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를 보면서..한가지..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기억(memory)이란 것이 결코 사실(fact)은 아니라는 것..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기억이란..외부로부터 입력된 정보를 나름대로 인코팅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끄집어 내는 일종의 두뇌활동이다..
그런데..이 기억이란 것이 저장될 때..늘 사실 그대로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각색해서 자기 감정과 경험을 통해 일단 한번 필터링이 된 후 저장되는 것이다.. 이때..슬픈 일은 때론 더욱 슬프게..기쁜 일은 더욱 기쁘게 과장되어서 기억되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끔..추억은 아름답다란 말이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모두 기억한다면 아마도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결국 우리의 기억이란 것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질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다룬 영화들은 많았다..우리 나라 영화로는.. <오 수정>이란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된다..
<메멘토>는 바로 이 기억의 부조리를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단기기억손실이란 병은 인간의 기억메카니즘에서 STM(Short-term-memory)에 이상이 생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STM(Short-term-memoy)은 외부정보의 임시저장소인 셈이다. 컴퓨터로 얘기하면..RAM이라고나 할까..여기에는..쉽게 적었다 쉽게 꺼낼 수 있는 일시적인 기억들이 저장되다 보니.. 많은 양을 저장하지 못하고..어느정도 용량이 차면..폐기하거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같은 역할을 하는 LTM(Long-term-memory)로 정보를 이전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기억력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STM이 아니라.. LTM이 발달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STM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7-9개의 아이템이 등록될 수 있다고 한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니의 단기기억손실은 결국..심리적인 요인이나 신체적인 요인으로 인해 STM에서 LTM으로 정보가 이전이 안되는 경우인 것이다..
레니는 결국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잃고 문신과 메모..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보조장지츨 이용하게 된다. 언뜻 보면 이것은 사실 그대로를 변형시키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인 듯하다.. 하지만..이것 역시..사실을 있는 그대로 저장할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은 사실이라고 믿고 기록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감정의 지배를 받는 윤색된 사실일 뿐이다..
영화의 끝..아니..이 영화스토리의 출발은 바로 이렇게 조작된..아니..자시 스스로 만들어낸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시작된다..
만약 이영화가 보통의 영화처럼..시간을 역행하지 않고 순행하면서 스토리를 이어갔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아마도 특이한 주제이긴 하지만..관객을 2시간내내 집중시키기는 힘들었을것이다..
하지만..이영화는 시간역행이란 특이한 방법을 통해 스토리를 전개한다. 또하나..흑백으로 처리된 또 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설정하여 본래의 장면과의 교차편집을 통해..사건의 출발점이 되는 그 시점을 향해 과거와 현재에서 함께 접근해 가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 두개의 시간순행과 역행이 한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자기 스스로도 단기기억손실의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늘 원인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는 순행적인 스토리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결과를 보고 원인을 나중에서야 확인해가는 역행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단기기억..즉 STM을 시험해 보게 된다..
영화를 쉽게 아무생각 없이 보는 것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이런 감독의 연출에 조금은 짜증이 날 것이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집중해서 봐도..영화가 다 끝나고.. 일어날때는...여전히..뭐가 사실이고..뭐가 기억인지.. 헷갈리게끔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분석하면서 보기를 즐기는 매니아들에게는.. 정말 찬사를 받을 만한 영화다..
2001-8-16 (하이텔 필름스에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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