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네티즌리뷰를 보다가 donkey9님의 글 '열쇠를 감췄어야 했다!!!'를 읽고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퍼옴니다.^^
시사회 이벤트 문제에서 이미 그 답이 나왔다. 기억상실이 그것이다. 아니 기억상실이라기보다 수술후 14일간의 혼수상태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이같은 감독의 '속셈'을 미리 알고 시사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영화 자체가 싱거웠을 수도 있었을 성 싶다.
수년전 케빈 스페이시의 인상깊었던 연기로 기억되는 '유주얼 서스펙트'가 떠오른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려고 매표소에서 줄을 서 있었다. 그때 전회 관람객 하나가 "절름발이가 소사다"라는 말을 킥킥거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처음에는 그 얘기가 뭔 소린지 몰랐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케빈스페이시가 절름발이로 등장했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절름발이=소사'라는 전제가 내 마음을 무장시켰다. 때문에 영화의 극적 반전 긴장감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그같은 기분이 '거미숲'시사회에서 '14일간의 기억상실'로 또 재현됐다. 그점이 아쉽다.
각본까지 맡은 송일곤 감독의 노력을 높이 산다. 특히 심리학 공부를 꽤나 한 모양이다. 주인공 강민의 어릴 적 심리적 외상(Trauma)을 근저로 얘기를 풀어 나간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의 부정과 친구 수인이의 죽음은 강민의 무의식에서 살인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상관인 최국장의 인격적 모멸감과 황수영과의 불륜이 현실적 동기로 가세한다.
단순한 사실만을 따지자면 강민은 살인자다. 신문 제목으로 바꾸면 '치정살인'에 해당한다. 자신과 결혼을 이야기했던 황수영이 최국장과 불륜을 저지르자 이에 격분, 살해한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영화를 재구성해보자. 아내와의 이야기, 아내의 죽음, 황수영과의 만남, 강민의 살인, 그리고 혼수상태에서 보여지는 환상, 의식 회복이 그 전부이다. 이 영화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사실과 '환각'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환각은 '거미숲'에 대한 제보부터다. 이때부터 강민은 자기분열적 모습을 보인다. 최국장이 강민에게 한가지 제보가 들어왔다며 할당한다. 그러나 강민에게 떨어진 그 제보는 강민이 꾸민 일이다. 그리고 '익명의 전화' 역시 '거미숲'에 찾아가는 단초를 마련하기 위한 자기 기만이다. 이미 강민은 황수영과 최국장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살인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왜 황수영과 최국장의 밀애장소가 하필 '거미숲'이었나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무의식적 환각에서 사진관은 강민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것이었고... 편집상 문제인지 아니면 필연적 '우연'(?)인지...
강민은 방송국 PD이다. 역시 무의식 속에서도 그 구성력이 돋보인다. 살인을 저지른 뒤 그 죄책감을 교묘하게 버무린다.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죽은 아내를 수인으로 환생시킨다. 아내의 유품에서 발견된 필름을 매개로 사진관과 연결시킨다.(필름이 배달되는 것 또한 강민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 이는 강민과 황수영의 관계에 대해 죽은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환각속에서 정신적 도움을 주는 수인과 연관시켜 살려낸 것이다. 그 와중에도 강민은 극중 수인에게 혼자만 봐야 하는 것이라면서 필름을 현상-인화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둘째, 어릴 적 폐렴으로 죽은 수인의 것처럼 강민 어머니의 부정을 옮긴다. 바로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아픔을 죽은 수인의 것으로 투사(projection)시킨 것이다. 최국장과 황수영의 관계, 이른바 '불륜'에 대한 분노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부정하려는 강민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 드러나지만 강민을 처음부터 뒤따르는 검은 그림자, 그것은 바로 강민 자신이다. 살인한 뒤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강민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극중 강민을 계속 옹호하면서 도움을 주는 형사 최현성은 누구일까? 그 역시 환각속에서만 나오는 인물이다. 자신을 믿어주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을까 하는 강민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구의 친구인 것이다. 시나리오 중 사진관 주인 민수인의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는 영혼이 거미가 된다"는 말을 기억하라.
끝장면에서 죽은 아내의 환생인 수인은 강민에게 동굴을 따라 나가라고 말한다. 혼수상태에서 죽음이 아닌 삶의 길을 가르쳐준 것이다. 죽은 아내의 초월적 힘(?)이라고 할까. 영화 초반에서 보여진 아내에게 전한 강민의 꿈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아내는 자신이 죽은 다음 강민이 삶을 포기할까봐 두렵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름대로 '섬뜩한' 복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초반에는 병원에서 간호사의 검진을 받던 노인이 의식을 회복한 강민을 가리킨다. 강민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어린 아이가 의식을 회복한 강민을 가리킨다. 그것은 현실이다. 무의식 속 환각에서 노인은 죽음을 앞둔 강민을 의미하고, 현실의 어린 아이는 강민의 소생을 말해준다. 이 장면은 우리도 가끔 느끼는 '어디서 본듯한' 느낌, 즉 기시현상(dejavu)을 표현한다. 무의식에서 경험했던 (노인이 보였던) 환각이 현실에서 (어린 아이로) 비슷하게 재현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거미숲'은 한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든 혼수상태속 환각을 엿보게 한 영화다. 짜임새와 장치들은 잘 돼 있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심리물이다. 하지만 헐리우드 액션이나 가벼운 코미디물에만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에게는 머리 아픈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는 그냥 느껴야 한다. 지금까지 써 온 내용도 나만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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