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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걸>[빙우] 아련한 감성의 산악멜로 빙우
mvgirl 2004-01-24 오전 8:28:47 1049   [3]
 

난 산을 다룬, 열정적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산악영화를 좋아한다. 그 영화의 작품적 완성도나 재미를 떠나, 산을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멀리서 보기엔 한없이 아름다움만을 간직한 듯한 산이지만 정작 다가가 올라설수록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거칠고 포악한 일면을 드러내는 자연의 위엄과 장대함을 가르쳐주는 산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그런 산을 동경하고 그곳에 오르는 것을 사랑하는, 그곳에서 닥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극기하고 또 성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산악영화를 사랑한다. 인간의지의 승리와 무한한 가능성, 또 산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자연 앞에 자만하지 말고 인내하고 극기하며 협동하라는)이 담긴 산악영화를 좋아하고 또 즐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되고 있다는 산악영화에 대한 소식은, 경이로운 산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또 산을 사랑하고 그 위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은, 그리고 위험하고 힘들 것 같은 그 모든 작업들이 섬세한 여성감독에 의해 진행되고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은 날 충분히 흥분하게 하고 들뜨게 하고 또 설레이게 했다. 산악영화에 멜로적 느낌을 가미하였다는 영화 <빙우(氷雨)>의 완성을 학수고대하게 되었다.

 

많은 설레임과 기대 속에 처음 접하게 된 영화 <빙우>.

영화 <빙우>는 기존에 헐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히 보아왔던 산사람들의 산에 대한 도전, 조난 그리고 구조의 과정을 다룬 전형적인 산악영화와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영화였다. 산에 대한 도전은 있었으나 정복과 성취를 위한 도전이 아니었으며 조난은 있었으나 그 상황을 극기하고 극복하는 데 초점을 둔 조난이 아니었다. 알래스카의 아시아크라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산에 얽힌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등반과 조난이라는 표면적인 내용은 기존의 영화들과는 비슷하지만 이 영화 속에 담겨있는 인물들에 얽혀있는 드라마는 산이 중심이 아닌 그들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멜로 영화적 성격을 띤다.

영화는 내가 산악영화에서 기대했었던 등반에 동반될 스릴이나 긴박함, 생사를 넘나드는 산과의 사투, 극적인 상황에서 보여지는 인간들 본연의 모습, 그것을 협동으로 극복하는 인간애를 담은 드라마가 아니라 산을 사랑하고 한 남자를 사랑했었던 또 여자를 해바라기 했던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같은 여자를 사랑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함께 등반 길에 오른 두 남자가 조난을 당하게 되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상황을 잊기 위해 서로에겐 상처로 남아있는 한 여인에 대한 기억이 교차되고 그들의 비극적 사랑의 엇갈림이 극적(?)으로 밝혀지는 과정이 험준한 산에 올라, 조난을 당하고 또 구조가 되는 상황에 보다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산악영화가 가져야 할 웅장하고 거대한 산의 위엄과 경외스러운 자연의 장관이 화면 가득 담겨져 있음에도 위험스런 등반에서 발생한 극한의 조난 상황이 있음에도 영화는 산악영화가 관객에게 주어야 할 긴박함이나 긴장, 스릴이라는 짜릿한 감정을 선사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지나치게 그들의 사랑얘기에 취해 비극적으로 얽혀있는 그들의 슬픈 관계에만 집중하고 빠져 그것을 설명하는 데에만 급급해진 영화는 산에 오른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지 자체를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본의 아니게 그들과 함께 산에 오른 동료들을 동료의 조난에 어떤 일도 하지 않는 비정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존재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런 영화의 흐름은 그들이 처한 조난의 상황이 어쩌면 등반에서부터 그들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작위적 장치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산악영화로서가 아닌 멜로 영화로서의 <빙우>는 꽤 정교하고 드라마틱하게 구성된 안타까움과 슬픔의 정서가 가득 느껴지는 감성적 멜로드라마임엔 틀림이 없다.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두 남자, 그 남자들의 회상을 통해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한 여자와 그들의 엇갈린 사랑, 위험에 빠진 현재의 두 남자들이 그들에게 아픔으로 남아있는 한 여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그 과정에서 같은 여자를 회상하고 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한 여인으로 인하여 사랑의 아픔을 경험해야 했고 그 여인에게 아픔을 선사해야만 했던 두 남자가 이룰 수 없었던 그 여인에 대한 공통적 회한을 나누게 되는 공간이,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의 감정이 교차되는 공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극한의 조난상황이라는 점이 극적이다.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간 연적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갈등하는 우성(송승헌 분)과 우성과 경민(김하늘 분)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잃은 상실감과 허망함에 삶의 의욕을 잃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중현(이성재 분)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산속의 얼음 동굴 속 공간은 공간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비정하고 절박하다.

