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오랜만에 명보 극장에 갔다. 아이디체크 하면서 준호님을 보고 눈인사를 건냈다. 푸근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좌석표를 받아들고 서성이다 담배한대를 피우고 극장으로 들어가서 팜플렛을 읽었다. 대략 어떤 이야기인줄은 알았으나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봤다. 혼자 보는게 멋적기보다는 즐거울듯하다. 나에대해 돌아보 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 극중 현우역의 최민식에 나를 대입해 보기로 작정했다. 난 현우처럼 트럼페터는 아니지만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사랑하는 여자와도 헤어졌고, 아직 어머니 에게 짐이 되는 아들이고, 그런 아들을 끔직히 위해주는 어머니가 계시고 그냥 저냥 삼류로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닮았으니까...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에 감독 나름의 살을 붙여서 만든 작품이라고한다.
현우는 사랑하는 연희에게서 결혼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말로는 "잘 되었네 축하해 행복해라"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미래를 함께하지 못하는 자기가 밉고 날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이 밉다. 그래서 현우는 과속 단속용 무인카메라에 돌을 던져 보지만 바뀌는건 없다. 나도 세상을 향해 부질없는 돌팔매를 나름대로 힘껏 신경질적 으로 여러번 해보았지만 내 팔만 아플 뿐이었다. 현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음악은 좋아서 하는것이지 돈을 벌려고 하는게 아니란다. 그러나 현실은 현우의 그런 생각과 얘기들을 단숨에 우습게 만든다. 현우는 내키지는 않지만 돈벌이를 위해 주부들에게 관악 연주를 가르쳐주는 일을한다. 연희는 그곳에 찾아와 막상 하고픈 말은 못하고 현우 어머니께 드리라고 영양제만을 건낸다. 이제 곧 다른 사람과 결혼할 여자가...
현우는 돈벌이에 독이오른 친구, 떠나보낸 연희, 나에게 잔소리는 하지만 끔직히 날 생각해주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교향악단 연주자의 꿈을 접고 강원도 탄광촌의 도계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가게 된다. 현우가 찾아낸 도피처이다. 그러나 그곳이 새로운 희망이 될 줄은... 관악부 아이들과의 첫 대면... 소리도 제대로 안나는 악기들 몇 안되는 부원들, 대회에 입상 못하면 폐지될 운명의 관악부... 모든것이 형편 없고 막다른 골목이다. 별로 마음에 드는 구석도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다는 아이들의 말에 현우는 자신의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아이들에게 대회에서 입상이 중요한게 아니다. 음악은 돈벌려고 하는것도 아니고, 폼으로 하는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열심히 관악부를 지도하게 된다.
도계에서의 생활이 낯설지만 음악이 좋다는 아이들이 있고, 연이 약국의 수연이 있어서 현우의 도계 생활은 나름대로 적응이 되어간다. 관악부원중 한 아이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되고 현우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밤무대 색소폰주자로 일을하게 된다. 현우는 돈을 위해 음악을 하게 된 것일까? 음악이 좋아서 한다는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밤무대 일을 해서 어려운 제자를 돕고, 자식이 음악해서 헛바람 드는게 싫다는 제자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설득도 하고 현우는 마치 자신이 못 이룬 꿈들을 아이들을 통해 이루려는듯 어느새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관악부 담임 교사가 되어 버렸다. 관악부에 못나가게하는 제자의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아버지의 일터인 막장에 관악 부원들을 데리고 가서 비를 맞으면서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에선 너무 감동적이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어느덧 크리스마스, 연말을 지나 새해를 맞이한다. 재일이 할머니가 끓여주신 떡국을 맛있게 먹고 할머니께 새배 드리고 제자 재일에게 너도 선생님한테 새배해야지 하면서 새배받고 재일에게 "전에 니가 달라던 그 악보다(현우가 작곡한 곡)" 라며 건네는데 그 안에 만원짜리 한장이 같이 들었느게 아닌가. 이 장면도 참 감동적 이었다. 현우의 어머니에게서 문득 전화가온다. 전화가 끊겨서 전화를 건다는게 자신도 모르게 연희의 번호를 눌러 버린 것이다. 아 이장면 진짜 공감 간다. 그렇게 한동안 잊으려 애써온 연희와 우연히 통화를 한다. 진심으로 하고싶은 얘기는 못한체 통화는 또 끝난다. 마치 연희가 교습소에 찾아와 현우에게 그랬듯이...
현우는 혼자서 밤에 술을 마시다가 어머니한테 전화를 한다. "엄마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싶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넌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난 이 영화에서 이부분이 제일 감동적이었다. 나도 현우같은 생각을 늘상 하는터이고 그런 나에게 우리 어머니께서도 힘을 주시느라고 현우 어머니 처럼 말씀을 해 주시거든요 갑자기 현우와 현우 어머니, 어머니와 내가 오버랩 되면서 눈물이 글썽... 연희의 통화는 그렇게 현우의 가슴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또 다시 현우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던중 재일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고가 생긴다. 재일은 할머니와 바다를 가보는게 소원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할머니가 안계신다. 재일은 선생님의 트럼팻을 가지고 혼자 바닷가로 간다. 현우는 같은 시간 서울에서 온 돈독오른 친구와 바닷가 횟집에 간다. 결혼 계획이 취소 되고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연희와 재일은 우현이 만나고 트럼팻을 들고 울고있는 재일에게 트럼팻 연주 하나만 해 달라고 한다. 현우가 생각 나서 였을까? 재일은 선생님의 곡을 연주한다. 그 곡을 듣고 있던 연희는 그만... 재일은 다시 관악부로 돌아오고 다시 연습은 시작 된다.
드디어 대회 날이다. 현우는 아이들에게 긴장하지말고 연습때 처럼 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북돋운다. 그런 선생님께 아이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지휘봉을 건네는데... 참 요런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감동을 주는게 감독이 참 섬세한 면까지 신경 썼구나 하는게 눈에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대담하고 선 굵은 유화라기 보다는 담백 한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든다. 대회 결과 도계중학교 관악부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고 관악부는 존속 된다. 뻔하지만 감동적인건 어쩔 수 없다.
긴긴 겨울은 지나고 세상에도 봄이 오고 현우에게도 봄이 왔다. 현우는 벚꽃이 핀 벤치에서 너무도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연희에게 전화한다. "피아노 학원은 잘 되냐? 술이나 한 잔 하자..."
영화에 나오는 음악이 참 좋았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도 너무 좋았고, 최민식의 무르익은 연기는 나를 현우로 몰입 시키기에 충분했다. 현우와 제자들과 아름다운 이야기, 도계의 아름다운 풍광 모두 좋았다. 사랑에 실패한 현우가 도피처로 삼은 그 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약국 수연과의 만남,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상처가 치유 되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담아낸 영화로 별로 흠 잡을 곳은 없다.
지나간 봄으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려야 겠다. 봄이란 여러 의미가 있겠지? 사랑일 수도, 꿈일 수도... 나에게도 왠지 봄이 가까이 다가온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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