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불명]을 본 후 누군가 그러더군요. 변했다고요. 약해졌다고 요.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했다고요. 그의 전작들을 생각해보면 틀 린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수취인불 명]이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앞서 영화들이 형이상학적이고 괴이 한 추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너무나 잘 보여서 오히려 더 섬뜩한 느낌이었거든요. 화면으로 드러난 잔인함보다도 내용 속에 보여진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과 희망이 없는 인생의 굴레에 좌절감 마저 들더군요. 이번 영화 역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가는 또 하나의 단계이겠지만........
1. 눈 눈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건 잠깐이었지 만, 그 기간동안 원근감이 어긋나서 엄청 고생을 했었거든요. 조심 해서 돌아다니던 것마저 두어번 계단에서 엎어지고 나서는 꼼짝도 하기 싫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 미인지 그때 처음 알았죠. 은옥은 오빠 때문에 한쪽 눈에 백태가 꼈고, 창국은 엄마 때문에 혼혈아로 태어났으며, 지흠은 너무 엄격 한 아버지 때문에 소극적인 성격입니다. 가족에게서 마저도 자신의 자리를 못 찾은 이들에게 인생은 고난입니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한 그들이 또 다른 이에게 상처 입히는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 속에서 한 쪽 눈을 다친 세 아이가 나란히 길을 가던 장면은 바로 그런 그들의 방어적이고 상처입은 삶은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2. 불 현대에 와서 불은 파괴의 의미를 더 많이 보여주지만, 사실 불은 신성시되는 존재였습니다. 종교나 신화에서 악귀를 쫓고,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는 성스러운 것이었죠. [수취인불명]에서 얼어붙은 들판 속에서 창국을 꺼내기 위해 동그랗게 지르던 불은 흙을 녹이 귀 한 것뿐만이 아니라 불은 바로 그런 정화의 불꽃이었습니다. 그 가 떠나기 전에 어머니에게 남겨진 집착의 흔적인 문신을 없애고 떠난 것처럼 자신의 잘못임에도 창국을 부단히 괴롭혔던 사람들 질 시의 흔적을 깨끗이 자기 속으로 불러들인 다음 불을 지르던 그 모 습은 그런 정화의식의 마지막 단계였던 것입니다. 지흠의 집 앞에 서 나온 인민군의 유골이 화장되어지는 것처럼요. 자신의 죄보다도 사회와 타인의 죄를 더 크게 짊어지고 떠나는 순교의 의미인가요.
3. 편지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쓰는 편지는 무척이나 슬 픈 행위입니다. 편지를 쓰는 이유가 희망 때문이 아니라 좌절하지 않기 위한 최후의 지푸라기일 땐 최악이죠. 답장이 오기 전까지 일 방적으로 보내는 편지는 종이조각일 뿐이니까요.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오는 편지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붙이는 창국이네 엄 마의 행동 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쓸 시 간에 혼혈아로써 창국이 받는 상처에 더 신경을 썼다면 아마도 창 국에게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본인은 아들을 위해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처 만을 생각한 위로의 몸짓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다 늦어버린 뒤에 온 답장은 차라리 수취인불명보다도 더 못한 것이죠.
너무 읽히고자 한 구석이 좀 아쉽긴 했지만, 나름대로 “아~ 김기 덕표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글자로 구성된 이름이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어떠한 이미지를 가진다는 건 상당히 재미있 는 일입니다. 그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표현되던 벌써 그만큼의 위 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그런 면에서 김기덕이란 세 글 자의 이름은 이제 우리 영화계의 어떤 독특한 의미로 자리매김했습 니다. 누군가에겐 엽기적인 이야기를 하는 광인으로, 다른 누군가 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 세계를 가진 독특한 작가로 말입니다. 저 에게 그는요? 글쎄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