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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철안에서 한 남자가 얘기를 시작했다
그 사내는 ‘건강’에 관해서 작게 소근거리듯 말했다
참으려 했지만 그의 진부한 얘기에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구토’를 일으켰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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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도우의 노트에서.
존 도우의 설교는, 충분히 작위적이다. 7가지 죄악에 대해서, 중세와 중세 말기 때에 주로 떠들썩했던 이유는, ‘전도’와 ‘설교’가 목적이었다. 유일한 이성인 신 앞에서, 인간은 벌레만도 못한 존재여야 했기 때문이다. 존도 별 다를 것이 없다. 창 밖으로 격리 시키고, 가는 시간 대신, 멈춰있는 반복적인 메트로놈의 기계추를 찾게 만들어버리는, 윌리엄 서머셋의 세상관은, 존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존 도우의 ‘결벽’과 ‘설교’는, 추악하고 무기력해져만 가는 세상에 대한, 자신에의 방어기제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설교를 하는지, 그것이 7가지 대죄악인지는, 별 상관이 없다. 다만, 존 도우라는 존재가 중요할 뿐이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어설프고 저열한 이기심은, 사회에 대해 무기력한 태도를 갖게 하는, 하나의 건강한 마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짓거 집어던지자. 메트로놈도, 수천권의 노트도. 대신, 잘 보이는 안경과 가죽장갑이면, 만사 OK이다. 맘에 안들어? 어때, 한 판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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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서머셋과 도우, 이 둘은, 세상에 대한 같은 시각임에도, 그래서 하나의 결벽증적인 자세를 공통으로 가지려 함에도 불구하고, 적극과 소극이라는, 자세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대신에, 이 때문에 둘이 대칭의 구조와 갈등을 만들고 있고, 밀즈가 그 사이에서 요동하는 존재,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밀즈와 도우의, 경찰과 범죄자라는 표면적 갈등구조를 기본으로 가지면서, 서머셋이라는 3자의 시각을 따로 둡니다. 그리고 이 시각은, 곧, 관객이 동화하여, 밀즈와 도우의 진부한 싸움을, 한발자국 뒤에서 보게 해주는 동시에, 밀즈 그리고 도우와 근본적인 갈등을 각각 가지게 됩니다. 밀즈는, ‘당신도 여기의 일부이면서, 세상이 추악하다라는 시각을 애써 가지고, “도피”하려 하는가?’라고 말하고 있고, 도우는, ‘우리가 같이 바라보고 있는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서, 당신은 왜 이리도 “소극적”인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갈등의 발생과 해결이, 영화의 중심입니다. 종국에는, 서머셋이, 세상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올바른 시각을, 유지한 채, ‘주위에 머물고’ 싸움의 자세를 취하게 됨으로서,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가집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나죠.
이러한 3자 서머셋의 시각은, 단순히 미친놈의 연쇄살인으로 치부하는 밀즈의 결론과는 달리, 그 가운데서 ‘설교’를 읽어내고, ‘7가지 대죄악’을 찾아내죠. 이러한 태도는, 무작정 열혈로만 이 사건을 대하려는 밀즈에 대한 갈등의 자세를 또한 일궈냅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도우에 대한 서머셋의 ‘수사’, 그리고 ‘이해’가 가능했던 건, 이 둘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상에 대한 ‘결벽증’적인 대처인 것은 똑같습니다. 도우의 구토와 연쇄살인, 서머셋의 침실과 메트로놈, 잭나이프와 다트는, 다시말해, 수위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대처라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서머셋이 세상에 대한 싸움의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동기는, 도우를 동기로 한 반성이라기 보다는, 밀즈의 도우 살해입니다. 그 자체는, 밀즈의 파멸이지만, 서머셋에게는, 그 파멸을 이끌어낸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그것에 대한 인간적인 희망이, 서머셋의 싸움에의, 중요한 자극이 되는 셈이죠. 도우에 대한 서머셋의 비판은, 2구의 남은 시체를 찾으러 가는 도중에, 서머셋이 도우에게 하는 질문에서, 그의 살인을 통한 쾌락을 짚어냄과 동시에, 그의 선교자적인 자세를 와해시켜 버림으로서 드러납니다. 도우가 그 쾌락을 부정하지는 않았거든요. 결국은, 도우에 대해서, 초반에는, 일부 동조의 자세를 취하다가, 나중에는, 그 ‘극단성’과, ‘모순성’, 동시에, 살인귀로서 느끼는 ‘쾌락’을 읽어냄으로서, 나름의 ‘비판’의 자세를 취합니다. 도우를 통해서 자신의 ‘소극’에 대한 반성은 갖긴 하지만, 그 후의 ‘위치’와 ‘구심’은, 밀즈에게서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지는 거야’라는, 밀즈에 대한 ‘비판’ 또한 가지게 됩니다. 다시말해, 서머셋이 마지막에 갖게 되는 싸움의 자세는, 밀즈와 도우라는, 두 극단의 자세에 대한, 비판적인 결론이기도 합니다.
어쨌든간, 서머셋의, 마지막을 제외한, 그의 시각은, 곧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각이며, 동시에 저의 시각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나를 위해서’라는, 현시대에서 하나의 미덕이 되어가고 있지만, 저열한 이기심일 뿐이며, 소시민의 변명일 뿐인, 지금의 사회가 요구하는 자세에 대한 비판이, 또한, 이 개인적인 글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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