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디어 이 영화를 보았다. 스파이더맨2가 다시 기록적인 영화흥행 기록을 세우며 헐리웃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유를 알 만하다고 할까? 영화를 본 느낌은 정말 복잡다단하다도 밖에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묘한 특색을 가진 영화였다. 언제나 주류영화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B급 공포영화 전문 감독처럼 낙인찍혀 있던 사람이 아무리 돈의 위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상상력과 기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대할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솔직히 <스파이더맨>은 얼마까지 그 시리즈를 계속할 지 알수 없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2부작은 <팀 버튼>감독의 <배트맨1,2>에 비견할만하다고 생각한다.
1.반(反)영웅적 캐릭터-그의 존재조건
1편에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평범한 고등학생에서 스파이더맨이라는 초능력자로 변신해가는가와 사랑과 우정, 정의와 불의의 싸움에서 그가 어떻게 상처받고, 어떻게 이에 대한 입장정리를 하게 되는가를 보았다. 일종의 서곡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2편은 연장선상이긴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심각하게 자각하지 못했던 상황설정 속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그의 삶의 존재조건이다. 2가지 직업(double job)을 가지고 생업에 허덕이는 가난한 대학생으로서의 <피터 파커>, 숙모의 집이 대출금때문에 차압당할 위기에 몰리고...... 학업은 생업에 치여 엉망이다. 여기서 우리는 <샘 레이미> 감독이 이 영화의 2편에 도전한 이유를 읽는다. 그것은 <스파이더맨>이 존재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반(反)영웅적 특성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수퍼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를 접했다. <수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X-Man>등.... 그러나 이들 모두가 동일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을 보더라도 그가 정의의 사도역할을 자임하게 된것은 어린 시절 목격한 부모의 죽음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에게 개인적 원한으로 남아 정의의 구현과 개인적 복수의 기로에서 언제나 그를 흔든다. 그가 자신의 삶을 걱정할 필요없이 아주 부유한 상황임에도 언제나 밝지않고 음울한 분위기속에서 영화가 진전되는 것은 그의 이러한 존재적 특성때문이다. 즉 그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가 고통받는 잔인한 현실을 구출하고자 정의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화학공장에서 싸울때 조커(잭 니콜슨)의 손을 놓아버려서 그가 화학 용액의 탱크속에 빠지게 되는 장면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X-Man>들은 어떤가? 그들은 저주받은 태생들이다. 많은 인류가 그들과 섞여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우리를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하지만, 인류는 그들을 자신들과 구분짓고, 가두려 한다. 그런데 악의 무리 앞에 인류는 무력하다. 그리고 그 위협이 현존하는지조차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X-Man>들은 정의의 역할을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두려운 존재로 인류 앞에 남아있다. 이것이 2편까지 만들어진 이 영화의 공통된 결말이다.
<스파이더맨>의 피터도 시작이 독특하다. 그는 단지 자기가 가지게 된 능력이 좋다. 이것과 뭔가 거대한 인류 앞에 놓인 숙제와 연결시키지 못한다. 그는 돈을 벌기위해 격투기 경기장에 나서고 여기에 따라온 삼촌은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이것이 그가 악의 무리와 싸우게 된 이유이다. 몹시도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하게 된 외로운 싸움,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안 먹어도 사는 신도 아니요, 언제나 살 수 있는 불사조도 아니다. 거기다 사랑은 떠나가고..... 여기서 개인적 존재조건과 정의의 사명에서 줄타기하게된 그의 반(反)영웅적 존재조건이 도출된다.
그는 이제 그만둔다. 이점은 사뭇 <수퍼맨2>의 상황과도 기막히게 연결된다. 사랑 때문에 수퍼맨이라는 직업을 놓아버린 그. 그러나 이제 그의 삶은 평탄할까?
2.반(反)영웅에서 반(半)영웅으로-노출과 인간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자친구한테도 잘 보이려 애쓰고.... 이제 평범한 피터 파커로서의 삶은 성공할 것처럼 보인다. 여자친구의 마음은 움직이는 듯 하는데..... 솔직히 난 피터 파커의 개인적 조건을 생각한다면, 그는 공부 더 열심히 해서 대학교 졸업하고 우수한 과학자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그때까지 숙모가 살아계신다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그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험악한 삶의 조건을 생각해 본다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나 여기서 <샘 레이미> 감독은 전통적이면서도 기막힌 해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영웅은 스스로 영웅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인정한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부정적 언론의 공격으로 스파이더맨은 언제나 부정적 이미지가 붙어다니는 인물로 찍혀있다) 이것은 전통적 기법이다. 수퍼맨도 인류가 그를 찾았기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사랑이 필요했지만 더 큰 사랑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피터가 그의 사명으로 돌아오는 것은 상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작용한다. 바로 그의 여자친구이다. 이것은 헐리웃의 식상한 동기부여 방식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겠지만, 피터에겐 그렇지 않다. 이 영화를 관통해서 보여지는 것은(1편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메리제인>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이 정의의 사명보다 그에겐 더 큰 동기이다.
