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호씨가 쓴 소설 <실미도>를 본 것은 4년 전이었다. 주로 음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써온 작가이기에 ‘이번에도 <대도>같은 작품이겠지’ 싶어 부담없이 읽어 내려갔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뒤통수를 후려 맞는 기분이 들었다. 우선 1971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다룬 것이었기에 놀랐고, 그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된 계기에 또 한번 놀랐고, 그들이 ‘실미도’라는 섬에 들어가 지옥훈련을 받게 된 이유에 다시 한번 놀랐다. 머리말을 읽기 시작하여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 닫는 시간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흡인력을 느끼게 했던 그 소설이 [강우석]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왜나하면 사건 발생 후 28년만에 소설로 쓰여지고, TV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여러차례 재조명되었을지라도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호기심과 의혹이 더해가는 실미도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 만들더라도 반드시 영화화 될 수밖에 없었던 태생 자체가 너무도 ‘영화같은’ 스토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2Km정도 떨어진 무인도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실미도>는 아버지가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덩달아 연좌제라는 올가미에 걸려 빨갱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결국 사형수가 된 [강인찬-설경구]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당시 대통령의 목을 ‘따기 위해’ 왔다는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 31명에 대응하여 사형수와 부랑자들을 무인도에 가둔 뒤 ‘주석궁을 폭파하자’는 모토하에 행해졌던 가혹한 훈련을 영화는 오히려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더 이상 나아갈 곳은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인도로 들어갔던 그들이 실미도 기간병의 훈육에 의해 실인병기가 되어 가는 과정을 다소 유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원작을 읽을 당시 입대 전이었던 나는 그 책을 보면서 꽤나 오금이 저릿해지며 입대날짜 연기를 심각하게 고려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실미도>에서 보여주는 훈련강도는 김신조 특공대의 전투력을 능가하고자 하면서도 오히려 영화 <쉬리>에서 보았었던 북한특수8군단의 훈련 장면에 비해서 강도가 약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이 모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실미도에서 행해졌던 훈련의 결과물로써 그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왜 자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는 중앙정보부의 권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다혈질이었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극히 유아적인(!) 결정으로 실행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60년대 말 소모적인 남북간 무력대결의 소산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인생의 나락을 경험한 사람들을 ‘통일조국의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무인도에 가둬 가혹한 훈련을 시켰던 것이 윗분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발상과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북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중앙정보부장이 김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면서 그들을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하며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권총을 빼들 때는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료주의의 맹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상명하달은 있어도 하의상달은 용납지 않는 극단적인 관료주의의 불합리로 인해서 그들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북간의 군비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만들어져 1970년대 데탕트의 영향으로 존재가치마저 희석되어버리고 퇴물로 취급받게 된 그들. 돌아갈 곳도 희망도 없이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 내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그들은 한국의 이데올로기 시대가 낳은 기형아이자 뼈아픈 현실이었다. 그들이 내몰린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주저없이 손수건을 꺼내들게 되는 것은 곳곳에 보이는 극적 장치 때문이다. 기간병들과 훈련병들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하나가 되는 모습, 그리고 나이 많은 제2조 조장[근재-강신일]와 한참은 어린 기간병의 관계, 그리고 기간병과 훈련병들이 한데 어우러져 축구를 하는 모습조차 그들의 불길한 미래에 대한 복선인 것 같아 가슴이 시려진다. 특히 영화의 종반부 버스 안에서 자폭을 결심한 뒤 스스로의 이름을 피로 적는 장면에서는 관객들도 그들과 하나 되어 피울음을 삭이게 될 만하다.
이처럼 [강우석] 감독은 분명 대단한 ‘화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실미도>에서도 섣불리 다루기 힘든 소재를 [설경구], [안성기] 같은 질 좋은 물감으로 캔버스를 화려하면서도 진중하게 채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미도>가 실화를 소재로 다루고 있을 뿐이지 실화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실제로 실미도를 탈출한 훈련병의 수는 24명이었지만 자폭한 인원은 21명에 불과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강인찬]이나 [최재현-안성기]같은 인물은 작가에 의해 설정된 캐릭터라는 것이다.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영화 <실미도>가 그릇된 역사를 보여주는 ‘전도사’가 아닌 북파공작원을 재조명 하게 되는 ‘방아쇠’가 되길 바랄 뿐이다.
Tip 1. 사실 그들의 부대 정식명칭은 공군 제 7069부대 2325전대 209 파견대. 영화 속에 등장하는 684부대라는 명칭은 68년 4월에 창설되었다는 뜻으로 붙여진 별칭이라고 전해진다.
2. 소설 <실미도>에서는 작가 본인이 재소자였던 시절 생존자인 강인찬을 만나 실제로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적은 것으로 되어있다. 영화 속 강인찬은 자폭을 주동하는 인물로 표현되지만, 소설 속의 강인찬은 위 본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생존가능성이 있는 3명 중 한명으로 설정되어 있다.