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없는 새끼랑 우리가 어떻게 같아?" "내가 왜 이름이 없어. 나 한상필이야."
평소 대원들을잘 배려해주었던 박중사가 죽음의 막바지에 몰리자 발악을 하며 내뱉는 말에 한상필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이 때, 처음으로 배우 정재영의 극중 이름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저 몇조 조장으로만 지칭되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괜객에게 각인시키는 첫 순간은 영화의 마지막에 도달해서였다. 그리고 대원들은 동요한다. 처음부터 아무도 모르게 써먹고 아무도 모르게 없애버릴려 했었던 국가의 계획에 대한 분노때문이었다. 그리고 죽는 것보다 죽은 뒤 자신의 이름 석자도 묘지에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분개했었다. 그들에게 이름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들이 고된 훈련을 견디며 버티게 해준 끈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이름 한 번 날리고 당당하게 살아보겠다는 희망이었다. 그런 그들의 이름이 이미 사회에서 사라져버려 있었다는 사실은 국가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보다 더 강한 박탈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진입에 실패했을때, 대원들은 피로 버스에 이름을 쓰고 나서 수류탄을 던져 자폭한다.
영화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한 소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이름이 영화에서 가지는 위치에 비해 그 개개인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것은 너무 미약해 양팔저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결국 영화는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게 된다. 분명 눈물샘을 자극하고 그들의 분노에 공감을 하는 듯 내 주먹을 꽉 쥐게 만들고는 있지만 그 소재가 가지는 깊이를 따라가고 있지는 못했다. 그들 모두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고 일괄적으로 묶어버릴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사연들이 좀 더 영화 속에 베어나왔더라면 사지를 넘나들면서까지 그렇게 이름을 알리고자 했던 그들을 더욱 이해하게 만들 수 있지는 않았을까. 대원들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들의 인권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던 현실을 다루는 영화에 비해 개개인의 존재는 제대로 그려지지 못했다는 것이 이 영화가 잃어버린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렸기에 단순한 재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영화로, 이제까지의 전쟁영화와의 별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영화로 멈춰서고 만 것이었다. 물론 이런 가슴아픈 역사,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접근과 그를 알리고자 하는 노력은 높이 사야할 것이지만 역사를 그리는 영화이기에 좀 더 신중해야하는 것도 뺴놓을 수 없는 노력이다. 조금 더 신중했었더라면 빛이 났을 영화가 바로 실미도였다.
http://lucidjudge.cafe24.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