아시아크로 등반하는 등반대의 출발과 산행 그리고 조난에 이르는 과정 사이사이에 겹쳐지는 중현과 경민, 경민과 우성의 만남과 사랑, 추억, 그리고 아픈 이별에 대한 추억을 들춰내는 섬세한 플래시 백의 연출은 상당히 효과적이고 시기 적절하다. 또한 그 에피소드들에서 느껴지는 아스라한 사랑과 회한의 감성은 섬세한 여성감독의 손길처럼 디테일하며 감동적이며 안타깝다.

특히 이 영화에서 중현으로 분하는 이성재의 연기는 여지까지 다른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성재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자상함과 섬세함이 묻어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을 간직한 그의 분위기는 뒤늦게 만난 사랑 때문에 고뇌하고 자신이 아픔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그 여인에 대한 죄스러움과 회한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의 슬픔을 간직한 외로운 남자의 모습은 그 모습을 보는 관객조차도 설레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영화 <빙우>는 많은 아쉬움과 단점이 보이는 극의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부족함이 많이 보이는 산악 멜로 영화이다. 그러나 난 그 모든 것들을 떠나 이 영화에 점수를 주고 싶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산악영화, 더구나 험난한 산이 배경이어서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작업여건과 그런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자연과 사투를 벌여 좋은 그림과 감정을 잡아낸 감독, 스탭이하 배우들의 정성과 노력 그리고 그들의 고생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화가 사랑스럽고 의미있다는 생각을 한다.

산악영화가 가져야 할 팽팽한 긴장과 스릴은 전혀 없지만, 영화 속 배경이 된 산의 의미조차 실종된 듯한 산악영화이지만, 배우들의 조난장면에서 사용되는 CG가 거슬리는 느낌을 받는 조금은 미숙한 듯한 영화이지만, 유부남과 절실한 사랑에 빠지는 경민의 에피소드가 설득력을 주기엔 부족하고, 경민, 우성, 중현의 삼각사랑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조연들은 모두 들러리가 되어버린 아쉬움이 남는 드라마가 되어버렸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담은 아름다운 설산의 장관과 광활함이 살아있는 멋진 화면이 있는, 차갑고 시린 산만큼 애절하고 아픈 사랑을 했던 주인공들의 애절한 이야기를 적절한 플래쉬 백 연출을 통해 안타까운 멜로적 감성을 적절하게 담아낸,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순백 설산의 이미지와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애절한 사랑의 이미지가 교묘히 결합된 영화의 내용은 용서와 화해, 사랑의 메시지로 거듭나는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깨끗함으로 아름다움으로 감정이 정 화됨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산악영화를 좋아하는 나 개인의 취향 때문에, 산이 주는 광활함에 압도되어, 극이 보여주는 불온하지만 애절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좋아서 이 영화를 좋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 영화의 장점인 멜로적 감성과 멋진 장관을 담은 화면을 중심으로 영화를 본다면 영화에서 느낄 단점을 잊고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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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우(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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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페이지 : http://www.bingw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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