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개봉했던 우리영화 [선물] 포스터 기억하세요? 이정재와 이영애가 안고 있는 포스터 말고요. 초등학교 졸업사진 같은데 동그 라미가 쳐져있고 그 위 화살표가 되서는 ‘아내의 첫사랑을 찾습니 다.’라는 카피가 있던 포스터 기억하세요? 왠지 며칠 전에 일본영화 [첫사랑]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그 카피가 생각나더군요. 그렇다면, ‘엄마의 첫사랑을 찾습니다.’인가요?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 차분하고 성격의 어머니, 그런 부모님 밑 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외동딸.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어느 나 라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평범함 을 믿고 있었던 사토카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병이 무척이나 당황 스럽습니다. 언제나 셋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져 있던 사토카에게 아 버지와 단 둘이 지내야 하는 시간이 편하지는 않았을테니까요. ‘뭐.. 잠깐일꺼야...’라고 생각한 어머니의 병이 사실은 중병이라는 걸 알 게 되면서 식구들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오르골 속에서 사토카 나이 즈음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첫사랑이 찍은 사진 과 미처 부치지 못했던 마지막 편지를 찾아내면서 그녀의 모험 아닌 모험이 시작되죠.
전 처음에 사토카가 왜 그리도 어머니의 첫사랑에 몰두하는지 이해 가 안 갔습니다. 어머니에게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24년 전 헤어 진 연인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흥미를 느낀 것일까? 아니면 자신 의 전해지지 못한 첫사랑의 그림자를 어머니의 사진에서 본 걸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픈 어머니를 위한 단순한 위로? 영화가 흘 러감에 따라 전 이해했습니다. 왠지 자꾸만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병과 나날이 어두워지고 힘들어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서 더욱 불안했던 그녀에게 어머니의 첫사랑을 찾는 작업은 그런 불 안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만드는 작은 피난처였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되죠. 아이가 죽은 뒤 가정을 포기한 후지키의 잘못을 보면서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진다 하더라도 빈 공 간을 채우는 건 슬픔이 아니라 사랑의 기억이어야 한다는 것을요.
17살.... 그때 어디서 뭘 하고 누굴 만났는지 정확하게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요? 17살이면 고1? 이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기억 중에 이거다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게 없습니다. 사토카는 아마 저 같지 않겠죠? 그녀에겐 벚꽃이 피고 지는 봄이 오면 언제나 어 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의 첫사랑과 자신의 첫사랑. 그리고 그 짧은 봄 동안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될 테니까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가 면 잊혀지는 웃음의 기억이나 억지로라도 잊어야하는 슬픔의 기억보 다 사토카처럼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그 기억은 평생 지 워지지 않을 추억이니까요. 사토카가 태어나 최초로 사랑한 존재인 어머니와 어머니의 가장 마지막 사랑은 딸인 사토카였다는 사랑의 기억처럼요.
〈처음〉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있습니다. 그런 데에는 아 마도 그 단어 속에 설레임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죠. 누 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기 위해 계속 가지고 있다가...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결국은 못주고 손때에 새까맣게 절어버린 그 무엇인 가를 버린 적이 있으신가요? 기억이 있으시다면 아마도 설레임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영화 [첫사랑]의 감성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 요.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집에 가서 저처럼 이렇게 묻고 있을지 도 모르겠군요. “엄마, 엄마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