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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명장도 질 때가 있다 헌티드
emptywall 2004-03-10 오후 12:53:52 1343   [9]


1. 기억을 들춰내며

80년대 중반쯤에 도사견 키우기가 유행이었습니다. 이 이상현상이 특정지역에 국한된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저희 동네에서는 대단한 유행이었죠. 일종의 재테크 수단으로 2~3만원짜리 강아지를 사다가 수개월을 잘 키우면 어린아이 한명쯤은 거뜬히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커져 기십만원은 거뜬히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상회때마다 누구누구네는 도사견을 얼마에 팔았더라 하는 것이 주요 화제였죠. 저희 집에도 유행에 발 맞춰 강아지 한 마리를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잘 키워 우리 형제 육성회비와 우유값이라도 보태볼 심산으로 부모님께서 내리신 결단이었죠. 우리 가족 막내라서 붙여진 이름 ‘끝순이’. 이 놈은 도사견의 혈통을 이어받아서 그런지 잔병치레 한번 없이 쑥쑥 자랐습니다. 소가 한번 핣으면 얼굴 가죽이 다 벗겨진다고 어른들이 그러셨던가요. 끝순이도 어찌나 기운이 센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라 치면 꼬리에 맞아 밥주던 어머니의 팔뚝이 시퍼렇게 멍이 들곤 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이루말할 수 없이 순한 양이자 집을 수호하는 든든한 파수꾼이었던 끝순이. 그러나..


86년 아시아게임에 이어, 88년 서울 올림픽까지. 축제의 현장을 찾아 외국인들이 대한민국 서울땅을 앞다투어  밟던 그때. 한집건너 키우고 있던 도사견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광견병에 걸린 도사견에 물려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도사견은 충견이 아니라 공수병을 퍼뜨리는 악의 근원으로 인식되어버리더군요. 당연히 이어진 ‘개값 폭락!’ ... 그랬습니다. 결국 통장님의 권유대로 끝순이는 개장수에게 단돈 일만원이라는 헐값에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하며 스무평 우리 집을 지켜주던 끝순이의 최후는 개소주였던 것입니다..


2. 영화 속으로

<헌티드>는 창세기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합니다. “여호와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라는 말로 말이죠. (이 구절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마치 ‘통장님 가라사대 네 강아지 끝순이를 내가 지시하는 한 개장수에게 개소주 감으로 넘기거라..’라는 말로 들렸거든요..) 이 문장은 <헌티드>의 모티브이자 핵심 주제입니다. (자신이 믿는) 선을 위해 내가 낳은 자식을 스스로 죽여야만 하는 아브라함의 심적 갈등은 한때 자신이 훈육했던 최고의 요원 [애론-베니치오 델 토로]이 살인마가 되버리자 처단하기 위해 나서는 퇴역장교 [엘티- 토미 리 존스]의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특수부대의 요원인 [애론]은 [엘티]에게서 백병전과 요인 암살에 대한 기술을 전수받습니다. 유독 빼어난 솜씨를 보이던 [애론]은 1999년 코소보의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은성 훈장을 받고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터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면서 인성이 이미 파괴된 상태였죠.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당하는 광경, 포탄의 피격으로 인해 시체마저 수습할 수 없는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최고의 요원은 살인마로 변모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전쟁터에 나가 인격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애론]은 총을 든 사람은 적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존재로 인식한 채 잔인하게 살인을 일삼고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엘티]는 자신이 뿌린 씨앗을 거두기 위해 그와 대결합니다.


이런 설정은 전작인 <프렌치 커넥션>, <엑소시스트>등으로 거장의 풍모를 보여준 바 있는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의 시선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프렌치 커넥션>에서 보여줬던 사회비판적인 시각과 <엑소시스트>에서의 선과 악의 아슬아슬한 경계, 그리고 악이 선보다 강성할 때 느끼는 선한자의 고뇌 등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전작들과 달리 <헌티드>는 액션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이라 믿었던 것에 대해 회의가 생기며 악의 화신이 되는 [애론]과 선의 상징인 [엘티]의 대비는 분명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영화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액션 장르에 선과 악의 대립을 녹여내 보고자 하는 시도는 평균을 밑도는 범작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자로 잰 듯한 들어맞는 액션의 합은 인상적이지만 너무 인공적인 티가 나더군요. 그래서인지 [애론]과 [엘티]의 싸움에서는 박진감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싸움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당연히 느껴져야 할 쾌감은 ‘싸우다 도망, 다시 싸우다 도망’을 반복하는 가운데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맥이 뚝뚝 끊어져버리는 판국에 몰입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죠. 거기에 선과 악의 대비를 감독은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의 상징인 [엘티]는 하얀 눈과 밝은 햇빛이 충만한 숲, 물로 표현되고 반면 악의 상징인 [애론]은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의 극명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연에서 우러나오는 고뇌를 찾아보기엔 쉽지 않습니다.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의 전작들에서 보아왔던 심도있는 고찰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용장 밑에 약졸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분명 맞는 말인 듯 싶습니다. 아카데미가 인정한 감독의 휘하에서 멋진 연기를 펼친 베니치오 델 토로와 토미 리 존스의 모습을 보면 일견 수긍이 가지요. 그러나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점은 용장이라고 매번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졸이 있어도 전략이 형편없으면 필패한다는 것을 말이죠. 아카데미 수상자들이 모여 만든 영화라고 항상 걸작이 나오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아키>

http://cyworld.nate.com/emptywall


(총 2명 참여)
karamajov
통장님 가라사대 ㅋㅋ   
2007-01-24 12:51
karamajov
캐공감입니다. ㅎㅎ   
2007-01-2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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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티드(2003, The Hunted)
제작사 : Lakeshore Entertainment, Alphaville Films / 배급사 : 튜브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몽타쥬 엔터테인먼트 / 공식홈페이지 : http://www.hunt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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