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통해 처음만난 스필버그는 오늘 또 다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내게 전했다.
몇 주 전 영화 <슈렉2>를 보면서 예고편을 통해 <터미널>의 느낌에 확 빠져버린 나는 영화의 개봉일 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친구의 사전 영화 예매로 드디어 개봉 첫날 가장 좋은 자리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슈렉2>관람 이후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다양한 화제를 낳고 개봉됐지만 나는 오직 <터미널>의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영화 속 주인공 ‘빅토르 나보스키’가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본 기쁨과 같았다.
영화 <필라델피아>와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아카데미상을 2번이나 수상한 '톰 행크스'의 연기는 이번 영화에서도 주인공 ‘빅토르 나보스키’를 통해 유감없이 표출되고 있다. 미국인이면서 영어를 모르는 외국인 역할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완성해 내는 '톰 행크스'의 연기력은 다시 한번 그의 능력을 경험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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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터미널>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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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DreamWor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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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해외여행지 공항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시작된다. 주인공 빅토르 나보스키 역시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부터 영어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데 결국 '예스맨'이 되고 만다. 상대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이고 주인공은 영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다. 결국 서로의 대화는 콧대 높은 미국인들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영화 <터미널>은 실제 프랑스 파리의 드골공항에서 무려 11년간이나 지내며 살았던 한 이란 남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 배경이 미국의 JFK공항이며 주인공의 이야기도 다르지만 실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기초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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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빅토르 나보스키역을 맡은 <톰 행크스>의 당황한 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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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DreamWor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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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보스키가 미국의 JFK공항에 도착 한 순간 그의 조국 '크라코지아'는 쿠데타로 인해 정권이 전복되고 이내 나보스키의 여권과 미국행 비자는 한낱 종이수첩에 불과해 지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미국 입국은 좌절되고 그의 거처는 일순간에 JFK공항이 되고 만다.
그렇게 공항에서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욱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공항 보안의 최고 책임자 ‘프랭크’로부터 공항을 깨끗하게 하는 청소부, 화물 노동자, 식사 배달부 등과의 인연은 <공항>이라는 극히 제한된 공간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며, 다양한 화젯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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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FK공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실에 가까운 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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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DreamWor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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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무대가 되며 주인공 나보스키의 집이기도 한 영화 속의 사실적인 JFK공항 풍경은 거대한 세트라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할 만큼 정교하고 완벽하게 재현되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실제로 작동되는 에스컬레이터가 4대나 설치됐으며 영화 속 PPL 광고 협찬사의 직접적인 브랜드 노출을 위해 배치된 각종 상점 간판은 사실성을 더욱 배가 시키고 있다.
비록 세트이긴 하지만 실제 그곳의 상점에서 일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미국인과는 대립되는 이미지로 부각되어 보여 진다. 청소부는 인도인으로, 식사 운반차 운전자는 동유럽의 출신으로 그려지는데 이들 모두 한 가지씩 거대 미국에 대해서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약자로서의 '흠집'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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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떠나는 주인공 _ 빅토르 나보스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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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DreamWor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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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상대적 약자의 선두에서 주인공 나보스키는 그들이 가진 콤플렉스를 대신해서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부각되고 그들의 후원으로 결국 나보스키는 그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뉴욕으로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나보스키는 미국에 왜 왔을까?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그가 가방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땅콩이 담겼던 하나의 작은 ‘캔’속에 숨겨져 있다. 캔 속에는 주인공 나보스키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흔적들이 담겨져 있다. 나보스키가 뉴욕에 온 이유는 바로 재즈연주자들 중 마지막 한명의 섹스폰 연주자의 ‘사인’을 받기 위함이다.
영화 내용상 그 결과론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큰 설득력을 가지지는 못하는 설정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영화의 주 내용은 나보스키가 미국에 온 이유보다는 그가 공항에서 처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리 큰 흠은 되지 않는 느낌이다. 아마도 나보스키가 왜 미국에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크게 간직하고 영화를 보면 조금은 그 결말에서 실망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영화 <터미널>의 전체적인 내용은 잔잔한 감동과 코믹을 적절히 배합한 즐거운 가족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하다. 대사 중 일부에서 어린이들의 귀를 잠시 막아야 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어린이들과 함께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전체관람 등급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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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표지판에 "SEOUL"의 표시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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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DreamWor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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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공항 간판에 나타난 'SEOUL'이라는 도착지명과 톰 행크스의 대사에서 한국과 관련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내용들을 찾는 재미도 영화의 흥미를 더 해 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실제로는 외국의 국제공항에서 우리의 국제공항 도착지를 'SEOUL' 이 아닌 ‘INCHEON'으로 표기 하는데 반해 영화에서는 'SEOUL'로 표기되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해 싱가포르의 한 병원에서 분리 수술에 성공한 우리의 샴쌍둥이 민사랑, 민지혜 자매와 관련한 뉴스 소식을 주인공 나보스키가 텔레비전 뉴스의 자막으로 지나가는 내용을 대사로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영화의 결말은 결국 9개월간의 ‘공항살이’를 마친 나보스키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뉴욕의 한 재즈 클럽에서 마지막 한명의 섹스폰 연주자의 사인을 받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참 오랜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좀 허전하기까지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야기의 중심은 결코 나보스키가 뉴욕에 온 이유가 아닌 그가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처한 상황에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감상해야만 ‘기다림의 아름다움’과 ‘기다림의 희열’을 만끽 할 수 있다.
이야기가 끝이 나면 마지막 섹스폰 연주자의 ‘사인’과 함께 스티븐 스필버그의 멋진 사인과 촬영감독, 편집감독, 그리고 영화를 함께 한 수많은 스텝들의 ‘사인’이 크레딧을 대신하며 스크린 위를 장식하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본 내용은 오마이뉴스 영화 섹션에도 소개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