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50대 이상의 중년 남녀가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는 거기에 20,30대의 청년들과 함께 공연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지나치게 교육적이거나 불륜을 소재로 하는 양극단의 내용을 담은 드라마일 공산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의 단맛쓴맛을 모두 보아버린, 힘겹고 복잡한 현실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관록과 경험에서 온 삶의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 그들과 풋풋한 신선함과 젊은 혈기로 무장한 신세들이 함께 공연하는 드라마에는 대체로 세대의 차이 때문에 화합하지 못하는 그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거나 방황하는 젊은 사람과 연륜이 많은 어떤 사람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화합하는 내용을 다루는 교훈적인 내용이거나 이와는 정 반대로 사회적으로 파장을 줄만한 그러니까 지나치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이들의 관계나 불륜을 다룬 내용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런 오래(?)된 배우들과 젊은 사람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자칫 심각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주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은 기존의 선입견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50대 여성과 60대 아저씨가 각각 30대와 20대의 젊은 연인을 뒤로하고 만들어가는 아슬아슬하고 알콩달콩한, 경쾌하고 상큼한 느낌의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영화는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할 것도 없는 그래서 모든 것에 무덤덤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용기도 잃어버렸을 것 같은, 노년의 나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오래(?)된 나이의 주인공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었던 젊은 남녀 못지않은 불꽃같은 사랑의 열정(어쩌면 당연하지만 미쳐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20대 못지않은 여린 감성과 천진함을 간직하고 있는 깜찍한 노년의 경쾌하고 발랄한 사랑이야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을 첨가하여 신선하고 상큼하게 독특한 감각으로 이야기를 엮어 상상 밖의 재미를 던져준다. 물론 이 영화에도 다른 로맨틱 코미디처럼 예쁜 20대의 배우(아만다 피트)와 멋진 30대의 배우(키아누 리브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젊은 그들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뒷전이다. 그들보다 더 노련하고 깜찍한 중년의 배우들, 잭 니콜슨, 다이안 키튼,이 펼치는 아기자기하고 아슬아슬한 사랑이야기는 이 영화를 더욱 스릴 있게 하고 흥미진진하게 하며 재미있게 한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신선함은 젊은이들이 만들어가는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또 다른 색다름으로 20대의 젊은 남녀만큼의 상큼함과 로맨틱함을 유지하면서도 나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과 관록으로 덧붙여져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의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로 신선함과 새로움을 준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가능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런 나이에도 저런 로맨틱하고 상큼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놀라울 뿐이고 신기하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독특하게 엮인 등장인물들의 면면
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고 있는 다이안 키튼과 잭 니콜슨이 분하는 에리카와 해리 그리고 그들과 엮이는 남녀의 면면이 이채로우면서도 쿨하다.
20대의 딸이 있는 이혼녀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러나 남자와는 꽤 오랫동안 담을 쌓고 지낸 나름대로 쿨한 인생을 살고 있는 멋진 50대 여인 에리카, 그녀의 딸이자 성공한 경매사로 사랑에 자유분방한 여인 마리, 성공한 사업가이자 타고난 재기와 매력으로 60대가 넘은 나이임에도 독신을 고집, 여자사냥에 주력하며 방탕(?)한 삶을 즐기는 독신주의자 해리와 젊고 재능있는 의사이자 지적이고 매력적인 의사 줄리안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사각사랑은 영화에 묘한 긴장감과 재미를 형성하며 흥미를 더해준다. 딸, 아버지의 느낌이 드는 상당한 나이차이를 보이는 마리와 해리의 커플, 역시 만만치 않은 나이차이이지만 지적인 연상 여인 에리카에게 매력을 느끼는 로맨틱한 무드의 줄리안 커플로 형성된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의 커플들의 4각 관계는 화끈한 마린의 퇴진으로 자연스럽게 3각 관계를 형성하여 에리카와 해리로 완성될 것 같은 중년의 로맨스에 변수를 던져줌으로써 극의 흥미를 더해준다.
