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라스트 사무라이>는 이방인의 시점으로 사무라이의 최후를 다룬다. 사무라이 문화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찬양일색이라 다소 불편한 감도 없지 않지만 <라스트 사무라이>는 우리에게 호전적이고 잔인하며 군국주의적인 이미지로만 알려진 사무라이 집단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지나친 경도나 지나친 편견을 갖지 않는다면 사무라이가 지녀야 할 덕목은 귀를 기울일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차근차근 살펴보면 우리는 그 덕목이 공자, 맹자 등의 옛 선현들의 가르침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탐 크루즈가 영화를 찍으면서 날마다 탐독했다는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Bushido, the Soul of Japan, 국내 번역본 『무사도란 무엇인가』, 심우성 역, 동문선, 2002)를 중심으로 사무라이의 기본적인 덕목을 통해 영화에 더 접근해보자.
의(義) 사무라이 규범 가운데 가장 엄격한 가르침은 의(義)이다. 의(義)란 정의로운 도리를 가리킨다. 도리이기에 이것은 필연적으로 의무와 연결된다. 정의로운 도리, 즉 의리(義理)는 사무라이들에게 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모든 타인과의 관계가 1차적인 인간 감정인 애정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입각한 의무와 도리이다. 무엇이 정의로운 도리인가 하는 것은 시대마다 다를 것이며 개인, 집단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의(義)에 해당하는 것은 천황에 대한 충성과 힘없는 백성에 대한 연민이다. 사무라이들은 이러한 신념이 있기에 자신들이 패배할 줄 알면서도 신무기로 무장한 군대에 저항한다. 의리란 일종의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용(勇) 혈기가 넘치는 용기는 도적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무라이에게 있어서 용기란 반드시 의(義)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공자는 "의(義)가 없으면 용기도 없다"고 말했다. 사무라이들이 말하는 용기가 반드시 강건한 육체에서 비롯되는 용맹스러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니토베 이나조는 "용기의 정신적인 측면은 침착함이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은 항상 침착하고, 결코 놀라지 않으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평정함을 잃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영화에서 탐 크루즈가 연기하는 알그렌 대위가 처음 검술을 배울 때 주의하도록 교육받는 것도 이 '평정함'이다. 위험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여유, 그것이 사무라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용기의 핵심이다. 그리고 하나의 마음〔一心〕으로 매진하는 용기야말로 사무라이의 미덕이었다. 때로 이러한 용기는 적의 그것이라 하더라도 존경과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영화 <카게무샤>에도 등장하는 전국시대의 장수 다케다 신겐은 우에스키 겐신과 14년에 걸쳐서 싸웠다. 그러나 신겐의 죽음이 겐신에게 전해지자 그는 '적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잃었다'고 통곡했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알그렌 대위와 카츠모토(와타나베 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관총을 향해 돌진, 죽음과 부상을 입었을 때 천황의 신식군대가 절을 하는 것은 바로 그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인(仁) 의(義)와 용(勇)이 남성적인 덕목이라면 인(仁)은 여성적인 덕목이다. 어머니의 자애로움과도 결부되는 인(仁)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의 마음을 뜻하며, 우리가 보통 관용이라고 부르는 것, 프랑스인들이 '똘레랑스(tolerance)'라고 칭하는 것과 흡사하다. 사무라이들은 자신들의 무력이나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는 그 자체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칼을 뽑지 않고도 적을 패배시키는 것과 죽이지 않으면서 이기는 것을 가장 의미 있는 승리라고 생각했다. 사무라이들은 이러한 너그러움과 관용의 정신을 배가시키기 위해 시가와 음악을 취미로 삼기도 했다. 시가를 읊도록 장려했으며, 전쟁터로 나가는 무사가 걸음을 멈추고 허리에서 필묵을 꺼내 시를 짓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생명이 다한 무사의 투구나 가슴받이를 떼어내면 그 속에 시가 들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영화 속에서 카츠모토가 천황 군대의 기관총에 맞아 장렬히 전사할 때, 그는 떨어지는 벚꽃을 응시하며 좀처럼 짓기 어려웠던 마지막 싯구를 읊조린다. "완벽해(Perfect)…"
성(誠) 성(誠)은 진실성을 가리킨다. 사무라이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치욕적인 행위라고 느꼈으며 그들이 가장 싫어했던 '겁쟁이'라는 말과 동급으로 여겼다. 상인이나 농민보다 높은 신분의 사무라이들은 그만큼 그들보다 높은 수준의 성(誠)을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실이 담긴 무사의 한마디는 그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었으며, 약속은 거창한 문서 없이 정해지고 실행되었다. '두말' 하는 것, 혹은 서약하는 것을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장사꾼들이나 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무사도는 상도(商道)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전쟁을 위한 군비나 응당 받아야 할 봉록은 중요한 것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재산을 탐하거나 물욕에 눈이 머는 것은 수치였다. 일본이 개항하고 자본주의화가 본격화되는 시기, 사무라이들은 봉록이 몰수되고, 그 보상으로 공채가 발행되었다. 그 공채로 얻은 자금을 상거래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장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영화에서 카츠모토가 이끄는 '최후의 사무라이'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아무리 좋게 봐도 장사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할복 할복은 사무라이들의 덕목은 아니지만 그들 집단의 표식과도 같은 행위이다. 할복은 무사도에서 명예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큰 뜻을 품은 사무라이에게 다다미 위에서 죽는 것은 기개 없는 죽음이었다. 그들은 죽음에도 명예로움과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할복이란 하나의 의식이나 법제도와 같은 것이었다. 무사가 스스로의 죄를 알고 과거를 사죄하며 불명예를 죽음으로 보상하는 행위. 할복을 하는 자는 예복을 입었으며 옷의 소매를 무릎 위에 포개 뒤로 넘어지지 않게 했다. 무사가 뒤로 쓰러져 죽는다는 것은 치욕적인 것이었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초반부, '안개전투'에서 패한 후 천황의 신식군대로 들어간 사무라이 출신 하세가와 장군(이가와 토고)은 끝내 죽지 않고 생포되어 할복을 명령받는다. 사무라이 집단에게 그는 의(義)를 저버린 사람이다. 그는 순순히 그 명령을 수행한다. 옷과 무기를 달리한다 해도 그에게는 사무라이의 전통과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