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젤 워싱턴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 <아웃 오브 타임(Out of Time)>은 범죄 스릴러의 구조를 띈 경찰 드라마다. 역시나 그는 드라마 속에서 사건해결의 구심적 역할인 경찰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덴젤 워싱턴의 기존 이미지인 정의롭고 반듯하며 지적이고 고집스러운 그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의존하는 단순한 형사 스릴러 영화의 명맥을 잇는 그저 그런 평범한 스릴러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 <아웃 오브 타임(Out of Time>은 예상처럼 그렇게 단순한 영화만은 아니다.
그가 맡은 경찰 매트는 이제까지 보아온 기존 경찰의 이미지(정의롭고, 도덕적이며, 청렴하며 반듯한-물론 비리경찰은 이것과 정 반대의 악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에서는 벗어난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느낌의 경찰이다.
성실한 모습으로 동네사람들의 신망과 신뢰를 받는 반듯한 모습의 그이지만 실상은 남편이 있는 여인 앤과 내연의 관계에 있으며 한편 조강지처인 아내와는 이혼수속중인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이 조금은 상반되는 이중적인 면이 있는 경찰이다.
남편에게 늘 맞고 지내는 불행한 여인 앤, 매력적이고 불쌍한 여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이다. 그러던 중 그녀를 더욱 불행해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건 그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청천벽력 같은 암선고다. 사랑하는 여인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을, 그런 그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한 남자는, 얼마 남지 않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던 미련한 남자는 그녀를 위해 경찰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위험한 도박(?)을 한다. 그 도박이 앞으로 발생된 사건에 어떠한 족쇄로 작용될지 나름대로 올바른 그에게 어떠한 위기를 안겨줄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영화는 표면적으로 이제까지 보아왔던 팜므파탈(악녀가 남자를 속이고 궁지에 몰아가는)을 근간으로 하는 스릴러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힘없고 순진해서 늘 당하고만 사는 줄 알았던 여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남성이 그녀를 측은히 생각한 죄(?)때문에 계속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고 사면초과의 상황으로 빠져 결국엔 파탄에 빠질 것만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영락없는 팜므파탈 영화다. 더구나 그의 숨통을 죄어오는 사람들이 자신과 내연의 관계이었거나 부부였던 앤(불륜 녀)과 알렉스(전처)이고 보면 이 남자 여자 때문에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사건 전체(발단과 꼬임)를 매트에게 짊어 지웠듯 사건해결의 전권을 그에게 위임하면서 팜므파탈적 분위기를 타파한다. 선한 의도였고 비리를 저지를 생각도 없는 그였지만 결과적으로 발생된 사건의 한 가운데에 노출되어 있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고 거기에 비리경찰의 낙인이 찍히게 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그.
하지만 영화의 재미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범인으로 지목되고 의심될 수밖에 없는 정황의 한 가운데 있는 그, 자신의 무고함을 밝힐 증거를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기 전까진 그 증거들이 경찰에게 드러나는 것을 감추어야 하는 긴박한 상황, 여기에 그가 저지른 비리까지 덫붙여져 FBI에 추궁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곁들여지며 경찰 매트는 여지까지 쌓아온 모든 명망이 무너짐과 동시에 범법자로 비리경찰로 낙인 찍혀버릴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에 빠지게 된다. 순간적인 연민과 안일한 행동 때문에 자승자박적 곤경에 빠진 매트, 자신이 만든 상황이기에 자신이 되돌려 놓아야만 자신이 온전해 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 그에게 놓인 상황하나하나가 그에겐 힘겹고 고생스러워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그가 빠진 이 사면초과의 상황이 힘겨워지면 힘겨워질수록, 긴박하면 긴박해질수록 입장이 곤란해지고 난관에 봉착할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영화보는 재미가 솔솔 느껴져 영화에 점점 집중하게 된다.
더욱이 한치 앞을 모르는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도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도 거기다 사건을 초래한 사람도 역시 매트라는 아주 단순한 구조인데도 영화는 묘한 복잡성을 띠며 사건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한다. 선하지만 한편 선하지 않은 주인공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선한 편이던 선하지 않은 편이던) 등장인물을 상대로 힘겹게 싸워야 하는 형국에 빠진 영화 속 매트의 상황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불쌍하고 안쓰럽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재미 역시 그것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이런 상황의 중심에 그와 관계가 있었던 두 여인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우선 그가 이런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한 당사자이자 그의 불륜 녀 앤. 한없이 약하고 불쌍하기만 했던 그녀의 정체는 그를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으로 몰게 만든 악녀이다. 앤과는 반대로 매트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가는 형사 알렉스. 하지만 그녀는 그와 분명 같은 편이고 함께 수사를 하는 동료인데도 아이러니하게 매트를 범인으로 몰 불리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내는 장본인으로 그에게 힘겹고 긴박한 상황을 선사하는 장본인이다. 그녀가 그것을 원하였던 원치 않았던 말이다.
어찌되었던 그가 현재 또는 과거에 사랑했었던 여성들 때문에 사건의 중심에 놓이고 또 그 안에 철저히 고립되어 홀로 힘겹게 고분 분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형국이 기존의 스릴러와는 차별된 재미를 선사한다.
팜므파탈에 의해 철저히 파멸해가는 남성의 모습에 부패한 경찰이 경찰 내에서 벌인 사건을 수사해가는 과정을 담은 긴장감 넘치는 범죄 스릴러의 분위기를 묘하게 결합하여 실제로는 부패하지 않았으나 도덕적으로 부패한 덕분에 곤경에 처하게 된 선(?)한 경찰의 좌충우돌 상황 극복 기를 담은 영화 <아웃 오브 타임(Out of Time)> ‘시간이 없다’라는 제목이 주는 뉘앙스에 충실하듯 시종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으로 스릴러가 줄 수 있는 독특하고 색다른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물론 이 영화가 장점만 있고 단점이 아주 없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스릴러와는 거리가 먼 듯 끈적거리는 남녀의 요상한 모습으로 시작, 멜로적인 느낌은 지나치게 길게 보여는 초반 때문에 초반부터 영화가 느슨한 느낌을 주는 것이나 주인공이 곤경에 빠지는 사건이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평범하다는 점, 그리고 범인들이 살아서 나중에 주인공을 협박할 것이라는 것 등 영화는 스릴러의 구조가 주었던 참신함에 반해 사건의 진행이 지나치게 평범하게 진행됨으로 영화가 가진 독특함을 빛 바래게 하는 요소들이 몇몇 존재한다. 극으로만 치달아 더 이상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주인공의 상황이, 마지막 범인과 대치가 조금은 허무하고 싱겁게 충분히 예상 가능한 뻔한 마무리로 식상함을 주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물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관점의 차이 때문에 이 영화는 식상하고 평범한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색다른 느낌의 독특한 스릴러라는 상반된 평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가 지닌 구조의 독특함이나 주인공에게 놓여진 삼중고 때문에 얽히고 설켜버린 상황이 만들어내는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상황 전개를 중심으로 영화를 관람한다면 실제로는 평범한 내용의 스릴러이고 식상한 사건의 전개이지만 영화가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감 때문에 흥미진진한 상황 때문에 몰입되고 집중되어서 영화가 주는 모든 단점을 잃어버리고 장점이 부각되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볼만한 색다른 스릴러로 영화로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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