여기에 에리카의 동생이자 페미니스트 여성학 교수 조는 이들의 애정전선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관자이며 그들의 관계진작에도 전혀 상관이 없는 등장인물이지만 에리카와 해리의 심리를 정확하게 판단, 에리카와 해리를 내면을 자극하여 그들에게 잠재된 숨겨진 사랑이 발전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드라마에 숨겨진 보석이자 감초이다.
각각의 배우들이 조금은 거부감이 느껴질 법한 나이차이임에도 어울리고 멋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각 배역을 맡은 주연배우들이 나름의 배역을 잘 소화하고 제대로 몰입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감독의 시각이 살아있는 로맨틱 코미디
알려져 있다시피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의 연출자는 여성감독 낸시 마이어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여성의 심리와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하는 섬세한 심리드라마 같은 생각이 든다.
남성에게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어 남성과는 벽을 쌓고 십 수년을 지내온 성공한 이혼녀인 에리카, 하지만 늦게 다가온 사랑 앞에 허물어지듯 무너져 상처 받고 아파하는 천상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어쩌면 수많은 중년 여성의 대표격으로 보인다. 사랑에 실망하고 고통을 받아 그 고통을 이미 알고 있더라도 다가오는 사랑을 피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수하고 연약한 일면의 여성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다.
또한 젊은 여성만을 골라서 사귀는 철없는 60대 한량이자 독신남 해리, 사랑에 비관적인 그 이지만 우연히 만난 비슷한 연배의 여인에게서 대화의 소통을 느끼고 관계를 맺어 미묘한 느낌을 받지만 그것이 사랑인지조차도 알지 못하는 실제론 사랑에 잼병인 그. 그랬던 그가 사랑이라는 생경한 감정에 어쩔 줄 몰라 결국 사랑하는 여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을 후회하는 모습은 여성감독만이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감정연출이다.
또한 얼마만큼의 삶을 경험한 감독 자신의 경험과 약간의 관심을 토대로 결합하여 만든 색다른 중년의 로맨스는 기존의 그들 연배에서 익숙히 보았던 불륜이나 비정상적인 러브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큼, 발랄한 20대의 사랑 못지않은 열정과 뜨거운 감정이 절절이 녹아있는 색다른 러브 스토리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거기에 드라마의 주인공 에리카와 해리 조차도 생경한 늦깍이 사랑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고스란히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다이안 키튼과 잭 니콜슨은 이 드라마의 아기자기함을 더해주며 탄탄한 로맨틱 코미디로 완성되는 데 큰 구실을 하는 듬직함을 보여준다.
난 여지껏 로맨틱 코미디에는 젊은 남녀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가 들어가야 제 맛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같다. 나이가 들었건 젊었건 간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똑같을 것 일진데 그것에 설레이고 아파하는 감정은 똑같을 것이 당연했을 텐데 난 아름답고 예쁜 사랑은 젊은 남녀 사이에서 만 가능할 줄 알았다. 알콩달콩 로맨틱한 사랑은 싱싱하고 풋풋한 젊은 연인에게서만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는 나이가 든 사람들의 사랑도 젊은 사람의 그것만큼이나 강렬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살아온 연륜이나 경험 때문에 사랑에 소극적이고 그것 앞에서 신중하며 마음을 여는데 적극적일 수 없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도 사랑의 감정만은 잃어버릴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라는 것을 사랑에는 나이가 없음을 가르쳐준다.
물론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경쾌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조금 늘어지는 경향을 보여준다거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남녀가 극적으로 맺어지게 하기 위해 조금의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중년의 남녀가 만들어가는 알콩달콩 아름다운,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는, 진실한 사랑의 감성이 느껴지는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새로운 발견을 한 것 같이 새롭고 신선하다.
영화의 장르와 내용이 다양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중년 배우들은 젊은 배우들의 뒤 켠에서 주인공을 보조하는 조연 정도의 배역으로 가리워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중년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는 그들이 가진 원숙함이나 성숙된 연기력이 드라마를 주도하는 멋지고 매력적인, 아름다운 중년을 그린 드라마가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이런 발전 추세라면 그런 색다른 영화가 못 나올 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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