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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t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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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5 오전 1:3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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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균동의 <미인>과 비교해보면 이 에로영화가 갖춘 장점들을 쉽게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미인>의 히로인 이지현은 아름다운 몸매와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를 가진 매력적인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대사처리가 마치 구연동화를 읽는 듯 했지요. 같이 출연한 오지호란 남자배우는 순정만화 주인공같은 로맨틱한 얼굴에 최소한의 근육만으로 이루어진 미끈한 몸매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영화 내내 우울하면서도 어딘지 초월적인 분위기의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엑스터시의 순간에도 한줌의 호흡도 흐트러뜨리지 않는 오지호를 보고 있으면, 혹시 저 남자, 게이가 아닐까 의심스러웠습니다. 반면 <맛있는 섹스...>의 두 주인공은 현실감있는 캐릭터들입니다. 봉만대표 에로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사실감 넘치는 대사와 리얼한 사운드라고 하지요. 이 영화의 섹스씬 역시 그런 미덕과 함께 마치 옆에서 훔쳐보는 듯한 감질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김서형이라는 배우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탐욕스럽게 자신의 나신을 훑어대는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의 성욕을 자유로이 향유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는 당당한 여성상이 창조될 수 있었던 것은, 김서형이라는 배우의 저 당돌하고도 자신만만한 표정과 몸짓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주 이쁜 몸매입니다.
제가 본 봉만대 영화는 <스파링 파트너> 뿐입니다. 봉만대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봤는데, 뭐 이런 신기한 에로영화가 다 있나 싶었지요. 하지만 현란한 카메라웤과 리얼한 연기로 빛나는 전반부와 달리, 그 영화의 결말은 영화 형식의 참신함을 무색하게 할만큼 불쾌하거나 진부했습니다. 형부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처제가 강간을 당한 후 어딘가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나버렸거든요. <스파링 파트너>만 가지고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평가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봉만대 에로영화가 굉장히 전복적인 섹스관이나 애정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그런 봉만대가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더니 아주 전형적인 멜로영화의 관습을 따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구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멜로영화의 관습을 적극 차용하고서도 이렇게 야하게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이 영화의 가치가 확보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지독하게 감상적인 멜로영화를 찍어대던 곽지균이 만든 <청춘>이란 에로영화와 에로영화 전문 감독이었다가 이제 처음 스토리가 있는 멜로영화를 찍은 봉만대의 <맛있는 섹스...>는 얼마나 다른 모양새인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여성분들이 이 영화에 호의를 보였다고 들었습니다. 김서형이라는 캐릭터가 대한국민 미혼여성들의 섹스관- 실제의 반영이든 이상적 모델이든간에 - 을 얼마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김서형의 섹스관에는 약간 자기모순적인 면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평생 한남자와만 섹스를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는 섹스는 한 번에 한 남자하고만 한다, 즉 이 사람과 연애중일 때는 이 사람하고만 한다,는 것이 그녀의 섹스관입니다. 결국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섹스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녀가 성우와 처음 만난 날 바로 섹스를 했고, 당시 둘은 물론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섹스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 그녀에게 이번 케이스는 단지 예외적인 상황일 뿐인가요? 왜 그녀는 사랑은 섹스의 전제조건이라는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요? 그건 결국 낭만적 사랑이라는 환상의 덫에 한쪽발이 걸려버린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면서 섹스도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왜 꼭 사랑할 때만 섹스해야하냔 말이죠.
전 이 영화가 동시대 여성들의 섹스관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반영했다면 봉만대 감독의 혹은 동시대 남성들의 욕망이 투사된 섹스관이겠지요. 그것도 아주 유치한 욕망이. 사실 요즘 남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처녀'이기를 바란다든지, 그런 터무니없는 욕심까지 부리지는 않습니다. 여성들도 자신의 성욕을 나름대로 향유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거죠. 하지만 자신의 여자가 나 이전에 다른 남자랑 섹스를 했다는 건 감정적으로 게 받아들이기 힘들지요. 때문에 자기 여자의 예전 섹스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섹스한다, 한번에 한 명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극중 서형의 섹스관은 남자들이 요즘 여성들에게 바라는, 그녀들의 섹스관이길 바라는, 그런 섹스관인 것이지요.
한편 이 영화를 남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척 씁쓰레하고 서글픈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자들에겐 기본적으로 성욕이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극중 서형처럼 다른 뭔가에 부속되는 이차적인 욕망도 아닙니다. 성욕은 남성에게 거의 언제나 0순위인 것입니다. 섬세하고 사려깊은 감정은 성욕을 어떤 방식으로든 다.스.리.고. 나야 가능해집니다. 서형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섹스를 강요하는 성수의 모습은 물론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성욕은 때로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게 할만큼 압도적인 힘으로 남자의 머리를 하얗게 비우게 만듭니다. 3개월전에 헤어진 서형에게 구질구질하게도 "너를 갖고 싶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남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구질구질한지 몰라서 저런 소리하겠습니까? 노예의 삶이 불쌍하다면 성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마는 남자의 삶도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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