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은 멋있었다'를 보면서 계속 뇌리에 떠돌던 말은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이다. 하지만 비평이라는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서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며 비평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철저히 자신의 확고한 시각의 정립하에 비평을 해야 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영화평을 잘 쓰는 분들을 붙잡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물어보는것은 다소 유치할 수 있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선 갑자기 심하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여러분은 어때요?"
재수털렸다. 일단 철저히 내 시각으로 '그놈은 멋잇었다'를 보면 대답은 이것뿐이다. 내 속내를 파악한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표현은 다분히 역설적인 표현이다. 개인적으론 이 영화를 내내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찾아내는데 있어서는 나는 정말 대책없이 막힌 사람이 된다. 하나를 부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원인을 찾다보니 끝내는 귀여니의 동명의 소설까지 보고 말았다. 내 이 작품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것으로 기인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자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대를 전혀 대적 상대로 삼고싶은 마음 추호도 없는걸 차라리 이런식으로 시간을 버릴바엔 영화평 따위는 그만두고 요즘 공부하는 일어나 한자 더 볼 걸 그랬나보다.
헤어나올 수 없는 그대와 나와의 동질성의 관계 규명을 일단 끝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야 마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조용히 승천시키듯 이 작품을 보고 참을수 없는 울화와 그로 인한 우울증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전체적인 영화 평 따위는 필요없다. 20자평 만으로도 충분히 평가 가능한 영화다' - 래즈배리
하지만 20자평에 그치지 않고 글을 쓰기로 작정한 이유는 쓰기 힘들고 어려운 글을 쓸수록 글빨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것은 비유는 부적절하지만 마치 에리히 폰 에스트로하임의 *'탐욕'의 6시간짜리 완전판을 구해다가 대략 다섯번의 감상 과정을 거친 뒤 120장짜리 논문으로 평하는 작업과도 같은것이다. 사실 귀여니 소설은 그보다 뭔가를 집어내기가 쉽겠지.
다른이와 입장이 비슷할 수 있지만 본인이 '그놈은 멋있었다'를 비판하는 이유는 '패러다임의 부재'였다. 이윤세양이 간단 명료한 글과 신선한 이모티콘으로 10대들의 아이콘으로 급부상 했지만 그것은 전혀 영화라는 영상매체에 옮길 수 있는 요소들이 아니다. 물론 영화 중간중간 화면에 이모티콘들을 띄워 주요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떤 영화 소품에 있어서의 발상의 전환이 될 수는 있어도 극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되지 않는다. 그런 텍스트적 신선함은 오히려 영화라는 매체에 있어선 독이 된다는 사실인것이다. 근데 그런 단점을 간파했음에도 왜 나는 애간장을 태우며 '이 영화는 비평이 힘들어'라고 했을까?
이제 내 이야기를 할 때 같다. 픽션의 대리만족내지 현실도피가 자신의 상황을 얼마나 반영 하는가에 대한 괴로움 때문이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어찌보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파리의 연인'이나 '불새'같은 연애담의 구조와 골격은 다를바 없다. 잘생기고 나름대로 능력(?) 있는 남자가 잠재적인 능력보다 별볼일 없음이 더 드러나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데 또 비슷한 능력의 소유자가 이 여인네를 좋아하고 그것때문에 이 여인네를 싫어하는 악역들이 등장하는 그런 뻔삼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놈은 멋있었다'는 뭔가가 다르다.
위에 소개했던 두 TV드라마의 남성들은 잘생기고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환상적인 조건 말고도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나름대로 현실적인 충만함도 지니고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은 비현실적 세계를 상징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남성들은 하나의 꿈의 상징이 된다. 모임 자리에 나가서 평범한 여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분명 이런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이런 남자가 그대들에게 연인으로 다가온다면? 대답은 'OK' 한편 '그놈은 멋있었다'의 지은성을 보자. 이녀석에게도 잘생기고 사랑으로 절라리 충만하다는 환상세계의 조건은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 집안은 좋다. 하지만 조금 문제있는 집안이다. 이녀석의 능력을 보자. 싸움꾼이다. 한 3년후에 명동 달건이파에 입성하면 칼받이는 면할인재다. 결국 뭔가 하류인생의 냄새가 나는 녀석이다. 여자애들에게 던지는 쌍시옷워드또한 그의 인격 수준을 대변하고 있으므로 얼굴만 생겼고 집에 돈만있지 딱 '양아치'라는 말이 어울릴만한 녀석이다. 그런데 이런 녀석이 뭐가 좋아서 '사랑에 빠졌어용용'하는 것인가.
본인이 내린 결론을 말하기전에 한예원이란 캐릭터도 유심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한예원. 인생 뭐 없는 여자애. 결국 평범한 고딩으로 인터넷에 시간을 죽이는 평범한 이 애는 재미없는 고딩생활을 쓰잘데없는 인터넷 소설로 승화시킨 이윤세양의 페르소나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자신의 페르소나에 엄청난 과장을 불어넣었을것이다. 얼굴이 절라리 이쁘든지, 자기는 이제 쥴리어드 음대로 들어가야 할 몸이라든지 하는것 따위 말이다. 그런데 왜 라이프스타일만 특이하고 심리묘사 외엔 들쭉날쭉한 악세사리가 없는 이 여자를 자신의 분신화 시켜서 주인공으로 내세웠단 말인가?
이쯤에서 시각은 비딱하나 구조상으론 올바른 추측을 해 볼 수 밖에 없다. 결국 실제로의 귀여니나 소설-영화속의 한예원이나 말마따나 거창하게 '사랑지상론자'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어디서나 본 사랑의 구조속에 사실은 현실조건에 기인한 상상보다 비현실성으로 가득찬 몽상에 더 무게를 실은 사랑이야기는 백마탄 왕자가 아닌 오토바이탄 환자를 더 좋아한다는, 아직 연애에는 미숙한 한 여자의 치졸한 사랑이야기가 화면가득 만발하고 있다는것이다.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 남기엔 '그놈은 멋있었다'는 너무나 설득력 없는 한심한 이야기임엔 분명하다. 새로운 코드와 영상으로 무장한 겉모습도 없는 재미없는 영화라고 본인은 평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본다. 정말 사랑만으론 안되는 걸까? 연애경력 전무의 한 영화광의 가슴속에선 마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처럼 본인의 첫사랑인 도모여인과 지금의 관심대상인 강모여인이 나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이야기를 몰래 상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노래가 울려퍼지겠지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자들이 내려오네' 아직 가을도 안되었는데... 외롭다.
* 탐욕(Greed)는 원래 6시간의 대작이었으나 영화가 길다는 이유로 2시간으로 편집되었던것을 영화인들의 노력끝에 편집필름 복원을 통해 99년에는 250분 버젼으로 리마스터링 되었으며 아직도 영화인들은 이 필름의 복원을위해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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