.
우리가 들어야하는 건 그들의 목소리를 빌린 감독의 목소리였으니까요.
<꽃피는 봄이 오면>은 사실 탄광촌 중학교에서 관악을 하는 소년들을 옭죄는
현실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탄광촌의 소년들이 아니라 강원도 산골의 소년들이라고 바꿔놓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에요.
이 영화는 오로지 이현우에게만 관심이 있고,
우리가 이 인물과 우리를 동일시하게 만들려고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중 누가 좌절한 음악가 얘기에 관심을 갖겠어요.
음악이 우리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런데도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는-적어도 저는-현우를 둘러싼 답답한 현실을
수긍하고 슬쩍 현우의 자리에 우리 자신을 옮겨놓게 됩니다.
그리고 현우를 따라 탄광촌의 소년들을 만나고
처음 꿈을 꾸었을 때의 내 모습을 그들을 통해 봅니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지지만 선뜻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 것도 우리와 현우가 닮은 점입니다.
그는 실력 있는 스승도 아닌데다가
스승이 되고 싶은 사람도 아니죠.
음악으로 그들이 처한 현실을 바꿔놓을 수도 없고,
그 아이들의 꿈을 이뤄줄 수도 없지만,
그 때 그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죠. 어쩌면 그게 그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대신 아이들과,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그 시간 동안
지친 심신을 달래고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오히려 무언가를 얻는 것은 현우쪽이지 아이들이 아니에요.
제가 이 영화의 '느낌'과 <브래스트 오프>가 준 '느낌'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줄거리가 탄광촌 관악부가 어떤 선생님을 만나 경연대회에 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인물이 낯 선 곳에 가서 삶의 온기를 얻어서 오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 영화의 스토리 때문에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주위 사람들은 그래서 좋아했습니다만.
<브래스트 오프>와 줄거리가 달라서만이 아니라
님이 분노했다고 하시면서 '카피의 증거'로 제기하신 '증거'들이
틀린 정보라는 것이 제가 님의 글에 덧글을 단 이유일 것입니다.
님의 '느낌'이야 제가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본인의 느낌을 얘기하신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카피했다고 하시니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저로서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반문할 수 밖에요.
그럼, 즐거운(?) 대화,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지친 제게 투박하지만 정감있는 말투로
친구처럼 위로를 건내던 이 영화의 느낌을 당분간은 간직하고 싶거든요.
P.S. 제 기억에는 <브래스트 오프>에도 <위풍당당 행진곡>이 흘렀습니다.
어디서 흘렀는가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요. ^^
갱도 앞에서 연주하는 장면에서 <브래스트 오프>에도 흘렀던 <위풍당당 행진곡>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는 감독의 인터뷰기사를 맥스무비에서 읽어봤습니다.
고민이 됐겠죠. 안그래도 '탄광촌' 때문에 당연히 이 영화 얘기 나올텐데...
그래도 그 장면에서는 막장에서 나오는 아버지들을 위로하는 곡으로
그 곡만큼 어울리는 곡이 없었을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