이와 함께 다른 영웅영화에서 시도된 적 없는 <샘 레이미>의 극적 전개가 이 영화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노출이다. 그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탈진해 쓰러지는데 모두 그의 얼굴을 본다. 그는 가면을 벗고 있었던 것이다. 신비의 초능력적 존재로 각인돼 있던 그는 이제 평범한 어린 청년으로 인식된다. 이제 그의 발은 땅에 닿았다. 나이 어린 미국의 한 청년이 정의의 사명으로 악당과 싸우며 마침내 탈진하여 지금 그들 앞에 쓰러져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진정한 영웅 만들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퍼 히어로가 아니라 인간적 영웅, 그야말로 반(半)영웅인 것이다. 이순간에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데, 언제나 구원의 대상이었던 보통 시민이 그를 구원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 성공여부를 떠나서..... 이것이 감독이 이 영화에서 나름 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영웅에 대한 철학이 아니었나 싶다. 그 성공 여부를 떠나서......
3.이루어질 것 같은 로맨스(?)-나는 올리브가 아니야
그런데 감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파이더맨>을 친구 해리(그린 고블린의 아들)에게도 보여주고, 악당 <오토박사>에게도 보여주고, 심지어 여자친구 <메리제인>에게도 보여준다. 이에 의한 효과는 모두 다르게 나타나는데, 해리에게 노출시킴으로써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서 스파이더맨이 바로 친구임을 알게되어 그의 복수의지를 희석시켜 버리고, 오토박사에게 노출시킴으로써 피터와 그가 나누었던 정감어린 지적 대화를 상기시켜 인간 본연의 지성을 회복하도록 돕고, 여자친구에게 노출시킴으로써 그녀가 정말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케 한다.
위에서 언급한 효과들은 이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심대한 의미를 지니고,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스파이더맨>의 반(反)영웅적 캐릭터를 다시금 회복시켜낸다. 즉 위의 3가지 일들은 모두 <스파이더맨>이 할 수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해리에게 "네 아버지가 악당이었으니 죽어야 했다"라는 말을 <스파이더맨>이 백날한들 무슨 소용이며, 오토박사가 저지른 과학 실험의 위협도 어차피 <스파이더맨>이 막을 숭 없는 것이며, 메리제인의 사랑도 스파이더맨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을 원한 것은 피터이지, 스파이더맨이 아니기에. 그렇기게 피터는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켜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이것은 <샘 레이미> 감독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의미있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 피터와 반(半)영웅으로서의 <스파이더맨>을 등치시켜 인간화에 성공하였기에......
이 영화에서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후반부의 극적 노출을 보더라도 매우 큰 의미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수퍼 히어로를 다루는 영화에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그려졌다. 특히 <수퍼맨>이 그랬고-여주인공은 수퍼맨이 클라크 캔트인 것을 알지만 나중에 수퍼맨에 의해 기억이 지워진다- <배트맨>도 언제나 그 영화만을 위한 1회성 사랑이었다. 위기가 끝나고 나면 사랑이 끝났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은 1,2편에 걸쳐 한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며 경쟁 상대고 없고, 남/녀 모두 서로를 지극히 위한다. 즉 매우 인간적인 상황속에서 사랑이 전개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녀의 사랑은 좀 혼란스럽다. 그녀는 키스를 통해서 피터가 <스파이더맨>인 것을 알아내려 한다. 어쩌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피터와 <스파이더맨>을 등치시키려 했는지도 모르고, 이것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복선인지도 모른다.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그녀가 실제로 원했던 것은 인간 피터가 아니었고, 피터와 스파이더맨 그 모두였는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굳히게 한다. 이 혼란스러움은 3편에서 해결될 수 있을까?
그녀는 피터를 지켜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1,2편 공히 그를 가장 고생시킨 것이 그녀였던 것을 생각하면 사랑에 대한 그녀의 욕심은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은 나만의 편견인지?
**그건 그렇고 왜 나와 같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1편이든 2편이든) 하나같이 여주인공 메리제인 역에 커스틴 던스트가 캐스팅된 것에 대해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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