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통역되나요?]
낯선 거리, 과거와 미래가 조우하다
‘사랑도 통역되나요?’ 라는 영화를 보다 보면,
대화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깨닫게 된다.
마치 오랜 시간 침대에서 살을 비빈 사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마음을 진심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상대가 된다.
그래서 결국 대화를 해도 상대방의 말은 허공 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상대방은 그 의미를 전달받지 못한 채 다시 상대방을 무시한 후
그 서먹한 시간이 싫어 대화를 진행시키고
어차피 자신의 전달되지 못할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더욱더 더 안타까운 것은 서로가 그 진실을 모른 채 오랫동안 동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남자주인공은 타인의 기억 속에 잊어진 배우다.
이젠 삶의 환희로 넘쳐나는 젊은이들에게 한물 간 늙은 배우는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에서 위스키 광고나 찍게 된다.
그는 광고를 찍으면서도 대화의 단절을 느낀다.
상대방의 말이 통역사를 거치면 그가 듣는 것은 왜곡된 진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에게도 느끼는 것이다.
23년 동안 함께 지낸 아내는 자신의 말만 하고
정작 상대방의 마음의 혼란을 해결할 대화는 꺼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남자는 익숙한 가정에서도 고독했던 것처럼
낯선 거리 속의 외로움도 무덤덤하게 느낀다.
여자주인공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잊어진 젊은 존재다.
남편의 일 때문에 낯선 나라에 왔지만 나름대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그러나 팬티만 입은 채 낯선 나라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는
젊음의 희망이 새겨있기보다는 공허한 슬픔이 잔뜩 묻어 있다.
잠자는 남편을 살며시 깨워도 남편은 자신의 잠 속에 깨어나지 않듯
고독한 밤은 외로움과 알 수 없는 고통으로 뒤범벅되어 진다.
이젠 연인의 키스를 받아도 외롭다면 과연 여자는 행복한 걸까?
감독은 ‘사랑도 통역되나요?“ 를 통해 현대사회의 단절된 대화를 지적한다.
아무리 번화한 도시라 할지라도 과연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주는 자 없고,
아무리 익숙한 관계라도 상대방과 어긋난 대화를 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떻게 이 밀려오는 고독과 외로움을 해결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감독은 낯선 거리를 두 주인공에게 선사한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재해석하고
미래와 과거를 결합시키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사랑도 통역되나요?’를 살펴보면 낯선 거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 주는
두 남녀가 펼치는 무덤덤한 사랑이야기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바로 본인, 한 자아의 이야기다.
감독은 왜 젊음과 늙음을 선택했을까?
바로 그것은 한 존재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조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공통된 점은 현실에 대한 끝없는 외로움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지루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즉 여자의 목표 없는 방황은 목표를 달성했지만
이젠 내리막길에 다다른 남자의 방황과 결합하여
끊임없이 해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바로 여자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뻔한 미래를 만나고
남자는 여자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과거와 조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낯선 거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서로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대화하고 편안한 잠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보인 남자의 소리 없는 귓속말은
과거에 대한 종결이며 미래에 대한 전진이고
다시 말하면 사랑에 대한 희망의 암시일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항상 속옷을 입고 어머니 뱃속의 태아적 모양을 흉내 내며
아직 자신의 뚜렷한 길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닐까?
드디어 남자의 귓속말로 또 다른 탄생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바로 이젠 타인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말이다.
영화는 몹시 잘 만들어 졌다는 것은 인정한다.
가벼우면서도 적절한 무거움을 깊이 심어놓아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허무주의의 주름진 얼굴 속에 간간히 유모감각을 구사하는 남자 주인공은
골든 글러브상을 받을 만하다고 중얼거릴 만큼 연기를 잘하고
뭔가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눈물 흘리는 여자 주인공은
19살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뭔가 부족하다..
수많은 상을 받고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가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맹렬한 호기심과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의 흥미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타인을 향해
열렬한 찬사를 늘어뜨리고 싶은 영화는 아니다.
더욱이 일본여행 중 아이디어가 생각나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은
우리에게 식상한 동양적 풍경이기에 그리 낯설지도 않았고
배우들이 일본 도시에 있는 모습도 서울 한복판의 모습처럼 그저 그랬다.
하여튼 ‘존말코비치 되기’의 감독,스파이크 존즈이 남편이고
자신의 아버지가 코롤라이니 감독은 배운 만큼 본 만큼은
충분히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뿐
감동적인 생각은 들지 않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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