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에 길들여진 미국인의 사고방식으로 파악한 무사도 정신@
솔직히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볼수 있었던 것
은 탐크루즈라는 걸출한 배우가 출연한다는 단 한가지 이유때문이다.
여타 허리우드 영화가 그렇듯이 액션 대작으로 거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점 역시 설마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이렇게 밖에 못만들었을까 하
는 일종의 보상심리 마저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선은 이영화를 제대로 파악해보자면 누구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화냐라
는 우선 명제에서부터 시작되어진다.
그렇다. 이 영화는 허리우드라는 어떻게든 영웅을 양산해내서 돈벌이에 조
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어떤인물이라도 영웅을 만드는 시스템적 영웅주의
의 본산이 만들어낸 영화인 것이다. 알그렌 대위 그는 과연 누구인가!
인디언의 몰살이라는 잔인한 미국의 본성에 양심적으로 항거하는 외로운 양
심의 파수꾼일까! 아니면 가증스러운 미국의 얼굴을 가려먹이는 방패막이 영
웅의 모습일까!
라스트 모히칸의 영웅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마지막 모히칸으로서 미국이 저
질러놓은 실수 즉 인디언 대학살에 대한 양심을 대변했듯이 알그렌은 제국주
의 체제의 미국이 저질러온 그 시대의 양심을 대표하며 외로운 영웅의 무언
가 신비함을 체득한 미국인으로서 등장한다.
@미국인의 시각으로 본 무사도 정신, 그것은 잘 포장되어진 상품일뿐이다.@
최근 몇년사이 미국인들은 인디언의 힐링요법이나 동양의 선과 같은 사상적
기류 그리고 일본의 무사도 정신같은 정신적 영역에서의 신비함에 열광하고
또 배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 전부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자신들이
흡수하고 또 배우고 싶은 부분만을 배우는 자기식만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미
국화 하려는 단점이 있음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자 어정쩡한 동양 흉내내기
에 냉소를 보내는 우리네 동양인의 사상적 기저임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알그렌을 통해 내세우고 있는 무사도 역시 그럴듯하게 포
장된 상품화된 정신이자 싸움의 기술일뿐 그 내면의 이해나 단순히 신비스러
움만을 드러낸 그럴듯해보이는 모습들은 제대로 무사도라는 정신이 가지고 있
는 깊이나 이해를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임을 알수가 있다.
@카츠모토의 여동생은 나비부인의 화신일뿐,살아남는건 백인뿐인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여동생 남편을 죽이지 않고 적을 알아야 이긴다는 식의 카츠모
토의 사고방식은 오랜 막부전쟁과 생존이라는 무사들의 방식속에서 무엇이든
잘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속성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정성을 다해 자신의 남편을 죽인 알그렌에게 성의를 다하는 여동생의 모습은
오페라 나비부인의 미군인 애인을 잊지못해 상심하는 나비부인의 모습을 연상
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오버된 생각일까?
종반부에서 천황에게 카츠모토의 칼을 바치며 눈물짓던 알그렌의 모습은 나에
겐 한마디로 코미디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언제부터 무사도와 신하
의 예를 알아왔다고 일본인 자신보다 더한 신의와 무사도 정신으로 변모한 알
그렌의 모습은 허리우드 영웅주의가 만들어낸 웃지못할 자화상이 아닐까!
물론 나의 시각이 너무 염세적이고 비판적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과연 전
혀 다른 문화의 생활권에서 생활해온 사람이 단지 일이년의 기간만으로 그 문
화 전체라 할수 있는 핵심 정신 특히 그나라 사람 자신들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 정신을 완벽히 소화해 낸다는게 가능하냐는 점에서 부정적인 판단
을 피하기 어려움을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해볼때 탐크루즈는 코미
디 역사극에 출연한 희극배우로 여겨질 뿐이다.
라스트 사무라이 아무 생각없이 본다면 그저 그냥 그렇게 넘길만한 재미를 느
낄만한 영화로 넘어갈수 있을것이지만 그것은 최근 엄청나게 향상된 영화수준
과 시각으로 다양한 영화보기가 가능해진 한국관객의 영화적 수준을 우롱하
는 허리우드의 오만한 판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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