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지 못한 장이모우의 무협(武俠) 판타지 - 영화 <연인> : 협(俠)은 없고 장쯔이의 舞(무)에만 그쳐
한 해 전에 장이모우의 무협 영화 <영웅>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친구들 사이 의견이 분분했지만 뛰어난 색채감과 상상력으로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라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과 비교해 색다른 멋을 찾을 수 있었다.
<붉은 수수밭><국두><집으로 가는 길> 등 대륙적인 중국의 색채로 인정 받았던 장이모우로서 <영웅>은 분명 새로운 도전이고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일군 영화라 할 수 있다. 그 두 번째 편이라 해도 좋을 영화 <연인>(원제 十面埋伏 감독 장이모우)이 유덕화, 장쯔이, 금성무 등 홍콩 스타들을 앞세워 올 가을 극장가에 선보였다.
울긋불긋한 단풍처럼 가을 분위기에 맞는 이 영화의 화려한 색채감은 감독의 전작 <영웅>을 잇는다. 화려한 다홍치마를 입은 맹인 기녀 메이(장쯔이 분)의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춤의 시작과 함께 웅장한 북소리는 굵으면서도 섬세한 무희의 속도감 있는 춤사위로 화려한 유채색의 스펙터클을 자아낸다. 마치, 지난 여름 헐리우드 영화가 큰 스케일의 스펙터클로 국내 관객을 공략하려 했던 것처럼.
중국에서 가장 화려한 문화를 자랑했던 당나라를 배경으로 민중 반란군의 딸 메이를 두고 반란군의 본거지를 찾으려는 관군 진(금성무)과 리우(유덕화)의 의기투합으로 쫓고 쫓기는 긴박감을 자아내며 감독의 전작과 달리 빠른 속도감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관군복의 군청색과 민중 반란군 '비도문'의 연녹색 옷차림이 대조되면서 곧게 뻗은 푸른 대나무 숲과 하얗게 들풀이 흐드러진 벌판을 비주얼로 삼아 전작 <영웅>의 색채감을 이어가려는 강박관념까지 느껴진다.
"바람처럼 살고 싶어" - 진, 메이
하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고 할까. 바람처럼 살고 싶다는 진에게 호감을 보이며 메이 역시 '바람'(자유)을 꿈꾸며 영화는 세 남녀 사이의 복잡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애증의 삼각 관계가 펼친다.
이러한 애증의 관계나 반전이 계속 되어 영화 반전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영화로 기억될 이 영화는 보는 이에게 지루함이나 짜증을 자아내며 영화에서 결말(엔딩)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교훈을 준다. 계절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것을 제외하고도 눈 더미 사이에서 죽은 줄로 알았던 메이가 마치, SF영화의 로봇처럼 ‘추워 죽겠는데, 왜 계속 싸우고 난리야’ 라는 듯 스르르 일어날 때 실소를 금치 못했다.
상상력이라 하기엔 너무 부자연스러운 전개로 인해 영화 후반부는 사생 결단 식의 애증 묘사로 치닫는다. 절정에 이은 깨끗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무협 멜로가 아닌 엽기 코미디가 연출되자 그 동안 감독이나 배우들에 대한 기대가 일순간 무너져 내린다.
영화 속에 ‘바람’이라는 요소는 어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에 얽매임 없이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연인의 바람을 이어간다. 다만, 곽재용 감독의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속 바람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 였듯, 이 영화 역시 심금을 울리는 배경음악(OST)과 함께 한 편의 뮤직비디오로 그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전지현의 대명사처럼 여겨진 긴 머리만큼이나 아름답고 현재 중화권에서 가장 인정받는 여배우 장쯔이의 공중 곡예와 관능미에 집착한 감독의 장면 편집이 낳은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장이모우 감독에게 멜로든 액션이든 무협 영화에서 격투 및 추격씬 등 무(武)에 열중한 나머지 전작 <영웅>에서 보여줬던 협(俠)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묻고싶다. 지나친 애증 묘사가 정작 감독이 의도했던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면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절제된 협(俠)의 의미를 살린 무협영화를 보여달라고..
北方有佳人(북방유가인) 북방에 가인있어
絶世而獨立(절세이독립)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 미인
一顧傾人城(일고경인성) 한번 눈길에 성이 기울고
再顧傾人國(재고경인국) 두번 눈길에 나라 기우네
寧不知傾國(영불지경국) 어찌 경국을 모르오리마는
佳人難再得(가인재난득) 가인은 다시 얻기 어려워라
- 영화 <연인:十面埋伏> 中 메이(장쯔이)가 불렀던 가인곡(佳人曲)
/ nugu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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