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쥬라기공원을 저와 함께 보고나오뎐 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런 영화(쥬라기 공원같은)에 한국배우들이 주인공이고 모든 대사가 다 한국어라면 얼마나 재밌고 가슴 벅차겠냐고...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여고 노력하는 선배의 바램이었지만 그의 그 이야기를 듣던 저는 속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던 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그 때 당시에는 언감생심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던 일이었죠. 다들 아시다시피 그 때 당시의 한국영화계는 정말로 암울했거든요.
저는 그 후 점점 발전하는 한국영화들을 보면서 그 때의 제 선배의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바보짓이다!'라는 철칙이 있었던 제가 지금은 한국영화를 초이스 일순위로 올려놓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6개월 간 극장에서 본영화는 반지 빼놓고는 다 한국영화로군요)
매주 발간되는 영화잡지의 박스오피스란을 보다가 실미도가 반지를 앞섰다는 얘기, 전세계에서 반지를 자국영화가 누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거란 기사를 보고 실로 가슴벅찼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그 선배를 다시 만나서 쏘주 한 잔 기울이며 우리 영화에 대해 밤새 이야기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어제 제 집사람과 함께 제 부모님을 모시고 '실미도'를 봤습니다.
제 아버님은 실미도 사건당시 베트남에서 군복무를 하고 계셨고 그 때 당시 제 어머님의 집이 대방동이었다고 해서 두 분 다 영화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계셨죠. 거의 10년에 한 번 꼴로 극장에 갈까말까 하시는 두 분이 아주 흔쾌히 실미도를 보자는 제 제안에 응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진 후 제 집사람을 봤더니 온 얼굴이 눈물 범벅이더군요. 그리고 제 부모님을 봤더니 이럴수가...! 저는 제 아버님의 눈에 맺힌 눈물을 제 평생 처음봤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며 아버님은 당시의 군대 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를 설파하셨고 어머님은 당시 집근처에서 울리던 총성과 라디오에서 울리던 긴급한 공비출현 뉴스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 집사람은 그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햇고요....
그런데 저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한 배우의 표정 때문에 계속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에게 치료하기 힘든 열병를 앓게 했던, 그래서 몇날 몇일을 순수했던 잃어버린 지난 날을 추억하며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박하사탕'의 '김영호', 그를 연기했던 대단한 배우 설경구보다 이름도 모르는 한 배우의 절규하는 모습이 계속 뇌리에 남았습니다.그것도 매우 가슴아프고 착잡한 형태로 말이죠...
마지막 버스 씬에서 자폭 직전에 수류탄을 까든 '강인찬'이 "모두 됐나?!"하며 물어볼 때 '됐습니다!"를 외치는 부대원들의 표정을 보십시오. 그 중에서 왼쪽 앞에서 두번째 아니면 세번째에 앉아서 눈물을 철철 흘리며 비장하게 외치는 배우의 표정은 실로 압권이었습니다. 그 전까진 영화의 어느 씬에 나왔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엑스트라에 가까운 비중의 배우였는데 그 마지막 씬에서의 그의 표정은 영화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압축해서 말해줄 정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둔 자의 심리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모든 인과율,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 사회, 분단 조국의 아픔, 이데올로기가 부른 비극,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쓰레기같은 빌어먹을 정치인들, 이기주의, 인간의 잔학성, 국가의 이익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처참하게 말살되는 인권, 그렇게 수십년을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등.... 그의 표정 안에서 저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절대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 영화가 갖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역사의 무게와 그 것을 옳게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의 의무를 한 번에 봐 버렸습니다.
실미도는 결코 잘된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에게서 이창동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미도는 충분히 강우석 감독다웠고 흥행영화답게 훌륭한 배우와 스텝 등 모든 것들이 영화를 위해 성실하고 또한 충실하게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가지 궁금한 점은 그들이 평양으로 출정하기 전에 올드랭 싸인의 음률로 불렀던 '애국가'입니다. 이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가 엄연히 있는데 왜 안익태 선생 이전에 만주에서나 불렀을 법한 올드랭 싸인 버전의 애국가를 해방된지 20년이 지난 그 시점에 불러야 했는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누구 아시는 분 없나요?
어쨌든 저 실미도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게 해 줄 고마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태극기 휘날리며'도 무지 괜찮을 거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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