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는동안 여러가지 상황에 굉장히 복잡한 마음을 일으켰다.
미국영화의 한계
1. 영어를 할줄아는 놈이 그나마 문명인이다? - 미국애들이 만든 영화를 잘보면 자기들은 문명인이고 다른 민족은 거의 원시인 수준으로 나온다. 이때 원시인 두목중 영어를 할줄알면 그나마 그 뒤로 영화에 원시인들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고, 할줄 아는 놈덜이 없으면 그냥 원시인된다. -> 그뒤로는 죽어나는 인디언, 베트공, 미게인이 있을뿐이다.
2. 도와줄만한 주민으로 바뀌면 미국인에 의해 해결? - 어려움을 격는 힘없는 시민과 이들을 승리로 이끌어주는 미군이 된다. 음~
3. 불합리한 전쟁엔 고뇌하는 참가자로 바뀐다.? - 예전엔 야만스런 행동의 인디언들에 대항하는 문명의 미국인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고문을 해대는 베트공들을 섬멸하고 민간인을 보호하는 미군이 등장했더랬다. 헌데 시간이 지나고 통킹만사건이 알려지면서 그후의 영화는 그러한 미군의 행동에 고뇌하는 미군이 항상 등장한다. 호~? 혹시 시간이 지나면 이번 이라크전도 그리될지도 모른다. 석유를 노리고 대량학살무기 운운하다. 암만찾아도 없자 이라크의 민주화로 명색바꾸기? 그렇다 그들은 언제나 양심있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나마 이영화가 그전과 다른점
1. 일본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의 변화? 이전에는 일본하면 상사의 말에 "하이!,하이!" 하는 군대적이고 통제적인 모습의 똘아이 회사원들이 등장했다. 이에 반해 자유로운 미국인들의 대조적모습... 80년대 일본제품의 미국내 범람과 이로인한 실직자들의 증가가 일본에 적의를 들어 내곤했다. 록펠러센터까지 사들이자 분노 폭발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암튼 일본의 문화가 점점 미국으로 흘러들어가 그들안에 일본에 대한 존경의 시선이 늘어가는것 같다. 일본게임과 만화영화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 미국기업과 나란히 경쟁하는 일본기업들...
2. 동양적 자기성찰과 충, 의에 대한 동경? 헌데 아쉬운것은 이제 더이상 그 낭만적인 사무라이나 선비나 동양적인 미덕을 동양나라에서도 찾기 힘든것이다. 얼마전 철도원이란 영화에서 죽기 직전까지 일하던 장인정신의 사람도 일본내에서 이제 찾기 힘든 모습이라는데서 오는 씁쓸함이 이영화에서도 어럼픗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할점
1. 일제의 침략을 받은지 얼마 안되는 우리에게 이영화는 사무라이의 지나친 미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 이영화에서는 쓰러져 가는 옛 전통적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어느나라나 이러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 우리나라도 개화기때 예전의 전통적인 교육과 사상을 서당에서 배우고 갓쓰신 분들이 신식문물을 받아들여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짧은 머리를 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쉬움이 있었겠다. 헌데 여기까지면 좋은데.. 사무라이들의 야만적인 침략을 받았던 사람들은 고통은 어디로 간것이냐 하면 이영화가 어디까지나 그것을 문제 삼으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왜냐 이영화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무라이는 의리의 사나이로써 부각되어야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겠다. 같은이유로 알그렌이 고뇌의 사나이에서 람보나 터미네이터의 해결사로 변신해서 몇개월의 칼휘두름 만으로 그들이 몇십년 수련을 거듭해 쌓은 검술의 수준으로 광랩을 하는 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그로인한 쾌감을 주기때문이다. 결국 결론은 이영화는 다큐멘테리 영화가 아니라 수익을 내는 상업영화이기 때문이라는 뻔한 답변으로 글을 마친다. 많이 허접한글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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