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 스포일러 일수는 있으나 결말 전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 감상 전에 보시고 좀 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관람하실 수 있기를 바람으로 적은 글입니다.
실미도.. 저는 많이 기대 하고 봤습니다. 예고편으로 보았던 U571(잠수함 나오는영화)에서 본 듯한 비오는 날에 보트에 목숨을 맡긴 비극적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저희 동네 영화관이 많이 꼬졌는데 가끔 리어쪽 스피커가 꺼졌다 켜졌다 하기도 하고 여우계단을 볼 때에는 어느 부분부터 갑자기 영사기 초점이 맞지 않아 박한별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안가야지 하고 있다가.. 실미도를 어제 그 영화관에서 개봉했는데 ..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하고 .. 또 저도 멀리 까지 나가 영화를 보기에는 시간이 넉넉지 못하여 다시 그 영화관에 가게 되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영화관은 제 영화감상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습니다만.. 영화가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지구를 지켜라/살인의 추억 이후로 한국영화에 대한 편견이 상당부분 씻겨 나간 뒤라 사실 엄청난 대작을 기대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랬거든요. 그러나 실미도는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만 남더군요.
실미도를 보고 감동하셨다는 분이 많았고 남자분들도 많이 우시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감동의 형성 과정입니다. 분명 실미도를 보고 난 눈물과 외화 아마게돈을 보고 흘리는 눈물의 성격은 다릅니다.
실미도에서는 영화 초반부터 강도 높은 잔인함, 비인간적 상황으로 시작 하여 종반에 다다를 수록 점점 비정해지는 상황과 배경음악으로 관람자들을 생각도 없는 좀비들로 만들어 놓고 절규와 굉음에다가 순 오바액션씬을 결합하여 눈물을 짜냅니다. 굳이 외화인데다가 미국제일을 외치는 영화로 많이 비판받은 아마게돈과 비교해서 죄송합니다만 아마게돈에서는 브루스 윌리스의 복잡한 마음과 딸을 위해 딸의 남자친구 에이제이를 대신해 죽음을 선택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딸의 얼굴(반지에서 아르웬이죠?^^)을 보여주며 딸과의 마지막 교신장면을 보여 줌으로서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와 부모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영화속의 상황이 현실의 상황과 결합하여 관람자 스스로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실미도에서의 목이 찢어질듯한 절규도 없으며 행성을 폭발시키는 씬은 가히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실미도는 절제된 감정으로 관람자들을 어쩌지 못하는 갑갑함으로 몰아 넣는 방법과는 달리 모든 갈등을 남자다움(그게 남자다운건지는 잘...)으로 해결 하려고 합니다. 사형수들이라 그런지 목숨을 너무 쉽게 압니다. 그들의 것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나중에는 막가서 다 죽이잖아요.
'붉은 기'가 등장하는 노래 말인데요, 공통된 소재가 여러번 등장 함으로서 영화의 구성을 탄탄하게 하게 하고 관람자들의 ' 아 ' 소리를 불러 일으키는 방법은 꽤 고전적입니다. 사랑과 영혼에서의 인디안 동전, ditto(동감)라는 말이라든지 디아더스에 나오는 앨범이라든지 말이죠. 미운 털이 이미 박혀서 그런지 그 노래의 설정도 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시체가 식기전에 시체를 싼다. 무슨 기를 물들인다 하는 가사는 극의 진행에 있어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며 피아니스트의 반복되는 차분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천국의 계단에서 회당 스무번은 됨직하게 틀어주는 보고싶다의 아베마리아를 듣는 듯했습니다.
실미도는 다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과 비슷하게 영화초반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짤막한 글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글은 차라이 없는게 나았습니다. 실미도는 실화라고 밝히고 영화를 시작함에도 본연의 목적인 부끄러운 한국의 과거를 정리하고 어두웠던 당대의 현실을 현재의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현재의 위태롭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현실의 가치를 재발견 하게 하는 것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채 상당 부분이 오바액션으로 감동만들기를 위한 픽션으로 채워져 [르뽀]의 성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픽션이더라도 권력에 탐하는 부정한 섬바디의 부정선거와 관련지어 사건을 풀어 나갔더라면 '공공의적'으로 부정선거를 설정할 수 있었고 훈련병들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범죄(가난에 쪼들려 부양한 식구들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서의 범죄라든지)를 만들어 내어 불행한 사회현실에 대한 개혁의지를 고취한다든지 하는 설정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벨문학상 수상작 소설 '운명'이라든지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면 유대인 학살이 이루어지던 시절 '아우슈비츠','게토'에서의 비극적인 유대인의 삶을 그리고 인간 존재의 잔인함을 보여주며 운명에서는 생명에 대한 끝없는 의지, 피아니스트에서는 예술혼을 위한 한 예술가의 인생을 보여 줍니다. 그런 작품을 기대하고 봤던 제 잘 못일 수도 있으나 제대로 된 픽션도, 제대로 된 르뽀도 아닌 채 상업성만 짙어진 영화로만 남은 실미도는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실미도는 르뽀영화가 되기는 이쯤되면 글러 먹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제대로 된 픽션 영화도 아닙니다.
사형사들을 중심으로 모아 놓은 부대로 영화초반부에 실미도로 사람들이 실려 가는 장면에서는 부대원들의 매우 난폭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며 영화 종반에 다다를 수록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로 변해갑니다. 뚜렷한 계기는 묘사되어있지 않으며 그냥 같이 살다가 그렇게 변한 걸로 얼렁 뚱땅 변해버립니다. 제대로 된 픽션이라면 훈련병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 예전의 삶에 대해 후회하는 장면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그런 장면으로 관람자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 할 수도 있었구요..
훈련병들의 입체적(어째보면 획일적인) 성격변화에 개연성이 결핍 되어 있는 까닭에 훈련병들이 기관병을 단체로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고개가 절로 저어집니다. 저건아닌데.. 저건아닌데... 강간씬에 있어서도 '우리가 원래 이런 사람들은 아닌데' .. 하는 대사는 극을 위한 억지에 가까웠습니다.
감독도 등장인물의 성격변화에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던지 등장인물 개개인의 범죄기록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으며 그냥 사형수 기타 등등으로 얼버무려 버리고 설경구의 범죄 장면도 거의 수십초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재판 장면에서의 초연한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만 롱테이크로 잡혀 있습니다.
영화를 예술의 한 장르로 놓고 본다면 작자[감독 또는 시나리오 작가]의 표현 의도 또한 모호합니다. KBS의 TV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에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뭐라뭐라... 사랑은 있다.. 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죠. 어떤 회에서는 삼십분동안 눈물만 펑펑 흘리다 그냥 꺼버리고 잔적이 있었는데.. 많은 에피소드를 짧은 시간에 다루고 있는데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미도는 코메디에 폭력일색(역시 폭력적 성격이 가능하지만 폭력 그자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친구라든지 조폭마누라등)인 한국영화에 살인의 추억과 이 작품은 최근 작중에서는 꼽아줄 만한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앞으로 한국영화의 많은 발전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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