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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감독이 만든 여성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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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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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t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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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5 오전 1:3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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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험해진 만큼 영화도 험해진 탓에, 세 명의 여성들이 꽃섬을 찾아나서는 이 로드무비를 보는 동안 나는 내내 불안했다.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삶의 비극성을 폭로하는 가장 무난한 영화적 장치이며 남자가 구원되기 위한 피치 못할 수순이라고 생각하는 수컷감독들이 득세하는 요즘인지라, 이미 충분히 상처받은 가여운 여자들이 꽃섬을 찾아 가는 저 험한 길 어딘가에 강간범 같은 것이 숨어있 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매춘을 통해 계급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파란대문) 는 혁명적 발상을 설파하거나 인신매매가 경우에 따라선 여성의 사랑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나쁜남자)고 강변하는 수컷 한 마리를 작가이거나 거장 이라고 평가하는 영화판을 지켜보며 도대체 무슨 상상인들 못하랴?)
하지만 송일곤 감독은 남자가 휘두루는 폭력없이도 여자의 삶이 충분히 고난스럽 고 그런 남자와 물리적 대결없이도 여자의 삶이 위안받는, 이색적인(!) 영화를 보 여주고 있다. 설마 현실 또한 그러하다는 말까지 할 작정일까? 영화는 딱히 환상 이랄 수도 없지만 어딘지 현실감이 부족한 공간 속에 세 명의 여자를 배치하곤 그 곁으로 여러 명의 남자들을 지나가게 한다. (그들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 두 남자들이다.) 그 남자들은 영화내내 단 한번도 성적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으 며 심지어 트랜스젠더로 추정되는 남자(?)까지 등장한다. 옥남의 매춘행위에도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하던 옥남의 남편과 그 트랜스젠더가 1인2역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영화는 이렇게 철저히 남성의 흔적을 영화에서 없앤 채 진행되는 것이 다. 혜나의 사산된 아기의 아버지가 어떤 남자인지는 애시당초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고, 영화에서 유일하게 성욕을 드러내던 그 노인네는 영화 초장부터 옥남 의 배위에서 복상사하며, 마누라를 상습구타하던 알콜중독자는 거세된 시체로 영 화에 등장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無性化된 영화적 공간에서 그 렇다고 그녀들이 자신의 여성성을 맘껏 향유하는 것도 아니다. 극중 혜나와 옥남 은 페미니스트들의 분노를 자극할 만한 종류의 고통을 받으며 등장하고 또 영화 내내 그 상처를 치유한다. 하지만 그 치유는 "여성의 연대"(프라이드 그린 토마 토)같은 정치적 자각이나 "모성의 회복 혹은 확대"(내 어머니의 모든 것)라는 생 물학적 자각이 아니라, 최면동안 흘린 뜬금없는 눈물과 유진의 죽음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이런 결말을 안이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어디까지나 예술적인 거라 고 해야할지 감이 안 서지만, 그 덕분에 남자들도 자책감이나 性的 괴리감없이 마지막 씬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性이 제거된 영화적 공간에선 母性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기가 낳은 아이를 변기에다 버린다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어머니가 되기를 포.기.한 혜나는 어 쩐일인지 어머니를 찾아 나서고, (매춘이라는) 가장 어머니스럽지 못한 방법으 로 좋은 어머니가 되고자 했던 옥남은 그 결과 어머니가 될 자격을 박.탈.당한 다.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닌 두 여자. 영화는 혜나의 친엄마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설정으로 혜나를 母性의 영역에 발디디지 못하게 하지만 그것은 징벌의 의미가 아니다. 혜나가 영아살해의 죄책감을 벗어나는데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 母性 을 갖지 않는 것이라면, 혜나가 친엄마를 만나지 못한 것은 오히려 그녀가 치유 되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한편 딸과 떨어져 있게 된 옥남은 딱히 딸이 그립 다는 기색도 아니고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님에 괴로워 하지도 않는 듯 보인다. 대신 그녀는 딸 대신 일행들을 안아주고 머리빗겨 주며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고, 동시에 어머니의 이미지와 양립하기 힘든 천진함과 순수함이라는 그녀의 본성이 더욱 광채를 얻은 것이다. 송일곤의 단편 "소풍"도 어린 자식을 죽여야하는 어머니 의 갈등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관련된 부분이 있지만 그의 영화라곤 본 게 둘뿐이어서 母性 혹은 여성성에 대한 감독의 심중을 알기 힘들다. 하지만 그가 예 컨대 페드로 알모도바르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여성성에 경 도된 이 게이 감독과는 달리, 송일곤은 그가 남자이기 때문에 母性愛나 여성성에 함몰되지 않고 단호한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때문 에 그의 영화는 예컨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걸출한 영화에서 느끼게 되 는 진한 감동과 고양된 감정을 얻기는 힘들지만 외국 어느 평자의 말처럼 '여성 을 다룬 가장 파워풀하고 스트롱한 영화'라는 말은 들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베니스영화제 같은 졸린 소리와 달리 이 영화 의외로 재밌고 동시에 묘한 감동 을 준다. 특히 옥남역을 맡은 서주희씨의 연기가 뛰어난데, 마치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베쓰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디지털 카메라가 잡아내 는 순간적인 표정의 변화와 미세한 떨림은 디지털 카메라로 35mm의 영상과는 다 른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하던 도그마선언에 전적으로 수긍하게 만든 다. 한편 유진역을 맡은 임유진이란 배우는 상당한 미인인데다 굉장히 엘레강 스하게 생겨서 보는 남정네를 기쁘게 한다. 많은 조연들도 한결같이 뛰어난 연 기를 보여주고 있고 특히 어어부밴드와 볼빨간이 떠돌이 밴드로 출연하기도 했다. (2002.1.22)
http://cocteau.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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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2001, Flower Island)
제작사 : 씨앤필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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